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마스트미디어 제공 "1980년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는 당 타이 손입니다."
지금은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지만 당시 당 타이 손(66)의 우승은 기적이었다. 베트남에서 온 20대 초반의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은 그 전까지 오케스트라와 연주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턱시도가 없어 옷을 빌려 입고 콩쿠르 무대에 섰을 정도다.
일천한 경력과 달리 섬세하고 감성적인 그의 연주는 심사위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는 '동양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동양인은 서양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쾌거였다.
당 타이 손이 다음달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연다. 1부는 프랑스 음악을 선곡했다. 포레의 뱃노래, 야상곡, 드뷔시의 두 개의 아라베스크, 가면, 어린이 차지를 연주한다. 2부는 쇼팽의 뱃노래, 두 개의 야상곡, 다섯 개의 왈츠, 스케르초를 들려준다.
그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쇼팽의 음악은 제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자 저를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당 타이 손은 쇼팽 외에도 프랑스 레퍼토리에 강점을 지녔다. "포레와 드뷔시의 곡은 저의 문화적 뿌리입니다. 첫 피아노 스승인 어머니가 프랑스 음악 학교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웠으니까요. 쇼팽 역시 인생의 절반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프랑스 시민권자였죠." 그래서 이번 공연의 부제를 '어린 시절의 회상'(Back to my childhood)으로 정했다.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작곡가는 포레다. "드뷔시, 라벨, 포레 같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제가 가진 본질적인 피아니즘과 동양 문화 덕을 많이 봐요. 특히 포레의 음악은 '프랑스의 쇼팽'으로 불릴 정도로 시적이고 서정적이죠."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마스트미디어 제공 당 타이 손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음악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말한다. 1958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태어난 그는 하노이 음악원 교수였던 어머니를 따라 피아노를 시작했다. 하지만 머잖아 베트남 전쟁이 터지며 산 속에서 움막을 짓고 피난민 생활을 했다.
"전쟁이 났을 때 저는 너무 어려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과의 전쟁으로 점철됐기 때문에 그런 삶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으로 여겼죠."
포탄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시상황에서 그의 마음을 다잡아 준 건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였다. 당 타이 손은 "당시 어머니에게 피아노라는 존재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이자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파트너였다"며 "어둠과 고요함으로 가득한 산에서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밤을 보내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직후 모스크바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집중 트레이닝을 받으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건 행운이에요.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울 기회가 있었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준 어머니에게 감사해요."
당 타이손은 2005년부터 4회 연속 5년마다 열리는 쇼팽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2015년 이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에 대해 그는 "음악가로서 2010년과 2015년, 2024년의 조성진은 모두 다르다"며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조성진은 음악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콘서트 음악가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더욱 성숙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