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서정암 아나운서
◇ 채선아> 외동딸이었던 한 여성이 DNA 검사 사이트를 통해 혈연관계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자신에게 7명의 형제자매가 있다고 확인이 됐는데요. 심지어 그 숫자는 93명까지 늘어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2014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있었던 사건, 오늘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서정암 아나운서 나와계세요. 안녕하세요.
◆ 서정암> 안녕하세요. 오늘은 채선아 아나운서가 준비한 사건 이야기를 들어보는 날이죠.
◇ 채선아> 제가 오늘 들려드릴 사건은 '나도 몰랐던 93명의 형제들'인데요. 일단 오늘 사건의 세 가지 단서부터 보여드리고 가겠습니다. 저희 유튜브 <오뜨밀> 채널로 오시면 화면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정암> 지금 단서가 세 가지가 나왔는데요. 첫 번째 단서는 가족사진이고요. 두 번째 단서는 난임 병원이네요. 그리고 세 번째 단서는 예레미야 1장 5절입니다.
◇ 채선아> 첫 번째 단서 가족사진부터 볼게요. 오늘 사건의 주인공은 미국 인디애나 주에 사는 30대 여성 자코바입니다. 자코바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부모와 그리 닮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외형적으로만 봐도 엄마 아빠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는데 자신은 금발에 파란 눈동자였으니까 가족사진을 찍어도 본인만 탁 튀는 거죠. 그때부터 자코바는 '아 내가 입양됐구나' 이렇게 짐작만 해왔거든요.
그러다 나중에 커서 부모님께 출생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때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아이를 우리가 간절히 원했는데 자연 임신이 되지 않았어 우린 의학의 도움을 받았고 다른 사람의 정자를 기증받기로 했단다."
◆ 서정암> 자코바가 좀 놀라긴 했지만 어쨌든 속이 시원할 것 같아요. 이제 30년 만에 그 의문이 풀렸으니까
◇ 채선아> 속이 시원하다 못해 자신의 배다른 형제자매까지 찾기로 결심을 합니다. 나라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부모님이 불임 시술을 받은 이 병원은 정자 기증 원칙을 보니까 한 사람의 정자를 최대 3번까지 사용 가능하다는 거예요. 만약에 무분별하게 정자 기증을 하면 이복형제자매들끼리 본인도 모르게 연인이 되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질 수도 있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 정자 기증 횟수를 제한하고 있었거든요. 이걸 알게 된 자코바가 최대 3번 그러면 혹시 한 2명 정도는 형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어쩌면 가족사진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자신과 닮은 누군가를 찾을 수 있겠구나 이런 호기심을 가졌던 거죠.
◆ 서정암> 그렇군요. 그런데 이게 사실 찾고 싶다고 해서 찾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찾는 거예요?
◇ 채선아> 마침 나온 서비스가 있었는데 개인의 DNA 결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DNA 지도를 그려주는, 말 그대로 혈연관계를 찾아주는 서비스가 나왔던 거예요. 자코바는 이 사이트를 알게 되니까 바로 가정용 DNA 키트를 받아서 검사 의뢰를 했고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배다른 형제자매가 무려 7명이 나왔어요.
◆ 서정암> 7명이요? 아까 정자 기증 원칙에 3개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7명이 나올 수 있는 거죠?
◇ 채선아> 아마 '이 서비스가 초기다 보니까 뭔가 문제가 있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자코바는 배다른 남매들한테 직접 연락을 취했어요. 자코바의 연락을 받은 사람들도 굉장히 황당해 했거든요. 결국에 이들이 만나기로 합니다. 그리고 약속 당일이 됐는데 자코바는 이들과 마주하자마자 뭔가 느낌이 확 왔다고 하더라고요. '나와 혈연관계가 맞구나' 왜냐하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자신과 다 닮아 있는 거예요. 모두 금발에 파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코바도 조금 놀랐지만 이 만남에 온 사람들은 더 충격을 받았어요. 부모님이 인공 수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자는 우리 아빠 걸 이용한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닌 거예요.
◆ 서정암> 그러면 이분들은 내가 태어나게 된 정자가 아빠께 아니라는 걸 이제 막 알게 된 거네요.
