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방과 외교, 통일 이슈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안보열전' 시간입니다. 김형준 기자, 안녕하세요.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 이야기, 이어서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제도 전해드렸습니다만 지금 이 정상회담 내용에 관련해서 좀 자세한 내용 나오고 있습니까?
[기자]
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오늘 보도 내용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단독회담에서
"강대한 국가건설의 전략적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방면에서 이룩되고 있는 괄목할 성과와 건설적인 협조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들이 오고갔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앵커]
노동신문 보도는 항상 좀 장황해요. 강대한 국가 건설을 위한 전략적 목표를 도모한다? 무슨 말입니까, 이게?
[기자]
전략이라는 게 원래 군사적으로 쓰이는 말이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국가적으로 쓰이는 말인데 '국가 단위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 나라가 추구하는 방법',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러 양측의 교류가 그만큼 양국 차원에서 중요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을 시사한 셈이죠.
또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 하나 더 있어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시기 위한 공동전선에서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연대한다".
[앵커]
제국주의자들에 대해 우리가 공동전선 한다,
[기자]
제국주의라는 말이 사실 북한과 러시아가 미국의 위협을 거론할 때 주로 쓰는 단어입니다. 북한은 미국 핑계를 대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러시아는 또 나토의 동진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전쟁, 그네들 말로는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미 제국주의라는 말을 쓰거든요.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협력은 물론, 앞으로 미국 등 서방권에 맞서는 연대를 두 나라가 더욱 강화하겠다, 이런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앵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이 나오면서 뭐 "허심탄회하게 양 정상이 토의했다", 이렇게도 표현이 되던데 그만큼 양국 거리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기자]
가까워진 건 맞는데 허심탄회했다는 말은 좀 다릅니다. 이건 외교적 수사 중에 하나인데요. 대화가 쉽지 않았다거나 서로 의견이 많이 다르다는 걸 에둘러서 말하는 외교적 수사입니다.
뭐 당연히 두 정상의 의견이 100%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죠? 다만 대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이견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이 되니까 좀 지켜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제 좀 더 들어간 내용을 볼게요. 오늘 노동신문 보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간 사진들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조금 더 주목해서 볼 만한 지점이 있었나요?
[기자]
노동신문에 보면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함께 이 기지를 둘러보면서 소유즈-2와 안가라 로켓의 구체적인 기술적 특성과 조립·발사 과정에 대해, 러시아가 그동안 우주산업 분야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고, 또 어떻게 발전시킬 건지 설명을 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실 냉전 때 미국과 우주 경쟁에서 밀리긴 했지만 러시아도 상당한 우주 기술 강국이예요. 방금 말씀드린 소유즈-2 로켓의 원형인 소유즈 로켓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쏴 올린 로켓이자 세계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이기도 합니다.
안가라 로켓 같은 경우 약간 생소한 이름이지만 사실 우리하고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앵커]
우리요? 한국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데요?
[기자]
이게 약간 복잡한 얘기인데요, 안가라 로켓은 방금 말씀드린 소유즈를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러시아제 RD-191이라는 엔진을 사용합니다.
이 RD-191의 변형으로 추력이 약간 줄어든 RD-151이라는 엔진이 있는데, 이게 우리랑 관련이 깊어요. 왜냐, 그 엔진을 쓰는 로켓이 나로호입니다. 그리고 나로호 발사 이후에 러시아도 이 데이터를 활용해서 안가라 로켓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니까 푸틴 대통령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 만나 가지고 우리나라랑 러시아랑 개발에 참여했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 로켓을 보여주면서 위성일지 ICBM일지 둘 다일지 뭐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북한이 뭘 만들 거면 러시아가 도와줄 수 있다, 이런 거래를 들이밀면서 동시에 우리한테도 압박을 준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겁니다.
[앵커]
누리호 기술에도 당연히 나로호가 들어갔을 테니까, 우리의 최첨단 기술이 거의 넘어갈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인 거예요?
[기자]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공들였던 것 중에 하나인데 북한에 그것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식이 되는 거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남한이 쓰고 있는, 남한의 어떤 기술의 원조격인 로켓을 갖다가 북한에 제시하고, 또 그 북한하고 협력할 수 있다, 이렇게 손을 내민다는 거는 남북한의 어떤 경쟁이라 할지, 아니면 견제라 할지, 이런 것이 다 어떤 정치적인 포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거죠."[앵커]
러시아가 실제로 그 기술을 보여주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확 위기감이 다가오는데, 근데 그런 미사일에 쓸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주면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아닙니까?
[기자]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하지만 이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우주 로켓하고 탄도미사일 기술은 공통점이 많으니까 제재 대상이 맞아요. 그런데 인공위성만 놓고 보면 또 안 그럴 가능성 있거든요. 원래 위성이라는 게 민간이나 산업용하고 연구용하고 군용하고 경계가 굉장히 모호합니다. 당장 우리나라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리랑 위성 같은 거.
안 그래도 러시아도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1 TV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회담에서 군사기술 협력 문제가 논의됐느냐, 이런 질문을 받고 국제 제재 틀 안에서 가능하다.
[앵커]
국제제재 현재 틀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얘기했다고요.
[기자]
네, 푸틴 대통령 말은 이렇습니다. 일정한 제한이 있고, 러시아는 이 모든 제한을 준수하지만, 이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지키겠다는 말이죠. 협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서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군사기술 협력을 할 방법이, 유엔 대북제재가 있지만 아예 닫혀 있는 게 아니고 그럴 가능성 논의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특히 위성이라면 기존의 국제체제 하에서 제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예요.
