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연합뉴스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와 맞물려 시공능력평가 16위의 상위 건설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신청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부각된 가운데, 현실화 시 업계는 물론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중소 건설사의 경우엔 자금난이 더욱 심화돼 도미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은 전날 회의를 열어 부동산PF 현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가능성도 현안으로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장에선 태영건설을 둘러싸고 줄곧 부동산PF 관련 자금난이 거론돼왔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난 19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PF 대출 가운데 민자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관련분을 제외한 순수 부동산 개발PF 대출 잔액은 3조2천억 원이다. 이 대출이 투입된 개발 현장 가운데 상환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미착공 상태로 남아있는 현장의 비중이 과반이며, 미착공 현장의 45%인 지방 현장이 모두 대출 연장 없이 사업을 마감할 경우 태영건설이 이행해야 하는 보증액은 약 7200억 원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엔 특히 "올해 3분기 말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은 478.7%로, 시공능력평가 35위 내 주요 대형, 중견 건설사를 통틀어 부채비율이 가장 높다"는 내용도 담겼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도 최근 태영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리스크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은 PF우발채무 규모는 약 1조 원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약 1900억 원의 만기가 올해 12월에서 내년 2월에 걸쳐 도래한다"고 밝혔다.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신청 임박설에 대해 이날 "경영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위기설에 분명하게 선을 그어왔던 앞선 메시지와 달리 워크아웃도 검토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태영건설이 채무보증을 선 서울 성수동 오피스2 개발사업의 400억 원대 토지비 대출의 만기가 28일 도래하는 만큼, 해당 시점이 고비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해당 대출과 관련해 태영건설 관계자는 "다양하게 자구 노력을 하고 있기에 (만기) 당일까지 좀 더 봐야 한다"고 말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긴박한 상황임을 가늠케 했다.
연합뉴스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종합건설업체이자 아파트 브랜드 '데시앙'으로도 유명한 해당 건설사의 위기는 건설업 전반의 위기로 인식되는 기류다. 한 전문가는 "중견 건설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현실화 되면 채권 발행과 건설사 보증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차환 애로 심화로 건설사 연쇄 부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기평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분석 대상 21개 건설사의 PF우발채무 규모는 22조8천억 원으로 작년 6월 말 대비 약 29% 증가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전국 부동산PF 사업장 가운데 시공사가 채무를 인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 비중이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 56%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고물가·고금리 환경에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건설사들의 빚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시장 심리가 더 얼어붙을 경우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사의 경우엔 부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삼성증권도 이날 보고서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 시 단기 자금조달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건설사의 위기는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에게도 악재다. 올 3분기 기준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은 2.42%로, 작년 말(1.19%)의 두 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다만 태영건설 워크아웃설이 갑자기 불거진 건 아니라는 점에서 도미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통화에서 "약간의 충격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태영건설 이슈가 어느 정도 이어져왔고 부동산PF도 오래된 이슈이기에 작년 레고랜드 사태 때와 같은 자금경색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본다"며 "당국이 레고랜드 사태를 수습한 정도의 정책 수단을 갖고 있고, 그간 금융회사들도 시간을 벌면서 체력을 많이 비축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부동산PF 관련 여러 대책이 이미 가동돼 왔으며, 시장 안정 조치도 준비돼 있다는 입장으로 파악됐다. 한편 지난 4월 PF 대주단 협의체를 출범시켜 대출 만기 연장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해왔던 당국도 부실 사업장을 '질서 있게 정리'해 나가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 기류다.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PF 사업장 가운데 사업성이 부족한 곳에 대한 정리·재구조화가 추진되고 있다며 경·공매가 진행되거나 예정된 사업장은 지난 9월 말 기준 120곳으로, 6월 말(100곳) 대비 20% 증가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