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이 영화의전당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여러분이 숨어있는 스타고, 별인 것 같다. 여러분들 덕분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 참석한 한 배우가 언급한 '여러분'은 영화제의 숨은 기둥인 자원봉사자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577명의 자원봉사자는 영화제가 빛날 수 있도록 맡은 자리에서 든든하게 받치는 기둥 역할을 했다. 대중들은 보지 못 한 영화제 첫 순간부터 조명이 닿지 않는 영화제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이들이 있었다.
"차승원? 제가 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접하는 영화제의 시작은 배우 등 영화계 인사들이 화려하게 등장하는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다. 성공적인 개막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의 영화제는 이보다 일찍 시작됐다.
자원봉사자 이승현(24·남)씨는 BIFF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차승원'으로 통하게 됐다. 자원해서 참여하게 된 레드카펫 리허설에서 배우 차승원 대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승현씨는 "리허설 역할을 정할 때 스태프분이 여기서 가장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나오라고 하셨는데 다들 조용하길래 그냥 내가 나섰다"며 "나중에 다른 자원봉사자분들이랑 친해지면서 '아 차승원?' 이렇게 알아보기도 해서 민망했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가 행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제공그는 직접 서본 레드카펫은 화려함보단 분주함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씨는 "화면에서 봤을 땐 다들 너무 여유롭고 우아해 보이기만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며 "호텔에서 대기실로 이동해 차를 바꿔 타고 다시 레드카펫에 도착해 그 끝도 없는 길을 걸어가는데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웃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레드카펫 경험은 여러모로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이씨는 "게스트 입장에서 레드카펫을 걸어보니 우리 영화제가 생각보다 더 체계적으로 잘 준비돼 있다는 게 느껴졌다"며 "빈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포토타임도 가져보면서 내가 정말 멋있고 중요한 행사에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게 체감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혹은 직접 마주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가 상영관 입장을 안내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부산국제영화제는 매우 많은 국내외 영화 팬들이 찾아오는 그야말로 '영화 축제'다. 영화제 부대 행사부터 영화 상영까지 수많은 일정을 무사히 진행하기 위해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는 제 역할을 해냈다.
구윤진(23·여)씨는 관객들과 가장 가까이 호흡하면서도 그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그림자와 같은 역할이다. 구씨는 "모든 상영관에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미리 화면 비율과 음향, 자막 위치나 선명도 등을 일일이 확인한다"며 "상영할 때도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맨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관객들과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 있지만 내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실 것 같다"고 말했다.
구씨는 영화제 동안 모두 13편의 영화를 관객과 함께 관람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상영관 가장 뒤에서였다.
관객을 직접 만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관객서비스팀 자원봉사자 서용호(23·남)씨는 자신의 역할을 한마디로 '웰컴'(Welcome)이라고 설명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을 반기며 직접 맞이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고충도 있다. 그는 "영화제 특성상 영화 시작 후 15분이 지나면 입장이 마감된다. 이에 항의하는 관객들이 많아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라며 "미리 공지된 부분이지만 영화 팬들이다 보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못 보게 돼 속상해 예민해지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면 다행히 이해해 주시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람을 대면하는 업무다 보니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우리끼리 서로 으쌰으쌰(응원) 해주고 챙겨주면서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영화의 힘, 영화제의 감동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이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활동하는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제공봉사자들은 제각기 다양한 배경과 모두 다른 이유를 갖고 영화제에 모였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제를 함께 만들어 가며 영화와 영화제의 힘을 깊이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영화보다 자원봉사에 중점을 두고 참여하게 됐다는 서용호씨는 "홍콩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GV(게스트와의 만남) 행사에서 감독과 진행자, 100명이 넘는 관객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신성한 충격과 감동을 함께 받았다"며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영화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의 청년들을 부산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씨는 "사실 영화제 하나로 다양한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모인 건데 시간이 갈수록 서로 더 융화되고 하나가 되는 게 느껴진다"며 "부산 사람으로서 부산이라는 도시가 이렇게 청년들이 열정을 나누고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 된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화면을 통해 보는 영화제는 연예인과 눈부신 조명, 레드카펫, 폭죽 등 화려함 그 자체였지만 그 뒤엔 수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간 영화제라 더욱 특별한 의미가 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