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파이터 결승전 장면.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게임기에 50원 혹은 100원을 넣고 동네 형들의 눈치를 보며 격투 게임을 즐긴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현재 아저씨일 가능성이 높다. 그 게임은 아마도 스트리트 파이터2였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발매된 스트리트 파이터2는 격투 게임의 전성 시대를 도래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류, 켄, 춘리, 가일, 달심 등 게임 캐릭터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아도겐', '오류겐', '아따따뚜겐' 등 각종 기술을 흉내내며 놀았다.
스트리트 파이터2를 세게 발음하면 자연스럽게 입에서 침이 튀는데 이런 장난을 치며 놀던 시절도 있었다.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을 즐기던 어린 아이가 성장해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는 믿기 힘든 풍경이 연출됐다. 주인공은 1979년생 김관우다.
'오락실 매니아'를 위한 판이 제대로 깔렸다. e스포츠는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됐고 세부 종목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V가 채택됐다.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 아시아 최고의 무대에서 경쟁할 기회가 생겼다.
e스포츠에 관심있는 팬들의 시선이 상당 부분 리그오브레전드 대표팀에 쏠려있는 가운데 김관우는 오락실에서부터 갈고 닦았던 실력을 발휘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결승 무대에 진출했다.
그리고 한국 e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스트리터 파이터에 출전한 김관우. 스포티비나우 중계 화면 캡처
김관우는 28일 오후 중국 항저우의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7세트 접전 끝에 대만의 시앙 유린을 누르고 아시아 최고의 스트리트 파이터 유저로 등극했다.
두 선수는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관중의 함성 속에 당차게 등장했다. 서로 마주보고 선 두 선수의 표정에는 마치 올림픽 복싱 결승을 앞둔 것과 같은 비장함이 있었다.
둘은 가운데 가림막이 있는 테이블에서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앉아 경기를 시작했다. 서로 건너편에 앉아 대전 게임을 즐기던 옛 오락실의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배치였다.
팬들은 경기장 상단에 위치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웬만한 실제 격투 경기 못지 않은 긴장감을 만끽했다. 김관우의 주 캐릭터인 '베가'와 상대 캐릭터의 슈퍼 콤보가 연속적으로 들어갈 때마다 감탄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올림픽과 달리 스포츠의 확장을 주저하지 않는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는 이번 대회의 최고 히트상품 중 하나다. 티켓값도 가장 비싸다. 그럴 가치가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가 품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바로 아시안게임 챔피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