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문' 김용화 감독.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대한민국 최초의 달 탐사, 그곳에 홀로 고립된 우주 대원 황선우(도경수). '더 문'은 달 탐사를 떠난 대한민국의 우주 대원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달에서 조난을 당하고, 전 우주센터장 재국(설경구)을 비롯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그를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김용화 감독은 "기존에 많은 우주 배경 영화들과 일정 부분 차별점을 이뤄낼 만큼 한국 영화의 기술이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술력에 더해 감정적 충만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지구와 달을 숨 가쁘게 오가며 펼쳐지는 우주 생존 드라마 '더 문'이다.
아무리 달과 우주를 '리얼'하게 그려낸다 해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과 이야기가 '가짜'라면 영화는 그저 잘 만든 '시각적 체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인물과 이야기다. 그래서 김용화 감독에게서 '더 문'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 과정과 왜 '그 배우'들일 수밖에 없었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영화 '더 문' 스틸컷. CJ ENM 제공'더 문',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까
▷ 시각적으로 우주와 달을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인만큼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상황과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비주얼이라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황선우가 재난에 처하고 또 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굉장히 심플하게 생각했다. 과거에 사연이 맞닿아 있어야 하고. 그게 새로운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3시간 안에 유사 부자 관계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겠지만, 구해야 하는 필연적 동인(어떤 사태를 발생시키거나 현상 따위를 변화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강력해야 해서 '죄의식'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성에 있어서 개인적 서사와 거기에 덧붙여 미국이 도와줘야 하니까 문영(김희애)과 재국(설경구)의 관계도 그 정도로 실타래가 필요했다.
다만 얼마만큼 디테일하게 보여주느냐는 다른 문제인데, 원래는 조금 더 디테일했다.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데, 그 황금률을 찾는 데 몇 번의 기회가 있을까 고민해 보면 크고 작게 여섯 번 정도 모니터했다. 모니터를 하면서 이 정도 이야기면 관객들이 엔딩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 이야기를 여는 중요한 임무를 김래원과 이이경에게 맡겼다. 어떤 점에서 두 배우가 '더 문'의 시작을 여는 데 적역이라고 생각했나? 관객들에게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었다. 사실 이게 클리셰다. 세 명이 갔는데 두 명 죽었고, 두 명을 죽여야 하는데 클리셰를 보완할 방법은 빨리하는 거다. 관객이 생각도 못 할 시간에 해 버린다는 게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가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선우의 아버지조차도 말이다. 그러저러한 이유에서 우정 출연, 특별 출연이 정말 특별했다.
영화 '더 문' 스틸컷. CJ ENM 제공 ▷ 전반적으로 명확하게 '빌런'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 같다. 보통 이런 재난 상황에서의 이야기를 보면 정치적인 상황이나 인간 군상, 구조 작업을 방해하며 관객을 숨 막히게 하는 빌런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빌런을 넣지 않은 이유는 생존 상황과 함께 황선우와 김재국의 갈등과 화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함이었을까? 난 그게 되게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재난 상황에 설정상의 악역을 등장시키는 거야말로 개연성이 없다고 본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악인(惡人)도, 선인(善人)도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서 관객들을 분통 터지게 하고… 그런 방법까지 써서 관객 수를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나 목표는 추호도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장관도 자기 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다. 그가 특별히 악인이나 선인의 일관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재국 또한 의 과거는 물론이고 어쨌든 자기의 치열한 목표를 사는 인물이다. 선우도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우주로 출발했다. 나는 선우가 정치적으로 굉장히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정도 인물이면 충분히 인간적인 묘사가 됐다고 생각한다. 굳이 반대를 일삼는 인물까지 넣지 않아도 이 영화는 충분히 소구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 '인류애' '동지애'라는 것은 점점 파편화되어 가는 듯한 현실에서, 더군다나 전쟁이나 바이러스, 기후 위기 등 지구적인 재난 속에 놓인 지금의 현실에서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려 할 때 자칫 '과잉'이 되진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자신만의 적정선을 찾아가고자 했나? 인류애가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등장해선 안 되고, 결과적으로 인류애처럼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 인물을 완벽하게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반추해 보거나 행동 동인을 살펴볼 근거는 있다. 문영은 미국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 집단에 들어갔지만, 언제든지 그 자리를 던지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정치적인 위기를 받고 있다.