◇ 채선아> 여기서 따라오는 질문은 '그럼 누구의 정자를 사용한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거기에 모인 형제자매들이 그게 가장 궁금해서 우리의 자코바가 또 행동파잖아요. 본격적으로 추적에 나섰습니다. 일단 그날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더니 모두 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어요.
◆ 서정암> 어쩐지 같은 지역에 만나자 했을 때 오케이 하고 바로 오는 게 좀 근거리에 있는 느낌이긴 했어요.
◇ 채선아> 미국 땅이 굉장히 넓잖아요. 이들은 가까우니까 금방 만날 수 있었던 거예요. 다들 인디애나폴리스 중심부를 기준으로 반경 40km 중심으로 거주 중이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쉽게 만남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는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요. 자코바가 일일이 남매 한 사람 한 사람 친척들을 다 추적해 봤거든요. 거기서 나온 이름이 바로 클라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좀 쉽게 풀렸던 게 이 클라인이라는 사람을 많이들 알고 있더라고요.
◆ 서정암> 좀 유명한 사람인 건가요?
◇ 채선아> 네. 이 동네에서 굉장히 기부도 많이 하고요. 교회 장로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대요. 그리고 30년 동안 일을 하다가 은퇴하고 봉사도 하면서 명망이 높은 인물이었는데요. 그의 본래 직업이 한몫했다는 소문이 들리는 거예요. 바로 난임 전문의였습니다.
◆ 서정암> 그러니까 자기도 몰랐던 이복형제자매들이 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이들과 이 동네의 난임 전문의 클라인이 관련이 있다는 거죠?
◇ 채선아> 그래서 두 번째 단서가 난임 병원입니다. 클라인은 그냥 동네 작은 병원의 의사가 아니라 미국의 각종 매체에서 '인공 수정의 일인자'로 소개될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난임 전문의였어요. 아까 자코바의 부모님도 불임이라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동네에 이렇게 유명한 곳이 있으면 당연히 여기를 갔겠죠. 그리고 혈연관계로 밝혀진 7명의 형제자매들의 부모님도 모두 다 이 병원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병원을 이용한 이들이 어떻게 혈연관계일 수 있느냐? 바로 그 고리에 클라인이 있었던 거예요. 바로 이들의 생물학적 아빠가 알고 보니 이 병원의 의사 클라인이었습니다. 자코바가 클라인한테 직접 물어보고 그 대답을 받아낸 거였어요.
◆ 서정암> 그러니까 난임병원의 의사가 자기 정자를 말 그대로 환자의 난자에 주입한 건가요?
◇ 채선아> 이해한 바가 맞습니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의사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게다가 인공수정의 일인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특히 전문의로 한창 일했던 30여 년 전에는 기술 발달도 좀 덜 했을 때라 인공 수정이 좀 쉽지 않았대요. 지금에야 냉동 기술이 발달해서 얼린다고 하는데 1985년 이전의 불임 시술은 최대한 신선한 상태의 정자를 이용했어야 된다고 하거든요. 그래야 임신이 가능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꼭 클라인 박사 자신의 것을 이용했어야 됐나 이런 의문이 생기는 거고 엄연히 환자를 속인 거기도 하죠.
◆ 서정암> 그렇죠. 또 아무리 옛날이라고 해도 기증된 정자가 있을 거고 어떤 분은 "남편의 정자로 해주세요."라고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 채선아> 그런 부부도 있었겠죠. 그런데 클라인 박사는 자신의 정자로 바꿔치기를 해서 부부 몰래 주입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이 병원을 방문했던 여성의 말이 있거든요. 여성은 이렇게 말을 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간을 당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환자를 진료실에 두고 다른 방에서 정자를 생성했던 거잖아요.
◆ 서정암> 그랬겠네요. 소름 돋네요.
◇ 채선아> 더 충격적인 건 정자 바꿔치기를 꽤 오랜 시간 이어왔다는 겁니다. 1979년부터 2009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30년 동안 이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이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클라인 박사의 태도였어요.
◆ 서정암> 태도가 어땠는데요?
◇ 채선아> 매우 당당했습니다. '임신을 원하는 사람들한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임신을 시켜준 거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반성하는 태도도 안 보이고, 그래서 자코바가 이 문제를 사회에 알리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다가 유일하게 자코바의 목소리를 기자 한 명이 들어줬습니다. 안젤라라는 기자가 관심을 가져줘서 클라인 박사의 만행이 방송을 탔거든요.
