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보라매병원 내부에 사람이 가득찼다. 나채영 수습기자"비상진료체계 가동 이후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이 완화하고, 환자 중증도에 적합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고 있다."(1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박 차관의 말은 반은 맞았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 사태가 꼬박 한 달을 맞은 20일,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난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 대신 중증도가 낮은 환자들이 주로 입원하던 '2차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2차 병원인 삼육서울병원에서 만난 A(43)씨는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쓰러졌다"며 "동네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이 파업해서 거기서 안 받아줬는데, 여기는 된다고 그래서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전 찾은 2차 병원인 서울 보라매병원에도 수납대가 열기도 전에 20여 명의 환자들이 자리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접수대 앞은 병원이 영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만석이었고, 오후가 되자 진료 대기시간은 평균 2~30분 넘게 늘어났다.
보라매병원의 한 직원은 "요즘 환자가 좀 많아진 것 같다"며 "서울대병원에서도 오고 중앙대병원에서도 오고 (다른 대학병원들에서) 많이 오신다"고 설명했다.
폐 검사를 받는 남편의 보호자로 병원을 찾은 60대 임모씨 또한 "환자들이 계속 오가고, 엄청 많았다"며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침대에 싣고 나르는 환자들이 계속 왕래했다"고 분주한 병원 풍경을 전했다.
18일 신촌세브란스병원이 한산한 모습이다. 주보배 수습기자반면 상급종합병원은 '의료 공백' 사태 초기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환자들로 붐비던 모습과 달리 비교적 한산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카페의 한 직원은 "2~3주 전에는 막 엄청 붐볐고, 많이 붐비는 피크 타임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빈도가 좀 줄었다"고 전했다.
소화기내과를 찾은 60대 환자 오모씨는 "평소에는 지금보다 대기하는 사람이 한 2배 이상은 됐다"며 "지금 별로 대기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1층 로비 대기석에 앉아 있는 환자들은 5명도 채 되지 않았다. 환자 B씨는 "여기가 원래 도떼기 시장 같았다"며 "그런데 이제 웬만한 환자들은 동네 병원으로 가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소화기내과에 방문한 60대 고모씨도 "조금 한산해서 나는 좋다"며 "대기를 거의 안했다. 내가 10분 늦었는데도 진료를 바로 해준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70대 김모씨도 "어제 건대병원도 갔는데 그전보다 훨씬 한산하더라"고 전했다.
다만 환자가 줄어든 것보다도 의료 인력 일손이 줄어든 타격이 더 큰 탓에 여전히 진료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갑상선내과를 찾은 60대 김모씨에게 한 간호사가 "전공의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아서 다른 교수님으로 교체가 돼서 오는 29일에 오셔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이 많은 전공의 수련병원의 입원 환자 수가 줄어든 반면, 2차 병원급이 많은 비수련병원의 입원 환자 수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응급의료기관이 설치된 종합병원 중 전체 수련병원의 입원환자 수는 3만 5893명으로, 한 달 여 전인 지난달 1일에서 7일 사이 3만 8306명이었던 것 대비 2413명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비수련병원 입원환자 수는 2만 4545명에서 2만 6905명으로 2360명 증가했다.
하지만 박 차관의 말은 반은 틀렸다.
"환자 중증도에 적합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박 차관의 말에 중증 질환자들마다 '말도 안된다'고 비난했다. 3차 대형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중증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큰 대수술을 해야 하는 중증 질환 관련해서는 2차 병원 의료 기술로는 현재 가능하지 않다"며 "그래서 (3차 병원에 가지 못하는) 분들은 치료를 못 받고 떠도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으로 들어서는 의료진의 모습. 황진환 기자그러면서 "현재 교수들도 사직서를 내네, 마네 하며 환자를 줄이고 있어서 현재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나 수술도 못 받고 있는 상태로 '그냥 퇴원하라'는 안내만 받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 안선영 이사도 "암 3기 말에서 4기, 이제 여명까지 진단받으신 분들은 2차 병원에서 받아줄 수 없으니까 요양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더라"며 "(집단행동으로 인해) 3차 병원은 가지 못하니 요양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15일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 수는 141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피해신고서가 정식 접수된 사례는 509건으로, 수술지연이 350건으로 가장 많았고 입원 지연 사례는 23건, 진료가 취소된 일은 88건, 진료 자체를 거절한 경우는 48건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