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된 박민(왼쪽)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KBS 전경. 황진환 기자·KBS 제공KBS 이사회가 박민(60)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에 대한 KBS 사장 임명 제청을 강행하면서 안팎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언론노조) KBS본부는 13일 '부적격 낙하산 사장 박민은 즉각 사퇴하라'는 성명을 내고 "50년 KBS 역사에서 이번 KBS 사장 선임 절차는 공영방송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며 "KBS 이사회는 박민이라는 윤석열 정권 낙하산 후보의 임명이 불투명해지자 자신들이 세운 원칙마저 무시해 가며 사장 임명을 강행했다"고 성토했다.
앞서 KBS 이사회는 이날 임시 전체회의를 열고 단독 후보로 남아 있던 박 전 논설위원을 KBS 보궐 사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해당 건은 야권 이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표결을 거부한 채 퇴장하면서 여권 이사들 참여만으로 이뤄졌다. 전날 KBS 이사회는 여야 6대 5 구도 유지를 위해 5·18 막말 폄훼 등으로 극우 논란을 낳은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이사로 선임, 물의를 빚기도 했다. KBS 사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한 KBS 이사회 야권 이사들은 이날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 문외한에다 경영 능력조차 전혀 확인받지 못한 박민씨가 KBS 사장으로 제청된 건 세간에 널리 알려진 대로 윤 대통령과의 친분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며 "검증 소홀 문제는 앞으로 진행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분명히 쟁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KBS 이사회는 지난달 20일 사장 임명 제청 절차에 관한 규칙을 정했다. 사장 후보 1인을 임명 제청하는데,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당일 다득표자 2인의 결선투표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KBS 이사회는 지난 4일 박 전 논설위원과 KBS 최재훈 부산방송총국 기자, KBS 이영풍 전 신사업기획부장 등 후보자 3인에 대한 면접 심사와 최종 후보자 선출 투표를 진행했다.
해당 투표에서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규칙에 따라 박민·최재훈 후보의 결선투표를 진행할 차례였다. 하지만 서기석 이사장은 선출 규칙을 무시한 채 돌연 결선투표를 6일로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5일 결선투표 연기에 동의하지 않은 여권 추천 김종민 이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경쟁자였던 최재훈 후보 역시 "이사회의 정파적 표결에 자괴감을 느꼈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박 전 논설위원은 그렇게 단독 후보로 남았다.
KBS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그야말로 이번 사장 선임 절차는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야욕에 이사회가 적극 가담해 벌인 더러운 정치적 야합이나 다름없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부적격 낙하산 사장 선임을 위해 KBS 이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결국 윤석열 정권이다. 이번 사장 선임 절차는 현 정권이 방송장악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장을 앉히기 위해서라면 어떤 논란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공성 회복을 기원하는 모든 시민에 대한 현 정권의 선전포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KBS본부는 "이번 사장 선임 절차의 원칙을 깨고 졸속 선임을 강행한 이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 기록에도 그 더러운 이름들을 낱낱이 기록할 것"이라며 "부적격 후보 박민에게도 경고한다. KBS 사장으로서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前사장 해임집행정지 가처분…청문회조차 못 갈 수도"
KBS 밖에서도 이사회의 이번 박민 후보 임명 제청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단법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이날 논평을 내고 "무리한 일정에 맞춰 진행된 KBS 사장 후보자 선출은 후보자의 범죄 이력 조회는커녕 시민 자문단 평가제도와 같이 필수 불가결한 국민적 동의도 무시된 채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꼬집었다.
해당 논평에서 민언련은 "결국 비상식적인 투표 연기와 방통위의 갑작스러운 이동욱 이사 추천으로 KBS 이사회는 여야 6대 5 구도가 완성됐고,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않았던 KBS 사장 선발 절차는 정권에서 낙점한 박민 후보자가 여권 이사 6인의 단독 표결로 선출되며 막을 내렸다"고 진단했다.
이어 "박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과의 친분이 언급되며, 김의철 전 사장이 부당 해임되기 전부터 내정설이 공공연히 돌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공영방송의 경영을 주도할 KBS 사장의 자격요건으로 인맥이 우선 언급된 것이다. 공영방송과 연결고리가 없는 박 후보자는 방송에 대한 전문적인 자질이나 능력 면에서 검증된 바 없다. 박 후보자의 공약을 살펴보면 검열이나 다름없는 게이트키핑 강화, 공정성 확립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자·제작자 배제 등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을 지키러 온 것이 아니라 파괴하러 온 것임이 더욱 명백해진다. 절차와 합의를 위배하며 선출된 박 후보자의 정당성은 이미 상실됐다."
특히 "공영방송 KBS는 정권의 것이 아니다. 수신료를 받아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며, KBS는 공정한 보도와 양질의 프로그램을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공적 자산이다. 박민 후보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윤석열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폭주를 멈춰라"라고 촉구했다.
같은 날 언론노조 역시 성명을 통해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며 "그야말로 '답정너' 이사회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누가 봐도 '친윤 사장'인 박민 후보를 '옹립'하기 위한 추태가 50년의 역사를 가진 공영방송에서 백주대낮에 벌어졌다"며 "이어질 과정도 결코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다음 주로 예상되는 김의철 전 사장의 해임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에 따라 박 후보는 국회 청문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토록 허술하고 급박하게 졸속으로 진행된 공영방송 사장을 과연 누가 인정하겠는가? 수신료 문제 등 윤석열 정권이 벌이고 있는 공영방송 해체 절차에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을 사장에게 무슨 리더십과 결단성이 있겠는가"라고 질타했다.
언론노조는 "박 후보에 분명히 말한다.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을 앞세운 정실인사는 처음부터 자격 미달이며, 임명 체정은 원천무효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더는 일"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