그리고 문영은 일정 부분 남편과 헤어진 데 대한 앙금이 있다. 그런 문영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자리 잡고 있는 5년 전 폭발 사고에 대한 고백을 듣게 됐을 때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강요가 아니라 진심을 통한 설득이다, 그건 절대 강요가 되어선 안 된다. 너의 선택이라면서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여성이 멋있다고 봤다. 그리고 사실 문영은 우리 집사람을 모델로 한 거다. '만약에 이혼하면 너도 나한테 이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라고 했다가 등짝 두 대 맞았다. 장난치지 말라고….(웃음)
영화 '더 문' 캐릭터 포스터. CJ ENM 제공 만족스러웠던 설경구, 김희애 그리고 도경수의 연기
▷ 앞서 말했듯이 문영은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황선우의 귀환은 물론 영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중요한 역할이다. 김희애의 어떤 면이 문영을 완성해 줄 거라 생각했나? 폭발적인 호소력. 우리나라에 훌륭한 여배우가 많지만 그중 제일 먼저 함께 해보고 싶었던 배우는 김희애다. 드라마로는 탑을 많이 찍었는데, 영화를 안 하신 건 아니지만 왜 (드라마보다) 많이 안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선배님, 이런 시나리오가 있는데 출연해 주실 수 있냐"고 했더니 정말 낮은 개런티로 흔쾌히 출연해 주셨다. 우리가 '그리고 김희애'라는 크레딧까지 올릴 정도로 전면에 안 나서려 하시고, "이 영화를 정말 보고 싶다"고 하셨다. 연기야 보면 알겠지만 되게 만족스러웠다.
영화 '더 문' 스틸컷. CJ ENM 제공 ▷ 설경구와 도경수에게서는 재국과 선우의 어떤 면을 봤기에 캐스팅하게 됐나? 대한민국에 훌륭한 남자 배우가 많지만, 재국 역할에 설경구 선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바로 연기가 굉장히 품격이 있다. 반대로 표현도 엄청 잘하신다. 연기론에 여러 이야기 있지만,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그의 비애가 느껴져야 했다. 어떤 배우가 있을까. 설경구였다. 말하지 않아도 참았던 고통이 느껴지는 배우다.
도경수는 좋은 쪽에서 양면을 완벽하게 갖고 있다. 내면은 한없이 강한데 외모에서 오는 느낌은 여리고 순하고 미소년 같다. 처음엔 내면이 발현되어 있지 않고 외모만 보이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왔을 때는 그게 바깥으로 드러나 보이게 된다. 그랬을 때 얼굴에 되게 기대가 되는 거다. 만족한다.
영화 '더 문' 스틸컷. CJ ENM 제공 ▷ 물론 매 장면이 그랬겠지만, 설경구와 도경수 그리고 김희애와 작업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며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던 장면이 있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설경구 선배님은 마지막 장면. 깜짝 놀랐다. 그것도 서너 테이크를 찍었는데, 네 번째 테이크에서 다 쏟아내시더라. 너무 놀랐다. 행복했고. 김희애 선배님은 우주인과 소통하는 장면에서 감동 받았다. 선배님은 (영어) 발음에 자꾸 신경 쓰셨다. 그래서 선배님의 진심만 담아주시면 된다고 했다. 너무 잘해주셨다. 발음도 너무 좋고.
경수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매력이 있다.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고. 생명줄을 놔야 하는 직전에 그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와…. 도경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보통은 힘이 굉장히 들어가는 연기를 했을 거다. 그런데 낮은 톤으로 과거의 모든 상처를 툭툭 내뱉는데, 울림이 있었다.
영화 '미스터 고' 스틸컷. ㈜쇼박스 제공 ▷ '신과함께'에 이어 이번에도 고릴라 인형이 등장했다. '미스터 고'에서 함께한 링링(*참고: 김용화 감독의 영화 '미스터 고' 속 야구하는 고릴라의 이름)에 대한 애정인 건가?
맞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시그니처 모델이기도 하고, 내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온 장본동물(張本動物)(*참고: 감독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 원래는 '장본인'이나 고릴라이므로 '장본동물'이며, 어떤 일을 빚어낸 바로 그 동물이라는 뜻)이다. 영원히 내 영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나올 거다. 영원히 내가 기릴 거다.(웃음)
▷ 직접 만든 사람으로서 '더 문'이 가진 매력 포인트를 짚어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한국 SF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꿔드릴 수 있다. SF 영화는 답답하고 고요하다는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박진감 넘치고 다이내믹하다.
<에필로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