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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만큼 베푸는 '도돌이표 배식'…"나눔이 반찬"



경인

    먹은 만큼 베푸는 '도돌이표 배식'…"나눔이 반찬"

    편집자 주

    아직도 따뜻한 밥 한 공기가 귀한 사람들이 있다. 무료급식소를 찾아가는 데 몇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배고픈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밥을 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고맙다'는 한 마디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 CBS노컷뉴스는 올 한해 배고픈 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온정을 나누는 밥 한 끼를 소개한다.

    [배고픈 사회, 함께 우는 사람들⑧]
    도움 받던 그들…이젠 '희망나눔'의 주체
    팔다 남은 식재료로 식단 구성, 메뉴판無
    찜통더위 속 굶주림 채우기 위해 구슬땀
    장애인·노숙인 등이 자원봉사하며 '보은'
    도시락통 들고 온 사람들 "고맙고, 숙연"
    "주머니 텅 비어 나눔의집 덕분에 연명"
    시설 측 "인원 늘고 후원은 반토막 진땀"
    고기 아껴 저녁까지 보양식 챙긴 '복날'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예성나눔의집 무료급식소 내 주방 모습. 이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나 노숙인 출신 등의 무의탁 노인들이 직접 배식 준비를 하고 있다. 박창주 기자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예성나눔의집 무료급식소 내 주방 모습. 이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나 노숙인 출신 등의 무의탁 노인들이 직접 배식 준비를 하고 있다. 박창주 기자
    ▶ 글 싣는 순서
    새벽엔 국자 들고, 낮에는 공구함…19년째 '따뜻한 이중생활'
    "밥이 생명"…굶주린 노숙인들의 '한끼 원정'
    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사랑해요' 인사 건네자 눈물…그 모습에 나도 울컥"
    눈물의 도시락 봉사 "꼭 임종 전, 아버지 눈망울 같아서…"
    한 끼 원정을 떠나는 아이들…그리고 '선한영향력가게'
    "어르신, 도시락 왔어요"…반지하 문 열리며 "기다렸어요"
    ⑧먹은 만큼 베푸는 '도돌이표 배식'…"나눔이 반찬"
    (계속)

    "장사하다 남은 식재료들을 보내주세요. 그게 다음 날 메뉴가 되죠. 다들 뷔페처럼 만족하시는 것 같습니다."
     
    경기 수원시 연무동의 한 골목 어귀에 흰색 3층짜리 단독 건물이 눈에 띄었다. 벽면 곳곳 무료급식 안내판이 붙었고, 1층은 주방과 식당 등이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메뉴판이 없다. 전날 밤 농수산물시장 등에서 보내준 후원 물품에 따라 당일 식단이 정해지기 때문. 고기나 생선은 귀하지만, 매일 반찬을 바꿀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365일 삼시세끼 공짜 밥을 나눠주는 민간단체로, 2~3층에는 장애인과 무의탁 노인, 결손 아동, 노숙인 등 40여 명이 모여 산다. 애초 보살핌을 받던 이들이 지금은 직접 또 다른 이웃들의 끼니를 챙기며, 이른바 '도돌이표' 배식을 하는 '나눔의집'이 됐다.
     
    주방장인 양미경(50대·여) 씨는 "다들 치아가 약해 반찬을 푹 익혀 씹기 좋게 만들고 있다"며 "허기와 외로움을 나눔의 정으로 채워서인지 남기는 음식 없이 만족도가 높다"고 뿌듯해 했다.
     

    "고마워서"…받은 만큼 더 퍼주는 '나눔 공동체'

     
    노씨가 전날 근처 제과점에서 보내준 케이크를 개인용 접시에 포장하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노씨가 전날 근처 제과점에서 보내준 케이크를 개인용 접시에 포장하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20여년 전 입소한 노모(70대·남) 씨에게 이곳에서의 한 끼는 '새 삶'과 같았다.
     
    외환금융위기 사태 등으로 사업에 실패한 뒤 경기도 일대 찜질방을 떠돌며 버텼던 그는 퇴행성 신경질환 등으로 등이 굽고 거동도 불편해져 재기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수원시청에 전화했더니 여기를 알려주더라고요."
     
    지난 16일 오전 9시 반쯤 노씨는 형형색색의 조각 케이크를 일회용 개인접시에 비닐랩으로 싸느라 바삐 손을 움직였다. 근처 제과점에서 팔다 남은 케이크가 이날 점심 디저트였다.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 속에서 화구에는 불꽃이 오르고, 에어컨 없이 벽걸이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노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등은 흥건하게 땀에 젖었다.
     
    봉사에 참여하게 된 데 대해 그는 더듬더듬 소회를 밝혔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 만큼 (제가) 더 열심히 해야죠."
     
    식자재 저장소에는 전날 들어온 감자와 양파, 꽈리고추 등이 가득 쌓여 있었고, 조리실 화구 위에 놓인 냄비에는 감자고기조림과 감자달걀국, 애호박 볶음 등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제육볶음을 내려다 감자가 너무 많아 주인공을 바꿨다'는 게 시설 관계자 측 설명이지만, 고기는 드문드문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고기가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로 들렸다.
     
