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이 4·10 총선 전략으로 '운동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의 '정권심판론'에 맞선 프레임이다.
대결 구도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주당 '텃밭'에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공천 신청을 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자객 공천' 인사들이 대거 출마를 선언했다. 윤희숙, 임종석 전 의원의 매치와 같은 방식을 서울 지역에 포진시켰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당시부터 밝혀 온 '운동권 청산' 주장과도 맞물리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인물 경쟁력 측면에서 운동권 출신보다 전문가 그룹이 경쟁력에서 앞선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29일 "임종석과 윤희숙,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으냐"며 "자기 손으로 땀 흘려서 돈 벌어본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년 동안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정치인들을 장악해온 분들이 민생 경제를 말할 자격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운동권 심판론에 재차 불을 지핀 발언이다.
서울 지역에서 여당 출마자들의 관심 지역은 서울 한강 주변이다. 서울 중구와 성동구, 마포구, 영등포구 등을 아우르는 이 '한강벨트'에는 벌써부터 다수의 '이름값 하는' 인사들이 출마를 선언했다.
3선의 하태경 의원과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9일 서울 중‧성동 을 지역구에 도전하겠다고 밝혔고, 3선을 지낸 이혜훈 전 의원은 그보다 먼저 출마를 공식화했다. 윤희숙 전 의원은 바로 옆 중‧성동 갑에, 김경율 비대위원은 마포 을에,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영등포 을에 전선을 만들고 있다. 한강과 맞닿진 않지만, 영등포구 바로 옆의 구로 갑에선 호준석 대변인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지역구는 성동구를 제외하고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구청장 자리를 탈환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서부터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으로 이어지는 '행정 라인업'을 따라, 서울 내에서 '도전해 볼 만 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들 지역은 2021년 4‧7재보선에서부터 대선, 지선까지 국민의힘이 약진해 온 곳"이라며 "국민의힘 입장에선 강남을 벗어나 한강 주변으로 대야(對野) 전선을 끌어올린다는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형도와 맞물려 나오는 것이 운동권 심판론'이다. 야당 소속인 이들 지역의 현역 의원 다수가 이른바 '86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이다.
중‧성동 갑은 현역인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서초로 지역구를 바꾼 뒤 학생운동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전대협) 의장 출신의 임종석 전 의원이 출마를 준비 중인 곳이다. 마포 을은 전대협 출신의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영등포 을 역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현역인 곳이다. 구로 갑에도 전대협 출신 민주당 현역 이인영 의원이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운동권 특권 정치의 청산'을 거론한 것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경율 비대위원. 연합뉴스
한 위원장은 앞서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포 을 도전 사실을 공개하며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특권정치' 등으로 변질된 안타까운 지금의 민주당을 상징하는 얼굴이 바로 정청래 의원"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도 했다.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도 "부동산 실패와 국가채무를 무한정 늘리면서 경제를 망친 주범들이 이제 와서 운동권 심판론을 피하기 위해 '경제민생론'을 이야기하는 데 대해 국민은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의 정권 심판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수도권에서 '운동권' 프레임이 전략적으로 파괴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서울 등 수도권의 일반 유권자들의 민심 입장에서 관심이 가는 이슈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 유권자들이 기존 야당 현역이 '586'인지, 새로 맞서겠다고 나오는 사람이 그의 대항마가 될 만한지의 판단을 한 비대위원장이 원하는 만큼 할지 의문"이라며 "여당 후보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정략적으로 공천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서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인사는 "민주유공자법 등 무리한 사례가 있었지만, 운동권 특권은 사실상 이미 지나가고 있는 잔재다. 이렇게까지 전면전으로 이끌고 갈 일이 아니다"라며 "여당인 만큼 대선 공약에서부터 어떤 게 실행됐고, 안 됐는지 다시 제대로 따져보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여당으로서 정책적 실행력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또 다른 인사 역시 "전체적인 기조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지역구 현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운동권 심판론'이 실제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소구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