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매주 화요일, 질문하는 기자 시간입니다. 올해도 역시 여야가 법정 시한을 넘겨 지난 21일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특히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원전 예산은 상임위원회인 산자위에서 전액 삭감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복원돼 최종 의결됐는데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질문하는 기자' 이정주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 기자, 어서 오세요.
[기자] 네, 반갑습니다. 산업부 이정주입니다.
[앵커] 올해도 어김없이 예산 전쟁이 있었어요. 특히 '소형모듈원자로'죠. SMR 예산이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론 잘 통과된 건가요?
[기자] 네, 먼저 개괄적인 설명을 해드리면 예산안은 통상 국회 상임위에서 초안을 통과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하면서 확정됩니다. 원전 예산 같은 경우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관이죠. 지난달 20일 산자위 통과 후 삭감됐던 원전 예산은 지난 21일 본회의에서 7615억원이 확정됐습니다. 올해 예산 대비 32%인 1877억원 오른 겁니다.
[앵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기자] 앞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상임위인 산자위에선 SMR 등 주요 원전 예산이 삭감됐다가 복원됐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인 국민의힘 불참 속에 산자위 전체회의를 열고 정부의 내년도 원전 예산 1813억7300만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거기엔 오는 2025년까지 인허가를 받기 위해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연구개발 사업비 332억8천만원도 있었습니다.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이재정 위원장이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앵커] 그런데 야당이 다시 복원할 거면 애당초 해당 예산을 책정해주면 될 텐데, 굳이 번거롭게 왜 번복을 한 건가요?
[기자] 국회 예산안 의결 과정에서 숨은 여야의 힘겨루기 때문인데요. 과반이 넘는 다수당인 민주당은 현재로선 모든 예산에 대한 의결이 가능합니다. 다만, 상임위에선 예산 감액은 가능한데 증액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깎아놓고 국회 예결위나 여야 지도부 협상으로 넘기게 되면 지도부 간 협상, 이른바 거래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그 거래가 있었죠.
[앵커] 아, 어떤 걸 내주고 어떤 걸 받은 건가요?
[기자] 민주당은 원전 예산을 복원해주는 대신 크게 2가지를 얻어냈는데요. 올해 잼버리 사태로 인해 깎인 새만금 예산을 3000억원 다시 늘렸습니다. 당초엔 부처 요구 예산인 6626억원 대비 78% 삭감된 1479억원이 정부안에 반영됐었습니다. 또 이재명표 예산이라 불리는 지역 화폐 예산도 3000억원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SMR 육성 공약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도 약속했던 것 아닌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대선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인 2022년 2월 5일 경남 창원을 방문해 경남 지역 공약 발표를 했었는데요. 당시 이 후보의 발언 한번 들어보시죠.
[인서트]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SMR에 대한 국가 연구 개발 투자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중단할 수는 없고 국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미 계속하고 있던 SMP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는 계속한다는 게 제 입장"
[앵커] 어차피 합의해줄 수밖에 없는 예산의 성격도 있는 것 같은데, 여당이 너무 쉽게 내준 것 아닌가요.
[기자]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여당 쪽이 야당과 수 싸움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민주당은 전략적으로 산자위에서 원전 예산을 깎은 후 지도부 협상에서 증액 심사를 하면서 거래를 하는 방식을 구사했는데 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겁니다. 물론 170석에 달하는 다수 야당의 힘 앞에 별 수 없다는 항변도 있지만, 이 또한 언론 플레이 등 다양한 수단이 있음에도 여당이 효과적으로 발휘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앵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더 효과가 있었을까요?
[기자] 지난달 20일 산자위 단독 의결 직후 사흘이 후죠. 지난달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단독 삭감을 비난하며 "혁신형 SMR 연구 개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혁신형 SMR은 2021년 문재인 정부 하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돼 2022년 5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후 현재 진행 중인 사업으로 이재명 후보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반향이 크진 않았죠.
[앵커] 왜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요?
[기자] 이유를 파악하려면 정치권 흐름을 좀 볼 필요가 있는데요. 당시 김기현 대표 체제, 인요한 혁신위원장 간 갈등으로 여당 지도부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12일이죠.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있기 전까지 내부 힘겨루기가 지속되면서 사실상 야당과 예산안 전쟁에 총력을 다 하지 못한 거죠. 예를 들면, 오늘 취임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서서 "SMR은 이재명 후보의 대선 공약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의 원전 예산 삭감은 내로남불 아니냐" 등 이런 메시지를 들고 나왔다면 야당 압박에 더 효과가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비대위 출범 같은 정치권 일정의 시기상 불가피한 점도 있지만, 메시지가 주목을 받기 위해선 여러 수단이 필요했다는 아쉬운 목소리가 여당 내부에서도 나옵니다.
[앵커] 그래도 민주당 내에서도 성명이 있긴 했네요?
[기자] 맞습니다. 지난달 23일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 소속 이원욱·김종민·조응천·윤영찬 의원 등이 성명을 냈습니다. 이들은 "세계경제 추이에 역행하는 원자력 생태계 사업 예산은 삭감하더라도 i-SMR 기술개발 사업과 제작지원센터 구축 사업은 반드시 예산이 반영돼 혁신주도형 에너지 사업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비명계라는 프레임의 한계 때문에 큰 영향은 없었습니다.
[앵커] 예산안 결전을 앞두고 내부 전열을 마무리하지 못한 여당이 고전했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