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19일, 24~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NCT 127 세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서울 - 더 유니티' 포스터. SM엔터테인먼트 제공지난달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 그룹 엔시티 127(NCT 127)의 세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서울 - 더 유니티'(NEO CITY : SEOUL - THE UNITY) 공연 중반부, 하늘에서 샤막(반투명 스크린)이 내려왔다. 샤막이 한 겹을 친 덕에 형체가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가운데, 멤버들은 발라드곡 '신기루'(Fly Away With Me)를 노래했다.
보통 아이돌 콘서트에서는 해당 파트를 맡은 멤버를 가깝게 잡는 얼굴 위주의 카메라 샷 비중이 큰데, '신기루' 무대는 오히려 멤버들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감추도록' 연출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끌어올린 샤막을 중심으로, 거대한 수조처럼 비치는 무대는 하나의 설치미술 같았다. 시야 제한 때문에 멤버들의 모습은 물론 연출 의도를 읽어내기 힘들었다는 아쉬운 반응도 나왔으나, 오히려 라이브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관객 후기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반응 가운데 '신기루'는 단연 이날 공연 화제의 무대였다.
NCT 127은 데뷔 첫 단독 콘서트였던 '디 오리진'(THE ORIGIN)을 개최한 장소인 체조경기장에 4년 만에 돌아와, 처음으로 시도한 '2주 6회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유닛, 솔로 무대 없이 단체 무대로만 세트 리스트를 꽉 채운 이번 공연은 멤버들의 라이브, 퍼포먼스만큼이나 연출 전반에 관한 호평이 자자했다. CBS노컷뉴스는 '더 유니티'를 연출한 SM엔터테인먼트 공연 연출 담당 김경찬 수석을 지난 12일 서면 인터뷰해 이번 공연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과정을 들어보았다.
'더 유니티'는 '디 오리진'과 '더 링크'(THE LINK)에 이은 NCT 127의 세 번째 투어다. SM엔터테인먼트는 '더 유니티'를 '디 오리진'과 '더 링크'를 아우르는 콘셉트라고 소개한 바 있다. 두 공연에서 가져왔거나 발전시킨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더 유니티' 첫 곡은 '펀치'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두 공연에서 직접적으로 포인트를 가져오기보다는 공연 오프닝 VCR에 엔터(ENTER)를 치는 장면이 등장해요. 엔터를 치는 것과 동시에 관객들이 공연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표현했는데요. 그 장면으로 관객과의 연결, 즉 링크(THE LINK)를 표현했고, 퍼포먼스가 강점인 NCT 127의 정수(THE ORIGIN)를 느낄 수 있도록 오프닝 구성을 고민했어요. '디 오리진' 때와 같은 공연장에서 진행되는 만큼 첫 투어와 현재의 투어 속에서 아티스트와 관객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들을 확장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돌출 무대를 2층 객석과 가까운 곳까지 확장한 것도 '아티스트와 관객이 공유하는 추억을 확장'하는 한 예였다. 김 수석은 "이 부분은 저희 팀원의 의견에서 시작되었다. 공연장에서 아티스트와 가까이 호흡하며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설명해준 것들을 무대 디자인에 반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공연은 아티스트, 관객, 스태프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연의 흐름과 호흡을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콘텐츠를 다시 한번 해석하며 놀 수 있는 요소가 있는가?'를 생각하며 공연을 만든다"라며 "안무 구성이나 무대 디자인, 그리고 음악 작업까지, 공연은 모든 스태프의 훌륭한 호흡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과정이었다"라고 돌아봤다.
