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9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모두 '심판론'을 꺼내들었다. 여당의 '이(재명)·조(국)' 심판과 야당의 정권 심판 중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는 쪽이 어디인지에 따라 향후 정국은 크게 요동칠 운명이다.
마지막 유세…李 "투표용지는 경고장" VS 韓 "野, 혼돈·퇴행 생각해 달라"
민주당은 당 차원의 마지막 유세 장소로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을 택했다. 이재명 대표는 "내일(10일) 우리가 받아 들 투표용지는 (윤석열 정권을 향한) 옐로카드이자 경고장"이라며 '정권 심판'에 쐐기를 박았다. 이 대표는 "다수 의사와 다수 이익에 반하는 국정 운영을 했다면 당연히 권력을 잃고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투표를 포기하고 주권을 포기한 그분들 때문"이라며 "이 나라는 경제, 민생, 안보, 평화, 민주주의 모든 면에서 후퇴했다. 이제 권력을 위임한 주인 입장에서 상벌을 분명하게 할 때"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마지막 총력 유세 장소는 서울 청계광장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샴페인 터트리면서 조롱하듯이 말하는 200석이 만들 혼돈과 퇴행을 생각해 봐달라"며 야당 심판을 호소했다. 한 비대위원장은 "탄핵과 특검 돌림노래는 기본이고, 헌법에서 자유를 빼고, 땀 흘려 일한 임금을 깎고, 셰셰 외교하면서 한미공조 무너뜨려서 친중 일변으로 돌리고, 죽창 외교로 한일 관계 다시 악화시키고, 김준혁식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헌법을 바꿔서 이재명 조국 셀프 사면할 것"이라며 "저희는 민심만 보고 민심에만 따르겠다"고 했다.
총선까지 '이종섭·황상무' 논란과 '대파'가 상징하는 물가·민생경제 이슈 등으로 정권심판론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재명·조국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함께 막판 민주당 김준혁 후보의 막말 논란, 양문석 후보의 사기대출 논란 등 보수층이 결집할 의제도 충분했던 만큼 여론의 향배는 결과를 봐야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 200석 시나리오, 탄핵·개헌 가능…국민의힘은 '시계제로'
제22대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국회 배지. 윤창원 기자10일 개표 결과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 의석 수 200석으로 나타날 경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회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야권의 단합으로 대통령 거부권을 무효화시킬 수 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물론 개헌까지 시도할 수 있다. 대승을 거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당 장악력은 더 탄력을 받게 되고, 민심을 등에 업은 정권심판 행보에 거침이 없어질 전망이다. 이 대표의 차기 대권 행보에도 탄탄대로가 열리게 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100석 미만의 성적표는 최악의 상황이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책임론이 집중될 수 있고, 현 비대위 체제를 대체할 '비대위의 비대위'를 피할 길이 없다.
21대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처럼, 소수 여당이 야권의 각종 입법, 특검, 탄핵 시도를 규탄하는 목소리는 이어지겠지만, 100석 미만으로 쪼그라든 여당은 더욱 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도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에 접어들게 된다.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마지막 버팀목인 대통령 거부권 마저 무력화됐기에 야권이 주도하는 정국에서 대통령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야권 공세에 대응할 최소한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실 참모진 총사퇴, 내각 총사퇴 등 쇄신 카드가 단행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국정의 주도권을 찾아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與 제1당 되면? 韓 탄탄대로, 尹 정부 입법 드라이브
국민의힘 한동훈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총선 파이널 유세 후 자리를 뜨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반대로 격전지 다수를 국민의힘이 차지하면서 제1당에 오를 경우, '일하고 싶다'는 여당의 바람이 실현될 수 있다. 과반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현재까지 거대 야당의 반대로 묶여있던 입법 정책 드라이브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총선 이후 유학이 아니라 봉사할 일만 남았다고 말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향후 정치 행보에도 자연스럽게 힘이 붙게 된다. 불리한 여건 속 예상 밖의 반전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무게감이 더 커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국민의 지지가 확인된 만큼 국정과제 실현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권심판론 바람을 결과로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을 찾으며 '비명횡사' 공천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이 대표 체제가 굳건해진 만큼 21대 국회보다 민주당 자체의 파괴력은 약해질 수 있지만, 지도체제의 급격한 변동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민의힘, 120석이 '졌잘싸' 마지노선…韓 체제 운명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정권심판·국민승리 총력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며 제1당에 등극할 경우, 이재명 대표의 1차 목표가 달성된 셈이므로 이 대표가 범야권의 합심을 주도하며 차기 정국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과반을 달성할 경우 21대 국회의 상황처럼 예산안, 각종 법안, 국무총리·헌법채판관 등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 다수당이므로 국회의장직을 가져갈 수 있고,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도 확보할 수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실제 몇 석을 확보하느냐가 평가 지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 결과인 103석보다 적다면 개헌저지선만 지켰을 뿐, 이론의 여지가 없는 참패다. 현재 의석 수(국민의힘+국민의미래) 114석보다 적은 결과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책임론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120석 이상을 차지할 경우, 당내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을 전망이다. 용산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조심판을 내세우며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120석 이상 의석을 확보한 것은 범야권 180석을 저지했다는 의미가 되는데, 180석은 재적의원 5분의 3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의 야권 단독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등 막강한 국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민심이 정부와 여당에 심판을 내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 초보' 한동훈 체제를 흔들려는 움직임이 함께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일과 4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다 하고도 지면 깨끗이 승복하고 남 탓 말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자"라거나 "총선은 당 비대위원장이 주도해서 한 거다. 공천 제멋대로 하고 비례대표까지 독식하지 않았나?"라고 밝힌 것처럼 여권 내 잠룡들의 움직임이 바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