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소년기후행동 관계자 등이 기후 위기 헌법소원 청구 3년을 맞이해 헌재의 기본권 침해 판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부실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기후소송 변론이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 최초 헌소 제기로부터 4년만에 이뤄지는 이 소송은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에서 최초 사례로 통한다.
헌재는 이날 오후 소송 청구인 측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첫 공개변론 기일을 연다. 정부 측 참고인으로는 안영환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온실가스감축 분과위원장이 출석한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이나 국가 탄소중립 기본계획 등 정부가 수립한 정책이 기후위기 대응에 불충분해 국민의 생명권, 환경권,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 심판 사건이다.
정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상 203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2018년의 총배출량 대비 40%를 줄이도록 돼 있다. 2050년에는 순배출량을 0으로 맞춘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계획의 수립과 이행과정 설정이 타당했느냐는 헌법재판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이 헌소를 최초 제기한 이래 4년만이다. 헌재는 이와 함께 시민 123명의 헌소(2021년 10월), 영유아 62명의 헌소(2022년 6월), 시민 51명의 헌소(2023년 7월)까지 같은 취지의 4개 사건을 병합 심리한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 불충분…미래세대 차별"
온실가스. 연합뉴스 청구인 측 입장은 파리협정 등 국제 합의에 따라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 정부 역시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을 한계치인 '탄소예산' 범위로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현저하게 불충분하고 실효성이 부족한 40%로 설정했고, △이후 탄소중립 목표 연도인 205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았으며, △감축목표의 집행을 보장하는 방법도 미비하거나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2030년 감축목표 설정마저 과학적이지 못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 배분될 탄소예산을 2030년 이전 모두 소진하고 만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상실할 미래세대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받는다는 얘기다.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의 감축경로 등 중대사항에 국민의 결정권이 박탈된 채 대통령에게 결정 권한이 위임됨에 따라, 의회유보원칙과 포괄위임 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청구인 측은 제기하고 있다.
"현실 반영한 정책 이행, 기본권 침해 없어"
반면 정부 측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기본권 보호를 회피한 점이 없으므로 위헌 소지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에서 산업구조의 현실과 현재 가용한 기술 수준을 감안해 목표가 설정됐다고 해서 불비하다는 단정은 무리라는 반박이다. 후반부에 목표량이 높은 감축경로는 관련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시간, 정책의 본격적 시행과 효과 발생 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연도별 감축목표라는 행정계획 역시, 국가로서는 행정목표 달성을 위한 각종 수단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광범위한 재량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회유보원칙이나 포괄위임 금지원칙 위배될 게 없다는 얘기다.
미래세대에 대한 기본권 제한 주장에 대해서도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는 입장이다. UN이 산정한 온실가스 감축량은 전세계가 달성할 목표일 뿐, 각국에 할당한 탄소예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헌재는 이날 변론에 이어 박덕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청구인 측),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정부 측) 등을 출석시켜 추후 2차 변론기일을 갖는 등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네덜란드, 독일, 美몬태나 시민들 승소 사례
스마트이미지 제공이번 기후소송은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 사례로 알려졌다. 이처럼 아시아 일대에서는 사례가 드물지만, 유럽과 미국 일대에서는 시민들의 국가 상대 승소 사례가 많다.
기후소송의 효시는 네덜란드의 환경단체 우르헨다 재단과 시민 886명이 2013년 '국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다. 2019년 네덜란드 사법부는 정부의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에서 25%로 확대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미래세대 보호를 위한 예방조치도 국가의 의무'라며 정부의 현행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미국 몬태나주에서도 주정부의 화석연료 친화 정책이 미래세대 권리를 침해한다는 청소년들의 소송에서 주법원이 행정부 책임을 인정했다.
헌재 출석을 앞둔 조천호 전 원장은 "기후위기는 인류가 극복해왔던 지난 위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고 문명 붕괴로까지 갈 수 있다는 점, 이에 대한 정부의 준비가 안이하다는 점을 진술하겠다"며 "정부나 의회의 기후대응이 미비해 사법부로부터 답을 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