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에서 열린 운전자 A씨와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7억6천만 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 전 이도현 군의 부친 이모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2022년 12월 이도현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두고 책임 소재를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에서 운전자 측과 차량 제조사 측이 '제동 등 작동 여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섰다.
소송을 낸 운전자(원고) 측은 증거자료로 제출한 사고 당시 영상을 토대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며 제조사 측의 책임을 주장한 반면, 제조사(피고) 측은 이날 검증이 이뤄진 영상에 대한 원고 측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으면서 법적 다툼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는 운전자 A(60대)씨와 숨진 도현 군의 부친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7억6천만 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 영상 검증을 진행했다.
이날 검증은 사고 직전 주행 중인 차량의 제동 등 점등 여부, 급발진 추정 사고 직전 발생한 모닝 차량과의 충돌 장면, 본 사고 직전 차량 모습 등 3가지 영상에 대한 주장을 다뤘다.
연합뉴스첫 번째 영상은 사고 차량을 뒤따르던 SUV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으로 주행 중 정지 신호를 받고 멈춘 차량의 브레이크 등이 정상 작동했으나 차량 후미 보조 제동 등이 켜지지 않는 영상이 담겼다. 재판부는 이 장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양 측도 별다른 이견은 보이지 않았다.
이어 사고 차량이 좌회전해 주행하는 과정에서 앞서가던 모닝 차량을 추돌하는 장면을 두고 양 측의 의견은 팽팽하게 엇갈렸다.
'충돌 관성에 의해 메인 제동 등이 들어온 것'이라는 제조사 측 주장에 대해 운전자 측은 "사고 차량에 브레이크 등이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데 전문가를 통해 확인한 결과 충돌 직전 발생한 것"이라며 "당시 운전자의 발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사고 차종과 같은 차량을 대상으로 이뤄진 정면충돌 시험 결과를 토대로 시속 50㎞로 고정된 벽에 부딪혔을 때도 파손 정도가 컸지만 브레이크 등은 들어오지 않았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운전자 측은 이 같은 주장을 토대로 자율주행 레벨2 차량인 사고 차량에 장착된 주 컴퓨터 역할, 즉 사람으로 따지면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 장치인 ECU 소프트웨어의 결함을 주장하며 제조사 측이 이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조사 측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ECU와 상관없이 제동 등이 들어온다.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면 형광등이 들어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A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모닝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 차량이 마지막 충돌 전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두고서도 양 측은 엇갈린 주장을 폈다.
제조사 측은 사고 차량이 빠르게 주행하는 장면에서 브레이크 등이 켜져 있다는 운전자 측에 주장에 반박하면서 "햇빛이나 이런 부분들에 반사가 돼 보일 수 있다"며 "영상만으로는 확실하게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운전자 측은 "이때 시간이 오후 3시 50분이었다. 여름처럼 햇빛이 강할 때도 아니고 겨울이었는데 햇빛으로 인한 반사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운전자 측은 이날 유사 주행 조건에서 실차 실험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또 추가 심리를 위해 양측에 주장을 뒷받침할 전문가 등 증인 신청과 원고 측에게는 차량 결함 주장을 입증할 ECU제조사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요청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 26일 열린다.
지난 2022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강릉소방서 제공2022년 12월 6일 오후 4시쯤 강원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A씨가 몰던 SUV 승용차가 도로 옆 지하통로에 빠지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함께 타고 있던 12살 손자 도현 군이 숨졌다.
유족들은 지난해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책임 전환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게시했고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공론화됐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도현이 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논의를 위한 발판이 국회에 마련됐으나 여전히 답보 상태다.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해 10월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검찰은 "진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