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과거에는 유엔군사령부를 전투사령부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유엔사가 별도의 작전을 수행하는 것 아니냐는 건데, 그렇게 된다면 그건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없다."
정부가 유엔사에 한국군 장성급 장교를 포함한 참모부 파견을 검토 중인 가운데,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엔사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 관련 질문을 받고 이렇게 선을 그었다. 처음으로 열리는 한-유엔사 국방장관회의를 앞둔 시점이었다.
'재활성화' 방안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 겸직) 시절 시작돼 최근까지 숱한 추측과 의심을 낳았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유엔사를 '전투사령부'로 만드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인데, 이를 해명한 셈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대한 억제력 확보를 위해 유엔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 바로 '일본'이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고, 과거 일본군을 연상시키는 자위대의 한반도 문제 개입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숱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 '전투사령부'였던 유엔사, 연합사에 작전통제권 넘겨…2010년대 '재활성화' 거론
'재활성화'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유엔사와 연합사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거, 미국에 권한을 위임해 유엔사를 출범시켰다.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미군 등 6.25 전쟁에 참전한 다국적군은 모두 유엔 '깃발' 아래 참전했고, 유엔사는 실제 전쟁 수행을 지휘하는 전투사령부 역할을 수행했다. 유엔사 출범 직전인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서신을 통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양했다.
정전체제가 계속되던 와중인 1975년 11월 유엔총회에서는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결의 2건(3390-A, 3390-B)이 동시에 통과됐다. 둘은 각각 서방측과 공산측 입장이 반영돼 있는데 '조건'은 다르지만 해체라는 결론 자체는 같다. 특히 3390-A는 유엔사 해체 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당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유엔사를 해체하는 대신 역할을 축소해 정전협정 관리와 전시 증원전력 제공만을 맡게 하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해 기존에 유엔사가 맡고 있던 한미연합군의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로 넘겼다.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이양됐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은 연합사에서 행사한다. '전시'의 기준은 데프콘 3이며, 한국은 항시 데프콘 4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엔사는 맡는 임무가 축소된 만큼 규모도 축소됐고, 참모 조직을 이루는 장교들은 모두 연합사 또는 주한미군사와 겸직을 하는 형태로 정립됐다. 현재 유엔사에 파견되는 한국군 장교 중 가장 높은 계급은 육군 소장으로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맡는데, 이 또한 연합사 부참모장직과 겸하는 형태다.
2014년 커티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미 국방부에 보낸 '유엔사 재활성화'라는 제목의 서신에서 "유엔사는 대한민국 방어를 위해 다국적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정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적대행위를 적극적으로 억제하고 확전을 방지하며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재활성화'라는 말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한미연합사 창설 45주년 기념식. 연합뉴스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군사령관' = '연합사 부사령관'…'전투사령부'화에 대한 우려와 해명
한미가 추진하고 있는 전작권 전환은 미군이 연합사령관, 한국군이 부사령관을 맡던 현행 시스템을 맞바꿔 한국군이 미래연합사 '사령관', 주한미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체제다. 문제는 미군이 '부사령관'을 맡게 되더라도, 같은 인물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미군이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한반도 군사환경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유엔사를 통해 별도의 군사작전을 수행하거나 평시에 한국군 병력을 통제하려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 2020년 장광현 전 군정위 수석대표(현 아시아투데이 부사장)은 저서 '다시 유엔사를 논하다'에서 "미국은 버웰 벨 전 사령관이 '유엔사가 전시 지휘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을 한 이후 현재까지 유엔사의 전투사령부화와 관련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며, "유엔사의 전투사령부화 및 유엔 지원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 보유를 주장하는 배경 및 필요성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이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다만 같은 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국방부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미래에 유엔사를 전투사령부로 바꿀 그 어떤 비밀계획도 없다. 트로이 목마도 아니고, 절대로 비밀계획은 없다"며 "미래 유엔사의 역할은 정전협정 준수와 적대행위 방지, 위기 상황 발생시 동맹 작전 지원을 촉진하기 위한 사령부 조직화로 지금과 같을 것이다"고 부인했다.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국방부 관계자는 "재활성화라는 개념은 지금까지의 유엔사 참모 조직이 한국군과 미군에서 다른 직위를 겸직하면서 운용돼 오는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별도 참모부 구성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가깝다"며 "유엔사가 전투사령부가 되고 별도의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면 그건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없으며,
