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경제정책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이하 경방)에 담긴 저출산·저출생 대응 정책의 수위가 현 상황을 타개하기에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곤두박질치고 있는 출산율의 하락 속도를 둔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반등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투자 규모도 늘려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기후 대응' 4대 키워드로 제시한 2024년 경방
정부는 지난 4일 올해 경방을 발표하면서 '인구·기후 위기 대응'을 4대 키워드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다양한 출산·육아 지원책을 내놨다.
우선 결혼 단계에서는 증여재산 공제 규모를 기존 5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늘려 부모로부터 결혼자금 지원을 용이하게 했다.
출산 가구에 대해서는 7만호 규모의 특별공급과 신생아 특례대출 등 주거지원책이 3월 중 시행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아이를 낳으면 지급이 시작되는 '부모급여'는 0세는 월 100만원, 1세는 월 50만원으로 인상되며, '첫만남이용권'도 첫째는 200만원, 둘째부터는 300만원으로 지급 규모가 커진다.
보육 과정에서도 직장어린이집 운영비와 위탁보육료 지원금 비과세, 둘째 자녀세액공제 20만원으로 인상 등 지원책이 강화된다.
교육과정에서는 '늘봄학교' 전국 확대를 통한 돌봄 지원,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피해학생 접촉 금지 등 학폭 관리 강화 정책이 시행된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육아휴직 시 부모가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할 경우 휴직급여 지급기간이 18월로 늘어나며, 급여상한도 6개월 최대 450만원으로 높아진다.
현행 지원책 강화, 실효성에 의구심
이같은 정책들은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출산과 보육, 교육 과정에 있는 가구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들 정책의 효과가 단순히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출산을 결심하는 수준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현금성 지원정책 중 하나인 첫만남이용권의 경우 출산 증가 효과를 끌어올리려면 현재보다 지원 규모를 3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경방 발표 다음날인 5일 공개된 육아정책연구소의 '2023년 첫만남이용권 만족도 조사'에 의하면 '정부가 바우처 금액을 확대할 경우 자녀를 추가로 낳을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37.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전년인 2022년의 경우 부정 응답이 28.3%였는데 1년새 9.4%p나 증가한 것이다.
주된 원인은 바우처 금액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만남이용권에 대해서 불만족한다는 응답자 중 77.1%는 '바우처 금액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적정한 바우처 금액은 평균 594.69만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현행 바우처 금액과 비교했을 때 첫 아이 기준으로는 3배, 둘째 기준으로도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연합뉴스 지급액을 현재의 3배 규모로 늘려야 첫아이 출산을 결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기적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지원을 상당한 규모로 늘리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유지해야 출산율이 반등할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와 같이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키를 쥐고 있을 경우에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소극적인 정책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연구위원은 "경제 관료는 육아와 관련한 총비용을 설정해 이 비용이 줄어들게 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비용적인 측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기재부이다보니 큰 돈을 쓰지 않으려는 성향도 있어서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종합적인 '마스터플랜' 부재도 우려 지점
황진환 기자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종합적인 큰 그림, '마스터플랜'의 부재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 김병환 제1차관도 이번 경방에 담긴 저출산 극복 정책에 대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재부 또는 경제정책으로 담는 인구대책 부분은 어떻게 보면 약간 적응적인 부분"이라며 "다시 출산율을 높이고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접근할 부분은 훨씬 더 많다. 이번을 계기로 해서 전반적인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음을 언급했다.
통계청의 '2022~2072년 장래인구추계'와 유엔(UN)의 세계인구전망을 비교하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연령구성·부양비·출산율·기대수명·인구성장률 등 모든 분야에서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급속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 등 출산관련 지표에 대한 정책 뿐 아니라 연도별 출생아 수에 따른 보육과 초·중·고등 교육과 관련한 정책을 연동해야 다양한 연령대의 인구 변화에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빠르게 지원 규모를 늘리고 있는 출산과 보육 등과 달리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필요해진 대학 정원 축소 등 정비 작업의 속도는 여전히 느린 상황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2002년에 신생아가 50만명 미만으로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2021학년도 대학입시 때 지원규모가 줄어들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지방대 미달 사태를 예방하지 못했다"며 "2022년에 태어난 아이들 수가 25만명인데 재작년 수도권 대학 정원이 25만명 수준인 만큼 이런 부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적응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대 정세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 양극화나 고물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보면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어려운 환경인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대신 '기업에 세제 지원을 해주면 좋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낡은 시장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경제 정책을 마련하다보니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며 "저출산과 고령화는 관련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시기에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