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콜센터에서 팀장을 해봤어! 이게 안된다는 게 말이 안돼. 상급자 바꿔주든가, 너 이거 될 때까지 나랑 통화하자!"
콜센터 노동자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김금영 지회장은 최근 콜센터 팀장 경력까지 앞세우며 압박하는 민원인 탓에 전화를 끊을 수 없었던 경험을 토로했다. 이 민원인은 '자신도 콜센터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는 점을 내세워가며 김 지회장을 더 압박했다.
김 지회장은 이러한 '갑질 민원'을 당할 때마다 아예 감정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1명이 하루 평균 적게는 60콜에서 많게는 120콜을 받는다. 60~120명의 사람을 매일 만나는 것"이라며 "그만큼 감정적으로 갑자기 공격을 당하거나 계속 노출돼있는 직종"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18일, 한 교사가 자신이 학생들을 돌보던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교육계를 넘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황진환 기자사건을 수사·조사하고 있는 교육부와 서울교육청, 경찰은 아직 교사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진상' 고객, 민원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야 했던' 노동자, 시민들마다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일선에서 민원 업무를 맡는 노동자들이 과도한 민원과 진상 갑질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학부모와 1대1로 맞닥뜨려야 하는 교사처럼, 대민 업무 부서에 있는 공무원들은 표적이 되기 쉽다.
지난 21일에는 자신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광주 동구청에 불을 지르려 한 50대 민원인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민원인은 공무원 2명이 자신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몰래 챙겨온 1ℓ 짜리 시너통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 했다.
창원특례시의 한 구청에서는 건축물 해체와 관련해 50대 민원인이 구청에서 상담하던 도중 담당 공무원의 목을 양손으로 2분 가량 조르는 등 폭행했다. 폭행을 당한 공무원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연가에 들어간 상태다.
'철밥통' 공무원도 옛말, 뼈를 깎는 고시 경쟁 끝에 갓 입사한 5년차 미만 젊은 공무원 중에서도 퇴직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무경력 5년 미만 공무원(국가직 지방직)은 1만 3032명에 달했다. 2019년 7548명, 2020년 1만 1029명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연합뉴스수도권의 한 관세청에서 근무하는 30대 B씨는 "주변 공무원들은 모두 민원 업무를 기피한다"며 "박봉에 민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겹치니 차라리 떠나겠다는 젊은 동료 공무원도 많다"고 말했다.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숱한 노동자들마다 이처럼 과도한 민원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특히 이들은 다양한 민원인으로부터 과도한 요구를 받을 때마다 회사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만 소모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최근에는 콜센터 상담사에게 상습적으로 욕설한 악성 민원인이 징역형을 받은 경우도 나왔다. 이 민원인은 2019년 9월부터 2020년 7월까지 120다산콜센터에 수시로 전화해 상담사에게 면박을 주고 욕설을 했다. 상담사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20대 입주민이 아파트 경비원을 상대로 수년간 폭언과 갑질을 일삼다가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 입주민은 10분 단위 순찰과 인근 청소, 경비실로 온 택배 배달 등 민원을 제기했다. 입주민은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고객·민원인으로부터 과도한 요구를 받을 때 안전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2항에 폭언을 했거나 폭언이 예상되면 근로자는 통화를 중단하거나 다른 업무로 전환하거나 휴게시간을 연장시키는 등 조치를 취하라고 돼 있다"고 짚었다.
이어 "민원에 대응하는 모든 노동자가 이 법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며 "심지어 공무원의 경우 공무원법에 들어있지 않아서 적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감정 노동에 대한 예방을 위해 치유센터 같은 기구가 운영되기도 한다"며 "고객하고 여러 상담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상담해주고 여러 자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가 존재한다면 도움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