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해서 봄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의 결과를 듣고 경제 전문가가 한 말이다. 반도체 생산 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크게 증가하는 고무적인 결과가 나왔음에도 하반기 경제 전망은 대체로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 생산 반등에도 불구하고 고환율에 가계부채의 증가로 인한 여러 요인이 경제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반도체 반짝 급등에도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휘청한 경제
연휴가 끝난 4일 오전 발표된 8월 산업활동동향의 결과는 나름 고무적이었다. 반도체 회속세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8월 전(全)산업 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 지수가 112.1(2020년=100)로 전월보다 2.2% 증가했다. 30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다. 8월 반도체 생산 지수도 142.9로 1년 전보다 8.3% 증가했다. 반도체 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증가한 것은 13개월 만이다.
하지만 미국 국채 금리가 최대치로 오른 것에 대한 여파로 국내 주식과 원화가치는 급락했다.
류영주 기자 미국의 긴축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면서, 세계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4.8%까지 치솟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원 넘게 올라 1,363.5원에 마감,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가 기준 지난해 11월 10일(1,377.5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내 주식과 채권도 개장 직후부터 급락을 시작해 마감까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 대비 2.41% 내린 2,405.69, 코스닥지수는 4.00% 내린 807.40으로 집계됐다. 코스피는 장중 2,402.84까지 내려가며 2,400선을 위협받았다.
미국의 긴축 정책이 시장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원·달러 환율도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땜질식 정책 반복하면 더 큰 위기 올수도"
악화되는 대외여건 속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국내적 상황이 없는 것도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1.5%로 예상했다. 미국이 1.6%에서 2.2%으로 일본이 1.3%에서 1.8%로 상향 조정될 때 한국 성장률만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늘어나는 빚도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채의 비율은 281.7%로 최근 5년 새 42.8%포인트가량 상승했다. 특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0%에서 지난해 108.1%로 16.2%포인트 올라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6개국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박종민 기자가계부채 증가의 주된 원인은 부동산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시기에 대출로 집을 사는 '영끌족'이 늘어나면서 전체 가계 부채 상승을 이끌었으며, 주식 등 자산 시장 호황 국면에서 '빚투' 움직임도 부채를 끌어 올린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내수 침체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생계형 대출을 늘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상반기에 저조하고 하반기에 경기가 다소 풀릴 것이라는 '상저하고'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대내외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며 "수출보다 수입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경우에는 악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당장 가계 부채와 경기 둔화를 우려해 금리 인상을 계속 미루고 땜질식 처방을 반복한다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 교수는 "현재 여러 문제들을 정부가 얇은 가림막으로 덮어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터질 수 있다"며 "당장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금리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의 경우에는 정부가 최근 공급대책을 내놓는 등의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정책상 일관성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미 간의 금리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금리를 정상화하고 산업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금융위기 급의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