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여우자매' 갈치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아버지가 애니메이터셨는데, 코로나19 때 일이 없어 잠시 치킨가게를 하셨던 적이 있어요. 하루는 손님이 없는데 아버지가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보시는 거예요. '뭐하시냐' 물었더니 '우리 가게 들어와라' '치킨 먹으러 들어와라' 텔라파시를 보내고 있다는 거예요. 지루하고 힘든 시기를 자신만의 상상력과 재미로 승화하신 거죠. 그때 아버지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요."
갈치(본명 김강연) 작가는 2019년 웹툰 '여우자매'로 도전만화, 베스트 도전만화 연속 1위를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귀엽고 앙증맞은 구미호 캐릭터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하트를 독차지했다. 그렇게 인정받았지만 정작 데뷔는 그로부터 한참 지난 2022년 7월이었다.
3년의 도전이 쉽지는 않았다. 도전만화는 연재를 위해 며칠 밤낮을 세워도 수익이 없는 데다 팬데믹으로 가장인 아버지가 일이 없어 더욱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는 게 맞나?' 되새기며 장남으로서 부담도 컸단다.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었을까. 그는 그림 그리는 도전이 즐거워졌다고 했다.
'여우자매'는 사람을 홀려서 간을 빼 먹는 구미호 전설을 모티브로 했다. 사람처럼 평범하게 생활하면서도 숨겨진 능력을 펼치며 성장해가는 구미호 자매 류월과 류화의 이야기다.
지난 9월, 1년 2개월 만에 65화를 끝으로 네이버웹툰 연재를 마친 갈치 작가는 2부 연재를 준비하고 있다. 2부에서는 조금 더 성숙해진 주인공 구미호 자매,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과 흥미진진한 액션을 담은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이다.
'여우자매' 캐릭터, '수상하게(?) 더 성숙해진다
네이버웹툰 연재 '여우자매'. 갈치 작가 제공 ▶도전만화 때부터 사랑받았던 '여우자매' 1부 연재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손이 느린 편이 아니라 마감 부담은 적었는데, 역시나 1년여간 연재를 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처음에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마치 방전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칫 슬럼프에 빠질까 싶어 손을 놓지 않고 2부 기획을 하고 있다.
▶구미호를 모티브로 했는데, 기존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 만화 '아기공룡 둘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룡은 거대하고 무서운 육식동물인데 '둘리'는 귀여운 개구쟁이다. 어린 아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우자매'도 귀엽고 앙증맞은 소녀로 그리고 싶었다. 구미호 설정도 사람의 간을 먹지 않는다. 좀 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취향이 '미소녀향'인가?= 일본 만화나 캐릭터도 좋아하고, 오타쿠적인 게 좀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미호 캐릭터를 너무 취향적으로 만들면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보는 사람마다 구미호 자매의 캐릭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 독자분이 소셜미디어에 '그림체가 수상해지고 있다'는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매우 건전한데 뭔가 그런(?) 느낌이 있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여우자매' 2부로 내년에 복귀한다. 여우자매 시즌2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1부에서는 의도하지 않게 류월이에게 스토리가 집중된 감이 없지 않다. 2부에서는 막내 류화가 중심이 될 것 같다. 장녀인 류월이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아마도 제가 장남이다보니 첫째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것 같다. 그러면서 막내 류화에게 소홀해진 측면이 있다. 류화가 사고치면 류월이가 늘 뒤치다꺼리를 한다. 2부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좀 더 성숙해진 류화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3부도 구상 중인데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해 서사가 일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구미호도 인간처럼 신체적으로 성숙해지고 감성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웹툰 '여우자매' 갈치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아버지가 애니메이터라고 들었다.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아버지가 나름 업계에서 인지도가 있으시다고 들었다. 대표적으로는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프레임 작화를 하셨는데, 고길동이 공룡의 뼈로 칼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담당하신 것으로 안다.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시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다른 집 아이들과 달리 아버지는 오픈 마인드였다. 콘솔 게임을 좋아하시는데 가족이 함께 즐긴다. 어느날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종일 게임하는 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아빠가 어릴 때 저런 게임기가 없어서 많이 못해 봤대. 얼마나 행복해 보이니? 보기 좋다'고 하셔서 놀란 적도 있다.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게임을 하실 정도다. 그런 집안 분위기가 있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게임을 좋아하고 만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작품들을 거부감 없이 접하게 됐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따라하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미술쪽으로 전공했는데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사실 베스트 도전만화 할 때 부모님과 의견차가 있었다. 대학에 진학은 했지만 제 적성이 아닌 것 같아서 자퇴하겠다고 했다. 만화에 관심 있고 그래서 배우려고 대학에 간 것인데 만화 작가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에 불필요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 반대가 컸다. 아버지가 '네가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뭘 믿고 자퇴를 시켜주느냐'고 하시더라. 그게 가슴에 많이 박혔다.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무작정 떼를 썼구나 싶었다. 그래서 휴학을 한 뒤 이를 악물고 만화를 그렸다.