[앵커]
그러면 위성과 관련해서는 협력할 길이 좀 열려 있다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자]
뭐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진 않아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지만 몇 가지 가정을 해보면, 위성 자체를 만들어 주거나 위성 만드는 걸 도와주는 방법이 있어요.
이게 로켓은 말씀드렸듯이 탄도미사일 기술에 응용되니까 제재 대상이 맞는데, 위성 같은 경우에는 우리도 우주에다 위성 띄워서 평화적으로 쓰려는 거다, 그리고 러시아는 위성만 도와주는 거다, 이러면은, 위성을 제재하는 국제레짐은 없거든요. 핵무기나 탄도미사일을 제재하는 레짐은 있는데 위성을 제재한다는 얘기는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우주 기술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는 어느 나라나 보장을 받는 권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특히 북한이,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국방력 관련해서 5대 중요 사업 중에 정찰위성을 띄운 걸 보면 이번에 던진 메시지가 아마 여기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과 함께 우주기지를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앵커]
여기에 가깝다는 건 직접 러시아에서 만들어 주는 것?
[기자]
위성 관련해서요. 형태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로켓보다는 위성에 조금 더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거라도 얻게 되면 북한으로선 아주 큰 소득이 되겠군요?
[기자]
그럼요, 눈이 생기는 거니까요.
[앵커]
러시아가 북한에 위성 자체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 가능하다는 건 저는 좀 새롭게 들리는데요. 근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기가 없다는 보도는 아마 여러분들 많이 보셨을 텐데 이런 첨단 기술을 덜컥 내줄 만큼 그렇게 절박한 상황인가요?
[기자]
일단 탄약이나 무기 같은 게 부족해진 건 맞아요. 그건 사실이지만 최근 외신 보도나 그런 걸 찾아보면 절박한지에는 좀 의문이 듭니다. 나름대로 경제 회복을 하는 것도 있다고 하고 생산량도 적지는 않대요. 쓰는 게 더 많아서 그렇지.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아까 제가 안가라 로켓 사례를 말씀드렸잖아요. 우리에게도 나름 뭔가 시사해 보라고 카드를 던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앵커]
절박해서만이 아니라 한국한테 던지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
[기자]
옛날에 냉전 끝나고 러시아가, 방금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랑 이런저런 분야에서 협력을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그게 우리나라하고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하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너네 생각 잘 해라, 이런 식의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특히 군사나 우주 관련 협력 같은 거, 예를 들어서 방산협력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건 결국 국제정치적으로 어떠한 신뢰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거든요, 당연하지만. 무기를 파는데 신뢰가 없이 파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중하게 잘 판단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앵커]
한미일 공조가 굉장히 강해지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의미도 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거네요. 단순히 절박해서만은 아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 러시아랑 우리나라 관계가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거든요, 과거에. 냉전 이후로 우리가 북방정책을 펴기도 했었고. 지금 보면 굉장히 국제정세가 아주 빠르고 위급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자]
네, 1980년대 후반에 노태우 정부가 이 북방정책을 시작해서 1990년 소련, 그다음에 1992년에 중국, 당시엔 중공이라고 불렀죠. 수교를 했고요, 그리고 이걸 통해서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 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괄목할 성과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냉전이 끝나면서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몰락했잖아요. 우리 쪽에 의존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어요.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냐면 우리나라가 빌려준 차관의 이자를 못 갚으니까 그걸 불곰사업이라고 해서 무기로 갚았던 사례가 있는데, 그걸 우리나라가 러시아 무기를 들여와서 그걸 다 뜯어봤습니다.
[앵커]
상당히 우리도 큰 성과를 거뒀네요.
[기자]
그 기술 가지고 국산 무기들 만들었어요. 러시아 기술이랑 미국 기술 합쳐 가지고.
이렇다 보니까 탈냉전 시기, 그러니까 지난 30년을 생각해 보면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사실 그렇게까지 깊지는 않았어요. 그전에는 물론 동맹국이고 우방국이고 그랬었지만, 1996년 9월에 무슨 일이 있었냐, 소련 때부터 북한과 러시아가 유지하던 동맹조약을 러시아가 파기했습니다. 근데 이거 우리 작품입니다.
[앵커]
북한과 러시아의 동맹을 파기한 게 우리나라 작품이라고요?
[기자]
우리나라 작품이예요. 두 나라가 밀착하지 못하게 우리가 북방외교를 통해서 막은 거예요.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밀착하면 골치 아파진다는 걸 우리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앵커]
근데 이게 지금 완전히 뒤집어지려고 하네요.
[기자]
바뀌려고 하는 겁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한 이후로 미국하고 비핵화 협상을 통해서 뭔가 체제 안전이라든가 경제 지원이라든가 이런 걸 보장받으려고 했는데, 요즘 하는 걸 보니까 사실 협상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고요.
또 러시아도 천연자원 수출이라든가, 혹은 구 동구권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나름 경제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다시금 뭔가 큰 꿈을 실현시키면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을 하려는 것 같아요. 그게 단적으로 나타난 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고요.
물론 북한이 하는 일이 우리도 당연히 마음에 안 들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걸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불량국가인 건 사실이죠. 하지만 북방정책 때를 생각해 볼게요. 반공 기조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수교를 추진했어요. 그러면 결국 강대국과의 관계는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거거든요.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로 가치외교라는 이름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상당히 밀착을 하는 거죠. 다만 이런 식의 판이라면 우리가 최전선에서 지금 말씀드린 여러 가지 사례처럼 상당한 곤경에 처하기가 쉽기 때문에 보다 현명한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