그때부터 또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도 그 병원을 이용했는데 혹시?' 이런 생각에 다들 제보를 했던 거죠. 분명히 클라인 박사는 자코바한테 '나는 7명 정도한테만 내 정자를 이용했다'고 말했는데 방송 이후에 밝혀진 클라인 박사의 생물학적 자녀가 모두 몇 명이었냐면요. 자코바 포함 총 94명이었습니다.
◆ 서정암> 94명이나… 30년 동안 93명이면 진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당한 건데 누구 하나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을 텐데요.
◇ 채선아> 그렇죠. 분명히 그랬어야 하는데 제가 짐작하기로는 불임 부부의 간절함이 그 어떤 것보다 정말 컸던 것 같아요. 그 간절함이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데 나중에 자코바가 이 사건을 파헤치고 자녀의 생물학적 친부가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부부가 인터뷰를 하거든요.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우리 아이를 만날 수 있었던 거 아니냐." 그러니까 클라인의 짓을 알고도 이런 반응을 보인 거면 당시에 얼마나 아이를 간절하게 원했던 부부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그 간절함과 믿음을 뒤통수친 클라인이 정말 나쁜 거죠.
◆ 서정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있나요?
◇ 채선아> 저도 그게 궁금했거든요. 찾아보니까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왜냐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 유일하게 공공으로 정자은행이 운영되고 있대요. 정부 기관에서 관리 감독도 직접 하는 거죠. 그래서 수정 전부터 후까지 철저하게 확인 과정을 거쳐야 된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찾아보니까 해외에서는 이번 클라인 사건처럼 정자 바꿔치기 피해 사례가 몇 차례 있더라고요. 기사 제목이 '기증자와 본인 정자를 몰래 바꾼 의사. 약 200명의 친부 가능성이 나와' 그러니까 이 사람은 200명의 생물학적 아빠였던 거죠. 클라인 더한 사람이 있고 또 바꿔치기는 아니지만 무분별하게 정자를 기증해서 기증 금지 명령을 받은 사람도 있었거든요. '전 세계에 자녀 600명을 둔 남성 정자 기증 금지 명령' 이 남성은 네덜란드에서 기증이 금지되니까 해외나 온라인을 통해서 기증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 서정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클라인이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이유를 잘 모르겠거든요.
◇ 채선아> 본인의 자녀면 말을 안 하겠는데 이건 남을 속이는 거잖아요. 그래서 바로 마지막 단서가 필요한데 예레미야 1장 5절 말씀입니다.
◆ 서정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채선아>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고 부르시는 내용인데요. 클라인은 이 말씀을 자수로 박아서 진료실 곳곳에 놓았대요. 그 정도로 굉장히 좋아했던 말씀이었다고 하고요. 클라인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길래 이랬던 걸까라는 지점이죠. 알고 보니 클라인이 다닌 교회는 사이비 종교 단체였습니다.
◆ 서정암> 그래서 '내가 그 선지자'라고 생각했군요.
◇ 채선아> 그것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사이비 종교 단체였다고 한다는 점 정확히 알려드리고 성경 말씀을 이런 사건의 단서로 쓰는 게 너무 싫지만 성경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역하는 신도들의 위험성이 이렇게 크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정말 왜 그랬는지 정말 정확한 이유는 본인밖에 모를 것 같아요.
◆ 서정암> 본인의 욕심이랑 그릇된 신념으로 사람들을 속인 건데 사기잖아요. 처벌 같은 건 안 받았나요?
◇ 채선아> 벌을 받긴 받았는데 벌금 500달러 내는 거에 그쳤어요. 지금 환율로 하면 67만 원 정도인데요. 난임 부부를 속였다는 측면에서는 사기죄에 해당할 것 같은데 검사 측에서는 '클라인의 행동이 성범죄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인을 기소할 죄목이 딱히 없다'고 말했습니다.
◆ 서정암> 사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죄목을 만들 수도 없었겠죠.
◇ 채선아> 그리고 30년 전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기록도 잘 남아 있지 않았고요. 그래서 여전히 피해자들은 싸우고 있고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지난해 다큐멘터리로 제작이 되기도 했거든요. 제목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더 자세한 사실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