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정부가 재량지출 총량을 묶어두는 기조로 내년도 예산안 편성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파악됐다.
재량지출 증가율이 연평균 2.0%에 불과하지만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의무지출이 내년부터 매년 20조 원대로 불어나 현재의 재정 여건에서는 재량지출을 묶을 수 밖에 없다는게 재정당국의 판단이다.
20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지난 17일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같은 원칙이 강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의무지출은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등 지급 의무가 법에 명시돼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예산이다. 반면 재량지출은 정부가 필요시 줄일 수 있다.
당국 방침에 따라 내년도 총지출 증가분은 사실상 의무지출 증가분만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2023~2027년 재정운용계획상 의무지출은 올해 347조 4천억 원에서 내년 373조 3천억 원으로 약 26조 원 늘어난다. 2026년에는 394조 원, 2027년 413조 5천억 원으로 각각 20조 6천억 원, 19조 5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의무지출이 급격히 불어나는 상황에서 추가적 국가부채 증가없이 신규 예산을 확보하는 방안은 재량지출 구조조정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재정당국 판단이다.
이에 따라 각 부처에서 신규 예산사업을 추진할 경우 기존 재량지출 범위 안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재량지출을 억제하기로 한 것은 증가하는 국가채무를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와 세계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55.2%였다.
박종민 기자 일반정부 부채는 국내에서 주로 쓰는 국가채무(D1: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회계·기금의 부채)에 비영리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괄하는 더 넓은 의미의 정부 채무로,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각 나라의 부채를 비교할 때 주로 활용한다.
GDP 대비 D2 비율은 2013년 37.7%에서 10년간 17.5%포인트(p) 높아졌다. 비기축통화국 11개국 가운데 싱가포르(63.9%p)에 이어 두 번째 큰 증가 폭이다.
비기축통화국은 IMF가 재정점검보고서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한 37개국 가운데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8대 준비 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뜻한다. 이들 국가는 기축통화국에 비해 채권 등의 수요가 적어 재정 건전성 관리에 더 유의해야 한다.
한국은 비기축통화국 중에서도 빠른 부채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도 한국의 정부부채는 저출생과 고령화 등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한국의 GDP 대비 D2 비율이 2029년 59.4%로, 비기축통화국 중 세 번째로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수 문제도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는 배경이다.
지난 3월까지 국세 수입은 84조 9천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조 2천억 원(2.5%) 줄었다.지난해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법인세 감소가 주된 영향을 미쳤고 올해 기업 실적은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세수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세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빚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지출 구조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