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고 채수근 상병 사건 조사와 관련해 보직해임 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11일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하고 나서 사태가 예측불허 국면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미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가 오히려 수사기관의 불법성을 비판하며 수사 자체를 거부한 것은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다.
박 대령은 이날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했고, 수사의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수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보고했다"면서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수 차례 수사 외압과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는 기존 주장을 확인했다.
박 대령과 변호인단이 군검찰의 약한 고리로 공략한 곳은 경찰 이첩 공문서를 되가져간 부분이다.
변호인은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8월 2일 10시 40분경 경북경찰청에 적법하게 접수된 이첩서류는 당일 오후 성명불상의 군인(국방부 검찰단 직원으로 추정)이 가져갔고, 해병대사령부 군사경찰단 소속 제1광수대장 명의의 이첩공문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이를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공용서류무효 등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 행위"라며 "국가기관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적법하게 접수된 이첩서류를 빼돌리는 데 공모한 상황에서 어떻게 박정훈 대령이 그 국가기관 소속 군검사의 수사를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사실 경찰 이첩서류 회수는 이 사건 초기부터 제기된 여러 의문점 가운데 하나였다. 국가기관끼리 이미 공식 절차가 완료된 사안을 무효화 한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고(故) 채수근 상병 안장식. 연합뉴스군 수사 경험이 많은 예비역 장교는 "이미 이첩된 서류는 그대로 두고, 좀 더 보완해서 (서류를) 다시 보내겠다고 해도 될 것을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다"며 "법 개정 후 초기 사례임을 감안하더라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각에선 박 대령에게 적용된 항명 혐의의 증거물 차원에서 회수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지만 사실과 달랐다.
국방부에 따르면, 경북경찰청은 지난 2일 해병대 수사단이 제출한 서류를 최종 접수하지 않은 채 일종의 '가접수' 상태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군에서) 서류를 회수하러 갔더니 아직 접수하지 않았다면서 (금세) 되돌려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첩서류 회수는 경찰로도 불똥이 튈 경우 군 기강을 넘어 국기 문란 논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김병주(예비역 육군대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전날 신범철 국방부 차관의 보고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부분에 주목했다.
김 의원은 "이첩이 정식으로 안 됐다면 그것은 경북경찰청이 직무유기 하는 것이고, 이미 이첩돼서 접수된 것을 다시 회수해와서 재검토하고 다시 보내는 것도 법적으로 여러 하자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대령의 수사 거부 선언에 군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사태는 이제 전혀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