미국 측에서 수 차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소식통은 내막에 대해 "미군이 전 세계적으로 부대 수를 줄이는 상황에서, 유엔사도 마찬가지로 자리가 줄어들려고 하는 상황이었다"며 "재활성화란 유엔사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규모를 유지하려면 유엔사도 어느 정도 규모의 참모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나라 참모들을 데려왔다"며 "현재 연합사의 전투참모단 규모만 휘하 구성군사령부를 제외하고도 1천명 정도로, 100명 정도에 불과한 유엔사가 참모부를 조금 더 늘린다고 해서 전투사령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는 국방부의 설명과 궤를 같이한다. 현재 국방부는 이 '재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한국군 장성급 장교를 포함한 참모부 파견을 지난해 11월부터 협의 중이며 규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한국군의 전작권 행사를 확실히 해 두기 위해 아예 한국군 장성이 유엔사 참모부로 들어가 전시증원(RSOI)에 관여해 보겠다는 계산일 수 있다"며 "물론 한국군 장성이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군사령관 겸 미래연합사 부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어 한국군 4성 장군의 미래연합사 작전통제권 행사가 약화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 연합뉴스유엔사 강화에 몸값 높아지는 '일본'…회원국 가입한다면, 평시 연합훈련에도 자위대가?
그런데 '재활성화'와 함께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윤석열 정부가 유엔사와의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몸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나라, '일본'이다.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은 "양 장관은 정전협정을 이행하는 데 있어 유엔사를 지원하는 방안들을 강구하는 한편, 한반도 안보에 대한 유엔사의 기여를 확대하기 위해 대한민국과 유엔사 회원국들간 연합훈련 확대와 상호운용성 강화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하였다"며 "양측은 유엔 헌장의 원칙과 결의에 기반하여
한미와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 입장국들의 유엔사 참여를 통해 유엔사 회원국의 확대를 모색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언급했다.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의 결과로 내년부터 한미일은 연간 계획에 의거해 3자 훈련을 실시한다. 그러잖아도 일본은 본토와 오키나와에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두고 있어 전시에 증원전력과 물자 등이 이 기지들을 거쳐 한국으로 제공된다. 때문에 유엔사 관련 논의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까지 생각해 보면 '유사 입장국'이란 다시 말해 '일본'으로 해석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의지를 갖고 있으면 (회원국들이) 합의를 해서 추가적으로 회원국 확대도 가능하다"면서도 일본의 참여에 대해 묻자 "합의가 돼야 하며, 그 합의는 여러 가지 또 다른 고려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이 '자의든 타의든 유엔사 가입 이후 활동에 제한사항을 두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자 "(유사시 한국을 방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지, 제한사항을 달아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나라는 없다"고 답했다.
이는 결국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가입 또는 참여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인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위대가 RSOI 연습 등을 빌미로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을 가능성이다. 국방장관회의 결과에서 "현재의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연습과 훈련을 활성화하고 상호교류와 협력을 지속 증대하기로 하였다"는 점까지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유엔사의 현 임무 자체가 전시 증원전력 관할이고, 거기에 일본 자위대가 참가한다면 평시 한미연합훈련 과정에서도 자위대가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전쟁 수행 능력 차원에서 일본의 후방기지는 필수이고, 이를 포함해 일본의 군사적 능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2015년 10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한국의 유효 지배가 미치는 영역은 군사분계선 이남"이라며 한국의 영토고권(領土高權)을 부인했던 일본 정부의 입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조성렬 초빙교수는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참여 문제는 일본이 군대의 상호방문과 접근을 쉽게 하는 호혜접근협정(RAA)을 영국, 호주와 체결했고 프랑스, 필리핀과도 추진 중인 것과 연관되지 않았나 의심되는 부분"이라며 "만약 일본이 유엔사 회원국이 된다면 한국과 RAA 또는 방문군협정(VFA)을 맺고 유엔사 RSOI 연습을 구실로 일본 자위대가 수시로 한국 영토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처럼 국방부 차원에서 가능한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처럼 국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한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