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채소 코너를 살펴보고 있다. 박종민 기자올해 들어 먹거리 물가가 연일 고공비행하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원물가의 하향세마저 잠재우며 전체 물가수준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1~2월 식료품물가 1년 전보다 6.7% 급등…과일은 32년 만의 최고 상승폭
1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의하면 올해 1월과 2월의 식료품 물가지수는 1년 전인 지난해 1~2월 대비 6.7% 상승했다.
2021년 1~2월 식료품 물가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8.3% 오른 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9월 5.3%에서 10월 6.9%로 치솟은 후 지난 1월까지 6%대를 유지해왔는데, 지난달에는 7.3%로 뛰어올랐다.
식료품 물가지수 상승률이 7%대에 진입한 것은 2022년 10월의 7.5%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식료품 물가를 견인하고 있는 것은 신선식품이다. 과일의 경우에는 작황이 부진하지만 검역 문제로 수입이 쉽지 않은 사과 가격이 치솟자 대체 품목인 귤의 가격이 덩달아 올랐고, 배 가격도 급등했다.
지난달 과일 물가지수는 161.39(2020년=100)를 기록하며 1년새 38.3%가 급등했다. 1991년 9월 43.3%를 기록한 이래 32년 5개월 만의 최고 상승폭이다.
채소 및 해조의 경우도 지난해 11.3%의 상승폭을 기록하며 지난해 3월 12.8%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고물가에 줄어든 식료품·음료 소비…과일 소비량 15년새 19% 줄어들어
물가 고공비행은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 1인 이상 가구의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액 평균은 40만9천원으로 1년 전인 2022년 4분기보다 2.4%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즉 물가 영향을 배제한 식료품·비주류음료의 실질 지출을 살펴보면 3.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고물가에 의한 것으로, 실제 소비량은 줄어든 것이다.
식료품·비주류음료의 실질 지출은 2021년 4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7분기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1.1% 상승으로 잠시 반등했지만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중장기적인 물가 상승세 지속에 과일 소비량도 지난 15년간 19%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 농림축산 주요 통계'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 전망 2024 보고서'에 의하면 2007년 67.9㎏이던 1인당 연간 과일 소비량은 2022년 55㎏로 19%나 줄어들었다.
박종민 기자사과 등 6대 과일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2014년 41.4㎏에서 2022년 36.4㎏으로 감소했다. 질병관리청에 의하면 6세 이상 인구 중 과일과 채소를 하루 권장량인 500g 이상 섭취하는 비중은 2015년 38.6%에서 2022년 22.7%로 7년 새 15.9%p 급감했다.
소비자들은 과일 소비 감소의 원인 중 하나로 비싼 가격을 꼽았는데, 국제 가격비교 사이트 넘베오에 의하면 지난 8일 기준 사과 1㎏의 국내 가격은 6.88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미 크게 올랐는데 더 오른다는 과일·채소 가격 전망
이미 고공행진 중인 과일과 채소의 가격은 앞으로도 한동안 상승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관측 3월호'를 통해 이번 달에도 토마토와 딸기, 참외 등의 가격이 지난해 3월에 비해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토마토는 5㎏ 기준으로 2만3천원을 기록해 1년 전보다 43.9%나 폭등할 것으로 전망됐다. 평년 도매가격(지난해 최대·최소치를 제외한 2019년부터 3년 평균) 비교하면 무려 51.8%나 비싸지게 된다.
대추방울토마토의 3㎏ 도매가격은 2만4천원으로 같은 기간 11.2% 오를 것으로 전망됐는데 평년과 비교하면 34.1% 급등한 수준이다.
3월 딸기와 참외의 도매가격도 평년보다 각각 33.1%, 20.9% 높아질 전망이다.
근원물가 하락세 무색하게 전체 물가 끌어올리는 신선식품…정부 2%대 물가목표치 '빨간불'
서울 한 대형마트의 대파 매대. 박종민 기자이처럼 먹거리 물가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탓에 전체 물가 수준도 정부 전망치를 크게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KOSIS에 의하면 지난 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110.34로 지난해 2월 대비 2.5% 상승했다.
지난해 3월 4.0%까지 높아졌지만 이후 3%대를 기록했다. 11월에는 2.9%로 20개월 만에 2%대로 진입했으며 12월 2.8%, 1월 2.5% 등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3.1%를 기록하며 전월인 2.8% 대비 0.3%p가 높아졌다. 2월 신선식품 물가지수 상승폭이 전년 동월인 지난해 2월 대비 20.0%나 급등한 것의 여파가 다른 물가의 하향 흐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신선식품 물가상승률 20.0%와 근원물가 상승률 2.5% 간 차이는 17.5%p로, 2022년 10월의 18.6%p 이후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올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6%로 제시한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농·축·수산물 할인에 나서는 한편, 식품업계에 대해서는 가격 인하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할인제도의 경우 기한이 한시적인데다 비싸진 신선식품의 소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오히려 물가 상승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식품업계에 대한 압박은 업계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대응에 나설지 판단이 쉽지 않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할인 지원은 일부에만 해당하고, 효과도 잠시일 뿐"이라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유통 구조 자체를 손보는 한편, 수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