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였던 수사정보정책관실 정책관과 검사들이 고발장 작성이나 검토에 관여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권영철 대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손준성 검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는 건 '고발사주'가 실제로 있었다는 걸 인정한 건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고발사주 의혹이 처음 알려진 건 2021년 9월이었습니다. 인터넷 매체인 뉴스버스가 단독으로 보도를 했고요.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공작'이라며 고발장을 '괴문서'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옥곤)는 1월 31일 손 검사의 공무상 비밀누설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사사법절차 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 범행들은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하여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 수반된 것이라는 측면에서 사안이 엄중하고 그 죄책 또한 무겁다"고 밝혔습니다.
◇정다운> 그렇다면 윗선의 개입이나 묵인이 있었다는 건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언급을 했고 언론에도 보도됐습니다만, 수사정보정책관실, 그 이전에는 범죄정보기획관실로 불리기도 했습니다만, 여기는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핵심 참모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범정기획관실 출신의 한 법조인은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총장에게 보고하러 간 적도 있다"고 할 정도로 핵심입니다.
그리고 '고발사주 고발장'에는 명예훼손 피해자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딱 3명이 적시돼 있습니다.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가 고발장을 작성하면서 피해자로 검찰총장과 그의 부인, 그리고 핵심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사전에 지시나 동의 또는 묵인 없이 할 수 있을까요?
2020년 1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년 다짐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정다운> 재판부가 손준성 검사를 비롯한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고발장 작성에 관여한 사실도 인정한 거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재판부의 판결내용을 보면, '고발사주 사건'을 실체있는 '검찰의 선거개입' 의도로 판단한 것입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인 손준성 대검수사정보정책관과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고발사주 고발장 작성과 검토 과정에 직접 관여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재판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수사정보정책관실 임홍석 검사는 2020년 4월 8일 2차 고발장이 김웅 의원에게 전송되기 5시간 전 연달아 두 건의 판결문을 검색했고, 4월 3일 1차 고발장 전달 1시간 전쯤에도 고발장에 첨부된 지모씨의 실명 판결문을 검색했습니다. 또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2담당관인 성상욱 검사도 1차 고발장 전달 10분 전쯤 지모씨의 실명판결문 3건을 검색했습니다.
재판부는 "손 검사는 임홍석, 성상욱 검사로부터 실명 판결문을 제공받은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면서, "수사정보정책관실 외의 다른 사람이 고발장의 작성에 관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고발장에 "'범죄사실', '도모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차로 공모하였다', '경위사실', '이로써 ~하였다' 등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고 수사기관에서 주로 사용하거나 공소장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다수 있다"는 점과, "피고발인들의 지위, 공모관계, 범죄사실 부분을 나누어 기재하고 구체적 범죄사실의 첫 부부분에 적용법조의 내용을 적시하면서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구체적인 죄명을 기재하기도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고발장은 최소한 공소장을 써 본 사람이 그 작성 또는 검토에 관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다운> 손준성 검사는 왜, 무엇 때문에 고발장 작성에 관여한 걸까요?
◆권영철> 손준성 검사는 유죄 판결이 난 뒤에도 "사실관계 법률관계 다 수긍할 수 없어서 항소해서 전부 다투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역할을 아는 전현직 검찰관계자들은 검찰총장의 핵심참모이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대검 사정을 잘아는 검사장 출신의 중견법조인은 "피해자(검찰총장) 지시도 없이 알리지도 않고 고발장을 작성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겠나?"라면서, "더구나 검찰 업무 관련도 아니고 개인 일인데, 검찰총장의 명예훼손과 관련된 고발장을 만들면서 그 사람들과 상의도 안하고 지시도 안 받고 그걸 할 수 있겠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정다운> 손 검사는 얼마 전 검사장으로 승진했죠?
현직 검사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종용했다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권영철> 그렇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엔 손 검사는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서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엔 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검사장 승진인사는 법무부장관을 거쳐 대통령 결재가 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고발사주 고발장에 이름이 거론된 한동훈 법무장관이 제청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겁니다.
좀 다른 얘깁니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 대해 피의자라서 만날 수 없다고 헸는데, 기소돼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인 손준성 검사는 승진을 시킨 겁니다. 검사장 승진인사가 났을 때 1심 선고가 나기도 전에 검사장으로 승진시킨건 보은성 인사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정다운> 기소된 혐의 중 공직선거법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어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1심 재판부는 "손준성이 김웅과 공모하여 텔레그램 메시지를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인 조성은씨에게 전달했다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고발장이 전달된 사실만으로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의 선거과정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려 또는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핵심은 "공직선거법위반에 관한 미수범이나 예비, 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공직선거법위반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공수처에서는 공직선거법 무죄 판단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재판부가 "손 검사가 당시 여권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고발하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선거개입 의도'를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선거개입 의도'를 가지고 고발장을 작성해서 김웅 당시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보냈고 이 고발장이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전해졌으니까 이를 기수로 판단했다면 유죄가 인정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정다운>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 중 유죄가 선고된 첫 사건이잖아요? 공수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권영철> 공수처장도 차장도 공석인 상태에서 1심 선고가 내려졌는데, 공수처 직원들이 가슴 졸이며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고 합니다. 유죄가 선고되자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고 합니다.
사실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어려웠던 이유는 공수처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대로 아마추어 대 프로의 대결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 관계자에게 '조기축구회 선수들이 프로축구 선수들과 격돌해서 거둔 첫 승리 아니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인정하면서, "수사대상 검사들의 비협조와 시간 끌기, 준항고 등으로 힘든 수사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멉니다. 항소심에서 유죄가 유지될지도 지켜봐야 하고, 손준성 검사가 유죄면 그 윗선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도 답해야 합니다.
공수처 검사들이 '고발사주 의혹' 수사를 하면서 대검찰청 검사들에게 엄청 시달렸다고 합니다. 시간 끌기는 예사고, 언론플레이와 의도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수사의지가 꺾이기도 했고, 심지어 수사팀에서 빼달라는 하소연도 이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