멤버들이 공연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더 유니티'의 콘셉트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따왔다. 김 수석은 '아티스트 NCT 127에게 현시점에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란 질문의 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공연을 이어가되, 마무리 지어주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더 유니티'에서는 가로 60m, 세로 14m의 대형 LED 스크린이 쓰였다. 메인 화면이 삼각형인 것이 특징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김 수석은 "'NCT 127의 탄생('디 오리진')에서 시작하여 모두가 연결('더 링크')된 세계 안에서의 자각, 동시에 NCT 127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 관한 선택이라는 결말을 지어주고 싶었고, 그것이 이번 공연의 타이틀인 '더 유니티'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를 미학적으로 표현하고자 영화 '매트릭스'를 모티프로 했다. 공연 오프닝 VCR에는 'Truth'(진실) 'Fate'(운명) 'Neo'(새로운) 'Choice'(선택)라는 4개의 단어를 넣었다. 김 수석은 "이 단어가 '더 유니티'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관객에게 다가가길 바랐다"라고 부연했다.
'더 유니티'에는 가로 60m, 세로 14m의 대형 LED 스크린이 쓰였다. 무대에 따라 스크린이 다채롭게 활용됐으나, 메인 화면이 삼각형 모양인 것은 보기 드문 사례였다. 다소 고난도의 도전은 아니었을까.
"제 스승님이 하셨던 얘기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 '의미 있는 차별화'"다. 지금 하는 공연이 이 가수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라고 운을 뗀 김 수석은 "무대 디자인을 하면서 이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 연출가 스스로 납득이 간다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실행하고 있기에, 이번 무대 디자인도 모험보다는 차별화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NCT 127은 첫 곡 '펀치'를 시작으로 앙코르곡 '다시 만나는 날'까지 27곡의 무대를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첫 곡은 '펀치'(Punch)였다. 다음 곡은 '슈퍼휴먼'(Superhuman)이었다. 두 곡 모두 최근 NCT 127 콘서트나 각종 무대에서 보기 어려운 곡이었다. 콘서트의 첫인상을 심어주는 곡인 만큼 오프닝 곡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김 수석 역시 "선곡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첫 번째 섹션의 두 곡이었다. 이번 공연의 메인 테마를 나타내는 곡으로 '펀치'와 '슈퍼휴먼'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평소 공연을 만들 때 세트 리스트를 아티스트와 상의하면서 결정하곤 한다는 김 수석은, '더 유니티' 선곡 또한 NCT 127과의 활발한 소통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완성된 세트 리스트'만큼이나 세트 리스트를 결정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는 "공연 주체인 아티스트의 의견이 반영돼야 공연의 흐름상 자연스러움이 묻어나고 저 또한 공연에 관한 아티스트의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어서 연출가로서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부연했다.
'신기루' 무대 때 샤막이 아래로 완전히 내려온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더 유니티'에는 NCT 127이 가진 여러 가지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자주 회자한 무대 중 하나인 '신기루'는 '남성 중창단'이라는 애칭을 가진 NCT 127이 준비한 발라드 섹션의 두 번째 곡이었다. 아이돌 콘서트에서 반투명 스크린을 늘어뜨려 형체를 흐릿하게 만드는 연출은 모험이지 않았을까. 연출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신기루' 무대는 '아이돌 공연에서도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롯이 아티스트의 목소리에 기대는 새로운 체험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시각적 쾌감도 주고자 스토리를 가진 비주얼이 전개되는 연출을 기획했어요. '신기루' 노래가 끝날 때까지 샤막이 유지된 채로 진행하는 게 원래 연출 의도였는데, 첫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피드백을 찾아보며 이대로 지속할지 방향을 바꿀지에 대한 고민을 했죠. 이에 두 번째 공연에서는 방향성을 살짝 바꿔서 노래 후반부에 샤막이 내려가는 연출로 수정했고, 세 번째 공연에서는 아티스트 의견도 받아서 화면 중계도 추가해서 지금의 '신기루' 무대가 완성되었습니다."'신기루'는 '체조경기장'이라는 공연 장소의 덕을 본 무대이기도 하다. 김 수석은 "트러스(truss)를 세우지 않고 경기장 위쪽에 장치물을 리깅(rigging)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에 상부 장치물을 이용한 연출을 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오프닝 등장 신과 '신기루' 연출은 체조경기장이라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트러스는 무대 설치에 필요한 장치를 다는 구조물이고, 리깅은 장치를 조작하거나 지지하고자 고정하는 것을 뜻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