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과 허훈. KBL수원 KT의 가드 허훈은 1일 오후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 3차전 4쿼터 초반 심판을 향해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돌파 과정에서 부산 KCC의 가드 에피스톨라에게 스틸을 당했는데 심판이 그 과정에서 반칙을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훈은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허훈은 경기 진행 시간 기준으로 약 30초 뒤 평정심을 찾았다. 허훈이 강하게 돌파를 시도할 때 라건아가 슈팅 파울을 범했다. 허훈은 자유투 2개를 침착하게 넣었다.
지도자는 항상 선수에게 "다음 플레이에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선수 누구나 판정에 불만을 품는다. 그러나 판정이 번복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두고 평정심을 되찾아 경기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허훈이 그랬다. 허훈은 4쿼터 초반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이후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곧바로 다음 플레이에 집중했다. 에피스톨라는 변함없이 강한 수비로 허훈을 압박했지만 허훈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돌파했고 더 과감하게 슛을 던졌다.
허훈은 4쿼터에만 '9득점'을 몰아넣었다. 경기에만 집중한 허훈은 KCC 벤치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전창진 KCC 감독은 경기 후 "3점슛보다는 치고 들어오는 쪽으로 수비를 준비했는데 도움수비가 생각보다는 잘 안 됐다. 허훈의 개인 기량이 워낙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훈은 2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했다. 3차전에서 총 37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팀 패배로 웃지 못했다. 13년 만에 1만명 이상의 관중이 챔피언결정전을 지켜본 가운데 홈팀 KCC가 KT를 92-89로 눌렀다.
KCC에는 허훈의 친형 허웅이 있다. 허웅은 우승을 놓고 다투는 동생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3차전 종료 후에는 달랐다. 허웅은 "친동생이지만, 저도 경기를 뛰는 사람으로서 리스펙트 한다. 괜히 넘버원 포인트가드라는 수식어가 생긴 게 아니다. 진짜 최고다. 열정, 투지, 기술 등 모든 부분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허웅은 3차전에서 동생만큼 득점을 폭발시키지는 못했다. 그래도 팀내 가장 많은 26득점을 몰아넣었다. KCC는 허웅의 득점이 고비 때마다 터졌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지만 팀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또 하나의 변수는 바로 허웅이 배달한 7개의 어시스트였다.
KCC 허웅. KBLKT 허훈. KBL포워드 최준용은 세트 오펜스에서 팀 공격을 설계할 수 있는 선수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4쿼터 4분 출전에 그쳤다. KCC에는 가드 에피스톨라가 있지만 승부처에서 세트 오펜스 전개를 담당한 선수는 허웅이었다. 팀의 메인 볼 핸들러로서 어깨가 무거웠다.
KT는 '하드 헷지(hard hedge)' 수비를 통해 2대2 공격을 전개하는 상대 볼 핸들러를 강하게 압박한다. 전담 수비수가 드리블러를 쫓고 스크리너를 막는 빅맨도 드리블러를 쫓아간다. 강한 압박에 밀리거나 주춤하면 실책이 나올 수 있다. 빠르게 패스를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타이밍이 너무 빠르면 상대 수비는 쉽게 재정비 할 수 있다.
허웅은 침착하게 드리블을 끌었다. 상대 수비를 유인하기 위해서다. 이후 무리하지 않고 공격을 전개했다. 한 번의 패스로 베이스라인 오픈 기회를 살리기도 했고 첫 패스 이후 동료들의 이타적인 플레이가 결합해 다양한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KCC의 후반 결정적인 야투 상당수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허웅은 "2대2 공격을 하면 패리스 배스가 트랩 형식으로 저를 계속 따라다닌다. 공을 잡고 길게 드리블을 치면 코트가 넓어지면서 수비수 2명이 저에게 온다. 이때 동료 2명이 코너를 지켜준다. 이후 4번 포지션 선수에게 공을 주면 반대쪽에서 2대1 기회가 생긴다. 라건아의 롤 기회도 생기고 최준용에게도 찬스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든 2명을 밖으로 끌어내서 안전하게 패스를 하는 게 중요하다. 무리하게 들어가서 미스(miss)가 나거나 공격이 막히면 안 좋은 상황이 많이 일어난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을 최대한 생각하면서 공격을 전개했다"고 덧붙였다.
허웅의 침착한 공격 전개는 팀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전창진 감독은 "허웅에게서 파생되는 공격을 송교창이 잘 살렸고 라건아도 잘 이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상대 반칙 작전으로 얻은 자유투 4개를 다 넣은 것도 승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건아는 1점 차로 앞선 종료 12초 전, 자유투 2개를 침착하게 넣었다. KT가 3점 차로 밀린 상황에서 한희원이 골밑 득점을 기록했다. 남은 시간이 4초 정도밖에 없었는데 의외의 선택을 했다. KT는 다시 반칙 작전을 했다. 강심장이 필요한 상황, 마지막 자유투 2득점으로 승부를 결정한 선수는 허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