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금토드라마 '연인'서 속환된 사대부 여인 길채 역의 배우 안은진. UAA 제공초반 미스 캐스팅 논란도 결국 지나고 보니 성장 서사가 됐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의 여자 주인공 길채 역의 배우 안은진 이야기다. 안은진에게 길채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였다. 사대부 가문의 철부지 '애기씨'였던 길채는 전쟁통에서, 포로란 치욕 속에서 끝내 '생존'해 '사랑'을 쟁취해 내고야 만다. '연인'은 장현과 길채의 애틋하고 애절한 멜로인 동시에, 길채란 한 인간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성장기다.
지금은 모두에게 박수를 받고 있지만 방송 초반만 해도 마을 남자 모두를 사로잡는 외모 설정이 안은진의 발목을 잡았다. 오매불망 '짝사랑남'만 생각하는 철없는 '애기씨' 연기가 안은진과 어울리지 않아 '몰입이 깨진다'는 혹평도 들려왔다. 청나라 황녀 각화(이청아 분)의 등장에 여자 주인공이 교체된다는 설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안은진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길채의 용기를 발판 삼아 주눅 들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진짜 연기하면 닿을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혹독한 과정을 거치며 끝까지 지켜냈다.
안은진은 본격적인 병자호란 서사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애기씨'는 어느새 강인한 여성이 되어, 자신과 가족들, 사랑하는 남자를 잃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고 있었다. '길채' 안은진이 구르고, 장현(남궁민 분)과 이별하고, 시련을 당할수록 '연인'을 향한 시청자들의 애정은 뜨거워졌다. 시청자들이 성장한 길채를 거침없이 따라갔기에 안은진의 진심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에게 '연인'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첫 사극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깊은 멜로와 서사를 스스로 녹여내고 표현할 수 있었다는 지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나 어려움을 만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니 여러 고생을 짐작해 볼 만하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스스로를 믿고, 현장을 믿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솟아났다. '연인'을 통해 안은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셈이다. 다음은 안은진과의 종영 인터뷰 일문일답.
MBC 금토드라마 '연인'서 속환된 사대부 여인 길채 역의 배우 안은진. MBC 제공Q 파트1과 함께 길채와 장현이 정말 끝나는 줄 알았다. 길채가 너무 일찍 결혼하기도 했다. 상당히 시청자들 원성이 나왔던 전개다A 속환(청군에 잡혀갔다 송환된 조선인 포로)에 관한 이야기를 작가님이 많이 하고 싶으셨고, 길채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이후에 길채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이혼을 하는 과정까지는 결혼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당시 논란이 참 많았고, '너무한 거 아니냐'는 연락도 많이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길채의 선택들이 많이 호응을 얻게 됐다.
Q 첫 사극이었고, 파트1과 파트2의 캐릭터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도 했다. 길채의 성장사를 그려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A 초반 길채를 두고 준비를 많이 했다. 연기 톤을 잡기가 어려웠어서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개인적으로 만나서 잡아나갔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오히려 고민 없이 주어진 상황에 맞게 따라가기만 해도 됐다. 초반 길채 캐릭터가 잘 잡혀 있어야 그 뒤에 하는 모든 선택들이 길채니까 할 수 있는 선택이 되는 거였다. 작가님이 길채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은 장면과 대사를 주셨기 때문에 캐릭터가 풍성해졌다. 길채에게 위로를 받은 대사도 많았다. 심양에서 남편이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잃어버렸는데 장현이 자신을 살리려고 노력하니 또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조선에 돌아가 보란 듯이 씩씩하게 잘 살겠다"고 한다. 그게 길채가 가진 생명력이다.