    몸이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신씨는 주방 곳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식재료와 디저트 등을 운반하고 있었다. 박창주 기자몸이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신씨는 주방 곳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식재료와 디저트 등을 운반하고 있었다. 박창주 기자
    음식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주방과 위층을 잇는 출입문으로 지원군이 도착했다. 자폐성장애인(2급) 신모(50대·남) 씨다. 그는 곧장 채소상자 등을 옮기며 주방 곳곳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신씨는 10여 년 전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다 장애와 질병은 물론, 동료 노숙인들의 폭행까지 더해져 궁지에 몰렸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에게 나눔의집은 살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다.
     
    끼니를 해결하고 텅 빈 식당 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잠을 자던 그는 어느새 시설의 일원이 됐다. 차츰 몸도 호전되기 시작했고, 제법 힘이 드는 허드렛일들도 도맡아 '밥값'을 한다.
     
    봉사 소감을 묻는 기자 질문에 힘겹게 내뱉은 한 마디는 짧지만 간절했다.
     
    "고마워서요."
     
    이어 알아듣기 힘든 답변이 계속되자 곁에서 지켜보던 양씨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신씨의 인터뷰를 거들었다.
     
    "처음에는 힘들어 했지만 적응하고 나서는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겨요. 누나, 형이라고 부르고 건강도 많이 좋아져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있죠."
     

    온정으로 채우는 '삼시세끼', 도시락은 '덤'

     
    무료급식소 앞에서 점심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박창주 기자무료급식소 앞에서 점심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박창주 기자
    점심은 오전 11시부터다. 당초 정오부터였는데 미리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조금씩 시간을 앞당긴 결과다. 이날도 배식 20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금세 문전성시를 이뤘다.
     
    행렬에는 도시락통을 손에 쥐거나 가방에 메고 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한 노인은 "오늘은 감자냐"고 시설 관계자에게 물으며 "감자 많이 담아 달라"고 멋쩍게 웃기도 했다.
     
    밥과 반찬이 수북이 쌓인 접시를 받아든 사람들은 식당에 마련된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수저를 들었다. 서로 안면을 튼 이들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예성나눔의집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박창주 기자예성나눔의집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박창주 기자
    폭염과 폭우로 일감이 끊겼다는 전기기사 이성희(50대·남) 씨는 "요새 수입이 없어 잠시 배 좀 채우려고 왔는데, 누군가에게는 정말 간절한 한 끼라는 걸 알게 됐다"며 "본인 사정도 어려운 분들이 준비해준다니까 마음이 숙연해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고마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70대 여성도 "혼자 살면서 외롭고 돈도 없고 그래서 다니기 시작했다"며 "날마다 진수성찬을 차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크게 손뼉을 쳤다.
     
    말끔한 차림에 모자를 깊게 눌러 쓴 70대 남성은 무료급식소를 찾게 된 사연을 묻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는데, 여기 덕분에 연명을 하고 있다"고 나직하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후식으로 신씨가 나눠주는 조각 케이크와 덤으로 얻은 도시락을 들고 짧은 인사를 남긴 채, 하나둘 어디론가 흩어져갔다.
     
    "저녁에 또 봐요."
     

    인원↑, 후원↓…"그래도 배식은 멈출 수 없어"

     
    예성나눔의집 건물 외벽에 무료급식 간판이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예성나눔의집 건물 외벽에 무료급식 간판이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
    27년 전 일부 층에서 교회로 출발했던 이 시설은 갈 곳 잃은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나눔을 실천했다. 이후 입소자 외에 지역의 취약계층들과도 끼니를 함께 나누게 된 것.
     
    처음엔 컵라면 배식으로 시작했다가 1층을 월세로 임차해 급식소로 확장하면서 '공짜 맛집'으로 입소문을 탔다. 10년 전에는 은행대출을 받아 건물 전체를 매입해 사단법인으로 전환됐다.
     
    소외되고 굶주린 삶을 피해 입소한 사람들은 어느덧 스스로 자원봉사자가 됐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밥상을 차리기 위해 날마다 손을 보태고 있다.
     
    한때 지역에 위치한 굴지의 대기업과 후원단체들이 식재료와 각종 물품 등을 보내줘 풍족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기침체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거치면서 상당수 지원이 끊긴 상태다. 이에 상주하는 사람들과 곳곳에서 모여드는 인원을 감당하기가 벅찬 현실이다.
     
    자주 거래하던 영세상인 등의 도움에 가까스로 버티고는 있지만, 해당 시설을 비롯한 수원지역 민간 무료급식소 26곳 모두 운영난을 겪거나 일부는 아예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공공지원으로 운영되는 노숙인 등을 위한 무료급식소는 전국을 통틀어 서울과 경기 지역에 각각 2곳씩 모두 4곳에 불과하다.
     
    무료급식소 외부에 마련된 식탁에서 홀로 점심을 들고 있는 한 노인. 박창주 기자무료급식소 외부에 마련된 식탁에서 홀로 점심을 들고 있는 한 노인. 박창주 기자
    김수강 ㈔예성나눔의집 센터장은 "정기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조리사나 영양사 등 시설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고용할 여력이 없다"며 "경기불황에 코로나19도 겹쳐 후원이 반 토막 났다. 쌀 떨어지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폐지나 고물까지 주워가며 유지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대부분 급식소들이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계속 인원이 늘고 상주하는 분들도 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며 "예전엔 삼복더위에 닭도 많이 보내줬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저녁 메뉴는 돼지고기를 갈아 넣은 마파두부와 김치볶음, 양상추겉절이. 이곳에서는 점심 때 아꼈던 식재료로 두 끼 연속 고기반찬이 나오는 올여름 마지막 '복날'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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