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과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군자의 복수는 10년 지나도 늦지 않다(君子報仇 十年不晩)",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이 표현은 복수에 대한 중국인의 철학을 잘 담고 있다.
복수를 위해 인내하며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 닦는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대국 답지 않게 그만큼 뒤끝이 오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7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내려진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아직도 건재한 것만 봐도 이는 사실인듯 하다.
지난 17일 폐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을 건너뛴 것도 이런 중국의 뒤끝이 아닌가 싶다.
연합뉴스시 주석은 대중국 수출.투자 통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 그리고 후쿠시마 제1원전 핵오염수 방출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그런데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주요 교역국인 한국 대통령과는 다른 회의 시작 전 단 3분간 만나 지극히 형식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다.
우리 정부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듯 하다. 시 주석은 미국, 일본 뿐만 아니라 브루나이·피지·페루·멕시코 정상과도 회담에 나섰다.
이를 두고 중국의 뒤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뒤끝을 잘 알면서도 빌미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것이 현 정부의 외교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한미일 공조 강화에 외교적 총력을 다했다. 그 결과 이전 어느 정부에 비해서도 북핵 대응을 위한 3국간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성과로 꼽을만 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중국과 척을 지는 상황이 빚어지고 말았다. 중국은 한미일 공조 강화는 북핵 대응이라는 목적 외에 중국 견제라는 목적도 크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을 상대로 미일과 공조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로 인해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이런 노력이 있었느냐고 묻고 싶다. 오히려 보수층으로부터 친중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중국과 일부러 거리를 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시 APEC 정상회의로 돌아가 미국은 자신들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 정상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장관급 인사들을 끊임없이 중국으로 보내 설득작업을 벌여왔다.
이번에 미중 정상회담의 성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특사,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최고위급 인사들을 중국으로 보내 오랫동안 설득에 나선 결과물이다.
지난 4월 12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을 방문했다. 인민일보 홈페이지 캡처사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기회가 몇차례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12일 시 주석의 LG디스플레이 중국 광저우 공장 방문이 바로 그런 기회였다.
시 주석의 외국계 기업 방문이 매우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사상 처음으로 한국 기업을 방문한 것을 두고 한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불과 바로 일주일 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앞두고 한 외신 인터뷰에서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만 문제를 꺼내 들면서 오히려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됐다.
다행히 시 주석이 지난 9월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또, 내년 초쯤 한국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중일 정상회의 역시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뒤끝이 만만찮은 중국이 오랜동안 손을 내민채 한국이 손을 맞잡기를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중 관계에 정통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최근들어 중국 측이 한국의 총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현 정부를 대하는 중국의 입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 뒤 여론에 등떠밀려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경우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총선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지금이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