▶결국 경제적 독립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님이 데뷔 후 뭐라고 하셨나?= 첫 월급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아버지께 플레이스테션5를 사드렸고, 두 번째 월급 때는 넷플릭스를 즐겨보시는 어머니를 위해 갤럭시탭 최고 사양을 선물해드렸다. 남동생이 군대 가 있는데, 어머니께 동생이 사회생활 할 때 뒷받침이 될 수 있게 매달 100만원씩 적금 부어달라고 말씀드렸다.
제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도전만화를 시작했는데 정식 데뷔 연재를 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코로나 여파가 커지면서 애니메이터였던 아버지도 일감이 없어져 일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집에서 영혼 없는 눈으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가장으로서 힘든 시기를 보내셨던 것 같다. 제가 베스트 도전만화 1위를 하고 정식 작가로 데뷔하는 모습까지 보시고는 의지가 생긴다고 하시더라. 우울감을 떨쳐내고 지금 다시 현역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계시다.
▶작가들 대부분이 연재 마감의 부담을 느끼는데, 스트레스를 푸는 노하우가 있나?= 동네 친구와 종종 영화를 보러 간다. 너무 틀어박혀 있으면 고립감이 든다. 연애도 도움이 된다. 만화를 좋아하고 취향도 비슷해 공감해주는 부분들이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댓글을 아예 보지 않는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다. 영화든 게임이든 친구든 다른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저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F'일 것 같은데 MBTI는?= INFP다. 집돌이에 소심하고 감성적이고 계획 없는 스타일인데, 단점을 보완하고 극복해서 '완벽한(?) INFP'가 되고 싶다.
▶지금의 작품 외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작품이 있나?= 현재는 '여우자매'의 서사를 완성하는 데 모든 것이 집중돼 있는 상태다. 4, 5부가 되는 '여우자매'를 나의 대표작으로 완성하고 싶다. 그림체를 새롭게 바꾸는 것보다 지금의 수준에서 더 발전했으면 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만화에서 여자 캐릭터를 가장 잘 그리는 장르가 성인 만화라고 생각한다. 섬세하고 선을 잘 표현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나바 하치 작가의 판타지·로맨스 만화 '호랑이는 용을 아직 먹지 않는다'는 섹슈얼한 연출은 있지만 야하지는 않다. 적나라하지 않으면서 그림에서 오는 독특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차별화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웹툰 '여우자매' 갈치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존경하는 만화가는?= 제 작품관에 중심을 잡게 해준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 작가, '귀멸의 칼날'의 코토케 코요하루 작가다. 소년만화처럼 누가 더 세고 경쟁하는 것보다 감성적 판타지물을 좋아한다.
▶한국 웹툰 산업은 지속 가능할까?= 한국 웹툰의 경쟁자는 일본 만화가 아니라 유튜브라고 생각한다. 저도 20대지만 제 주변에 의외로 웹툰을 본다는 친구들이 많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유튜브나 OTT의 영향력에서 다시금 시선을 빼앗아 올 만한 화제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귀멸의 칼날' 같은 만화처럼. 그런 분기점이 지속해서 있어야 웹툰이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거창한 얘기지만 제가 그런 모멘텀이고 싶다.
웹툰의 애니메이션 영상화도 중요한 축이다. 드라마나 영화화는 많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드라마는 현실 기반에 중심을 두다보니 판타지나 SF 장르에서는 표현이나 상상력에서 연출이 어려운 부분도 많다. 애니메이션의 강점이 거기서 나온다. 자유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이 가능하다.
▶웹툰 작가가 롱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 작가의 흥미와 재미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재밌어야 독자들도 재밌게 본다고 생각한다. 속칭 '단골 장사'라고 한다. 내 취향과 다른 사람도 있지만 단골손님들이 있다. 서로 공감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다. 아버지 말씀 중에 '뭐든지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일이 풀린다'고 한 말씀이 있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지루할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힘든 시기를 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상상력과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다 보면 어떤 일을 하던지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활동 외에 일상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미술학원에서 보조강사를 한다. 아이들의 그림만 봐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려고 하는데, 시간도 잘 가고, 하는 일이 의미 있고 재미있어지게 만든다. 일의 즐거움을 찾는 게 롱런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웹툰 '여우자매' 갈치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갈치 작가의 싸인과 '여우자매'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