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미국·일본·중국 등 반도체 경쟁 국가들이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해 막대한 수준의 반도체 보조금을 뿌리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각 기업의 역량에만 기댄 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성없는 반도체 전쟁 속 한국만 뒤쳐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동맹은 옛말…美, 자국 중심주의 노골화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인텔에 약 26조원 규모의 파격 지원을 발표했다. 인텔에 연방보조금 85억달러(11조 3000여억원), 대출 최대 110억달러(약 14조 6200억원) 등 총 195억달러(약 25조 9200억원) 지원을 발표했다.
아직 삼성과 대만 기업 TSMC에 대한 보조금 발표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앞서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TSMC 50억달러, 삼성 60억달러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보조금 규모 뿐 아니라 눈여겨 봐야할 건, 조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인텔공장이 있는 애리조나 피닉스 지역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 반도체 제조가 40년만에 미국에서 재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을 변화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말 속에는 한국과 대만 등 주로 아시아 국가들에 의존해 온 반도체 생산을 다시 미국 내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우리는 가장 정교한 칩을 모두 아시아의 극소수 공장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면서,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의 문제다. 우리는 이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은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교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주도한 칩4동맹에는 한국,대만,일본이 참여하는 일종의 국가간 연합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 흐름이 변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미국 기업 중심으로 하려는 자국 우선주의로 바뀌었다.
경제 안보 달린 문제, 정부 보조금 필수…때 놓치면 금방 밀려
스마트이미지 제공미국발 반도체 패권전쟁에 유럽연합(EU)은 지난해 430억유로(62조원)를 지원하는 '유럽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구마모토현에 TSMC와 일본 소니 등이 합작한 JASM 공장 전체 설비 투자액의 40%, 4760억엔(4조2556억원)을 지원했다. 또 올해 말 착공 예정인 제2 공장에도 7300억엔(6조5265억원)을 지원하는 등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지방 정부와 국영 기업들이 참여해 35조원 규모의 반도체 육성 펀드 조성에 나섰고, 인도 역시 반도체 제조 기업에 100억달러(13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이렇듯 세계 각국이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지원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용인을 찾아 화성에서 용인을 거쳐 안성까지 연결하는 '반도체 고속도로'를 조속히 추진하고,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심의절차를 손보겠다고 설명했다. 심의가 지연돼 반도체 전후방 기업들이 입주할 일반산단 공급이 늦어지는 문제가 있던 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반도체 산업 지원은 직접 투자 보조금을 지원해주기보다는 용수·전력 등 인프라 시설 지원, 규제 완화 등에 집중 돼 있다. 반도체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K칩스법' 마저도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각국이 다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한국은 지원이 부족하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각국, 그 나라의 경쟁사와의 보조는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나 학계에서는 반도체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을 통해 기업의 원가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곧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 땅에서 반도체를 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