윤석열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로 촉발된 '킬러문항'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5일 서울 목동 학원가에 '킬러문제 전문' 간판이 붙어 있다. 류영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르포]"울면서 알파벳 써요"…4살배기도 몰아치는 사교육風 ②[르포]물수능도 '족집게 예측'…학원가는 요지부동 ③80% 학생들이 말한다 "'킬러문항'? 관심도 없어요" ④킬러문항 삭제=윤석열표 교육개혁? 오답만 짚었다 (끝)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문항 배제'를 비롯해 수능 난이도 완화를 주문하자 교육부는 이를 담은 사교육비 경감 종합대책을 내왔다.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윤 대통령의 '사교육 완화' 지시가 이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사교육 완화를 '교육개혁'으로 내세운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정부가 사교육 완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보다 본질적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尹, 후보 공약부터 교육부 보고까지 '사교육' 정책 없어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교육 공약, 2023년 신년 교육부 업무보고, 교육부 장관 보고 등을 봐도 '사교육 완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후보 시절 교육 관련 공약은 △대학 입시 제도 단순화, 정시 비율 확대 조정 △입시 비리 암행어사제, 입시 비리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도입 △지역별 교육 훈련 격차 해소 위해 청년 도약 디지털 스쿨 설치 △수능 응시료, 입학 전형료 세액 공제 적용 △교육부 간섭 축소 등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후 수능 '킬러문항' 공개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 개혁, 국민 재도약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신년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는 10대 핵심정책을 밝히고 있다.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학교 교유격 제고 △교사혁신 지원체제 마련 △핵심 첨단분야 인재 육성 및 인재양성 전략회의 출범 등이 있지만, 사교육과 관련된 뚜렷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사교육 관련 발언이 나온 지난달 15일 교육부 장관의 보고 내용에도 교육개혁은 0~11세 돌봄정책, 디지털 교육 대전환, 대학 혁신 등 3가지가 강조됐다.
결국 애초 현 정부의 교육개혁에서 강조되지 않았던 사교육 대책 수립 필요성을 갑작스레 윤 대통령이 언급하자, 한국교육평가원장 및 교육부 장관 등이 뒷수습을 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여고 교사인 교육을바꾸는사람들 김학윤 정책위원은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만 있었지 어떤 내용인가 명확히 정리된 것을 못봤다"며 "최근 논란이 된 사교육 대책도 이전까지는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시 문제를 개혁하겠다는 대통령 발언도 지금까지 한 번도 무게를 싣거나 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언급하니) 무게가 실리고 엉뚱한 사람들이 질책받고 날아가고 있다"며 "애초부터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면 장관이 책임을 지는 것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동안 윤 대통령의 교육개혁은 사교육 문제보다는 AI인재 양성 등 다른 곳에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김 정책위원은 "윤 대통령의 교육개혁으로 꼽자면 과학기술 인재 육성·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디지털 교육 및 AI인재 양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내용은 후보시절 공약부터 무게가 실렸다"고 짚었다.
특목고 폐지…사교육 줄이려는 시도 '역행'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들. 사진공동취재단윤석열 정부 이전에도 정권에 관계없이 교육정책에서 과도한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했던, 청소년기부터 과도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수능 문제를 출제할 때 EBS와 연계율를 높여 사교육의 필요성을 낮추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학서열을 완화하기위해 전국 국공립대학이 공동의 운영체제를 마련한 뒤 수업 및 학점을 교류하고 공동입학·공동학위를 내주는 국공립대학 통합네크워크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기존의 정책 흐름을 뒤엎고 자사고·특목고를 존치하기로 했다. 이를 대신해 킬러문항을 배제해 수능 난이도를 낮추는 식으로 사교육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수능 난이도를 낮추는 것이 사교육 과열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다만 6월 모의고사를 본 시점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지적이 다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구본창 소장은 "수능 출제와 관련해서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이 시기에 이런 메시지를 냈어야 했는지는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수능 시행 계획이 발표된다거나 교육부가 신년 업무 계획을 발표할 때 메시지를 냈어야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내지 않고 평가원에서 킬러문항을 내지 않도록 했으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교육, 표면적인 대책만…본질적 해법 고민 없어"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교육 과열 문제를 해결하려는 본질적인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결국 강고한 대학서열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이 사교육에 '올인'하도록 하는 핵심 문제인데, 여기에는 손을 놓고 수능 난이도 조절 등 표면적인 해결책만 찾는다는 것이다.
한국교육네트워크 이형빈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사교육비가 유발되는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사교육을 대체하거나 억제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교육을 유발하는 원인은 고교·대학 서열화다. 이번 대책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프랑스 바칼로리아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의 사고를 충분히 펼칠 수 있는 논술형이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고 대학에서 학문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는 자격 고사로 가는 것이 근본적인 개혁 방향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교원대학교 김성천 교수는 "선망하는 일부 직업군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루저'라는 인식이 있고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 노동시장의 구조를 보면서 결국 믿을 것은 입시 성적이라는 생각이 존재하는 한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