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장관 등과 23일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 브리핑을 위해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내놓았지만, 알맹이가 빠진 내용에 '졸속' 비판이 일었다. 시장의 불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발표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준비 과정에 아쉬움은 남는다.
정부는 지난 2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방안은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 주재 아래 진행된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먼저 검토된 후 공개됐다.
발표된 방안에는 △금융지원 △인프라 조성 △세제 혜택 △연구개발(R&D) 및 인력양성을 돕기 위해 약 26조 원 규모의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원안 가운데 약 70%는 중소·중견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최근 불거진 반도체 업계의 요구사항에 정부가 답변을 내놓은 이날 기자회견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지원방안에서 전체 지원 규모와 방향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한 달 뒤 다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핵심 목표인 시스템 반도체 관련 성장전략은 오는 8월에 마련하겠다는 예고에 그쳤다.
취재진이 금융 지원 프로그램에 투입될 정부 재정은 어느 정도 규모이고, 내년 예산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물어도 '6월 중에 말씀 드리겠다'는 답변만 되풀이됐다.
반도체 투자 자금에 적용할 우대금리는 어떤 수준으로 지원할 것인지, 반도체 산업단지 착공 소요 기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애초 이날 지원 방안 발표를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재무장관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출국 예정일을 불과 하루 앞둔 지난 21일 최 부총리가 회의에 불참하기로 갑작스레 일정이 바뀌었고, 이틀 뒤 반도체 지원방안 발표에 나섰다.
심지어 일부 관계 부처 중에는 발표 당일에야 기자회견 일정을 공지하는가 하면, 일선 관계자들은 지원방안의 발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취재진의 질문에 쩔쩔 매는 일도 빈발했다.
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이 지난 1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현 정부가 최근 정책 발표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헛발질만 했던 사례가 반복됐던만큼, 이번 지원방안의 발표를 둘러싼 잡음을 쉽게 넘기기 어렵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사흘만에 철회하고, 대통령실이 "최근 해외직구 관련 정부 대책 발표로 국민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점 먼저 사과드린다"며 사과까지 했다.
역시 16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자들에게 '6월 중 공매도 재개'를 거론했다가 시장1주일 뒤 대통령실에서 나서서 "금감원장의 발언은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온 개인적 희망일 뿐"이라고 선긋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20일에는 고령자의 운전 자격을 제한하기 위한 조건부 운전면허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만에 거둬들이기도 했다.
다만 정부는 반도체 업계의 요구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발표를 서둘렀을 뿐, 결코 이번 지원방안 자체를 졸속으로 급조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컨데 지난 11일 최 부총리가 '10조 원+α' 규모의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예고했고, 실제로 이번 발표에서 당장 올해 가동하겠다고 밝힌 18조 1천억 원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주무부처인 기재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지원방안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 "언론에서 국가 간 반도체 경쟁 속에 한국 정부만 지원이 없어 낙오된다는 우려가 반복되자 정부가 이에 대한 메시지를 내야한다고 생각해왔다"며 "아직 대책의 세부내용까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정부 입장은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업계에서 투자보조금을 직접 지원해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선을 긋되, 인프라 지원 등은 정부 관계부처가 함께 해결책을 찾겠다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이번 발표의 목적이 있다는 얘기다.
최 부총리가 긴급히 일정을 바꾼 데 대해서도 "대통령실에서 이번에 반도체 지원방안을 다루는 것은 미리 결정됐던 일이고, 다만 보안 문제로 공지가 늦어진 것으로 안다"며 "다만 반도체 방안을 다음 달 중 발표할 생각이었는데, 관계부처 합동 형태로 이번 방안을 발표하도록 이번 주에 정리됐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