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제공 무성한 식물로 둘러싸인 오묘한 분위기의 단독주택 2층으로 이사한 '나'와 가족들이 1층에 숨어 사는 또 다른 가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박영란의 새 장편소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이 출간됐다.
'편의점 가는 기분' '게스트하우스 Q' '안의 가방' 등의 작품을 통해 혼란스러운 청소년 성장기의 단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 봤던 저자의 이번 소설은 주인공의 가족이 1층에 숨어든 할머니와 쌍둥이 손주를 숨겨주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의 비밀스러운 사연과 함께 2층 가족 역시 사정으로 고향에 내려간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어머니와 주인공 남매 역시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 이들 두 가족의 이야기는 서로 기대어 자라는 넝쿨처럼 무성해지지만 울분을 토하지도 누가 더 힘든지 견주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의 손을 맞잡고 곁에 있어 준다.
저자는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서백자 할머니 가족과 이제 막 이사한 주인공 가족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시공간이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 같다"라며 "주변의 풍경이나 소리, 향기, 건축물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위로받는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이미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오래된 이곳은 누군가가 살던 자리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는 다시 시작한다." -본문 중에서
박영란 지음 | 창비 | 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