Q 조선시대인 점을 감안하면 길채는 정말 주체적이고 용기 있는 여성 캐릭터다. 본인도 여기에 좀 영향을 받았는지 A 조선시대에 이혼 등 선택을 할 수 있는 부분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길채가 참 멋있었다.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한 구석에는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누구나 있지 않나. 그러니까 오히려 길채가 멋있는 거 같고, 길채의 대사를 제 입으로 하면서 평소에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많이 느꼈다. 저도 굉장히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작가님의 길채의 생명력에 대해 쓰신 대사들이 있는데 역경에 맞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와 많이 다르지만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과 용기를 얻었다. 용기와 행동력을 보면 길채가 저보다 더 단단하고, 강인하고, 주체적이고, 멋있는 사람이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서 속환된 사대부 여인 길채 역의 배우 안은진. MBC 제공Q 주인공 두 사람의 너무나 애틋하고 절절한 멜로였고, 결국 이를 통해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상대역인 배우 남궁민과의 호흡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A '연인'이 정말 완벽한 제목이다. 서로 눈만 보면 계속 그렁그렁했다. (웃음) 짧게 행복한 장면을 찍으면 또 너무 행복하고 편안한 감정을 같이 느꼈다. 언제 이런 작품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이 해피엔딩인데도, 저희가 너무 많이 울었다. 서로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아도 서로를 위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선배님이 연기를 워낙 디테일하게 하시기 때문에 저는 그냥 감정 변화만 보고 있어도 연기가 해결이 됐다. 남궁민이 왜 남궁민인지 너무 느낄 수 있었다. 멜로 파트너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많이 챙겨주셨다. 영양제도 주시고, 대기하고 있다가 햇빛이 들면 '우리 길채 안 된다'며 가려주시고 그러셨다. 저는 원래 이렇게 '스윗한' 분이시구나 했는데 멜로 상대라서 더 애틋하게 해주셨고 하더라. 후배인 저로서도 선배님의 다정함 안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Q 넘기 쉽지 않은 두자릿수 시청률에, 실제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최근 트렌드인 속 시원하고 빠른 전개의 드라마와는 아예 호흡이 다른데 이런 좋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A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을 한다. '연인'처럼 주인공을 통해 포로들의 이야기, 전쟁 이후의 삶 등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길채의 성장 이야기 안에서 작가님은 백성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다. 이게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들이고,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들 몰입해 주신 것 같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좋은 것보다 제가 체감한 건 주변 분들에게 연락이 오면 '연인'을 잘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캐릭터와 상황에 푹 빠져 계시더라. 재미있거나 좋은 드라마이기 보다는 같이 가슴 아파하며 남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Q 그 동안 국내 콘텐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속환'에 관한 이야기를 깊게 다뤘다. 역사 고증 관련 부분도 따로 공부하거나 준비한 지점이 있다면 궁금하다
A 병자호란 시기에 대해서는 영화 '올빼미'에 참여하면서 자세히 공부를 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속환은 어디서 찾아보거나 도움을 받을 데가 많이 없었다. 드라마를 하면서 저도 많이 공부가 됐다. 심양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갈 곳 없는 사람들, 그리고 '환향녀'라고도 알고 계신데 이혼이 많았다고 하더라. '내 부인이 속환됐기 때문에 이혼을 하겠다'는 상소를 많이 올려서 이혼이 성립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현장에서 그런 장면을 찍거나 하면 어떻게 이렇게 기구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길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현실은 더했을 거란 이야기를 저희끼리 하기도 했다. 작가님이 캐릭터마다 포로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써주셔서 너무 슬프게 감정 이입을 했다. 제가 찍지는 않았어도 그런 장면을 통해 그 시대를 간접 경험한 것 같다. 역사에 없는 이야기를 굳이 더하거나, 있는 이야기인데 덜하지 않는 점도 좋았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서 속환된 사대부 여인 길채 역의 배우 안은진. UAA 제공Q 초반에 물론 부침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연인'을 통해 또 한 발짝 성장을 이뤄낸 거 같다A 하기 전에 부담이 참 많이 됐고, '애기씨'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마음고생이 사실 있었다. 파트2에 가면서 오히려 제 나이를 찾은 느낌이었다. 전체 대본 리딩을 한 날 밤에 정말로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현장에 내던져지면 거기서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현장을 믿고 좀 덜 힘들게, 자유롭게, 재미있게 연기해도 되겠단 자신감이 '연인'을 통해 이뤄낸 성장 같다. 첫 대본 리딩 날에 친구들과 이 작품을 끝내는 날이 상상도 가지 않는데 이게 끝나면 정말 뭔가 크게 되어 있을 거 같단 이야기를 했던 생각이 난다. 일단 이 다음에는 어려운 캐릭터, 힘든 상황을 만나도 어쨌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Q 201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데뷔해 '타인은 지옥이다' '킹덤' '슬기로운 의사생활' '경우의 수' '한 사람만' '올빼미' '나쁜 엄마' 등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거쳤다. 데뷔 초와 지금, 배우로서 연기에 대해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A 제 다이어리에 매달 월간 목표를 적어 놓는다. 대부분 진짜로 하려는 것만 적혀 있다. 최근에는 '연인' 촬영이 있었으니까 '마지막 집중' 이렇게만 써 놓았다. 촬영을 하면 순간, 순간 진짜인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고, 그게 결국 시청자들에게 닿는다는 건 변함없는 생각이다. 제가 부족할 때가 있어도 그걸 놓지 않고 가야만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그 부분으로는 텐션이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진짜로 해야만 닿는다'. 배우는 일종의 통로다. 물론 외적인 요소들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작가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통로가 되어야 한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그냥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잘 쓰임 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