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나달이 27일(현지 시각) 프랑스 오픈 1회전에서 탈락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클레이 코트의 황제'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독무대나 다름이 없었던 롤랑 가로스에서 열린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라파엘 나달(38·스페인)이 앞서 18년 동안 14번이나 정상에 올랐던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5350만 유로·약 794억 원) 1회전에서 탈락했다. 나달은 27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 가로스에서 열린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4위·독일)에 세트 스코어 0 대 3(3-6 6-7<5-7> 3-6) 패배를 안았다.
나달의 프랑스 오픈 1회전 탈락은 처음이다. 앞서 나달은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는 프랑스 오픈에서 112승 3패의 경이적인 성적을 냈다. '흙신'으로 불린 이유였다.
하지만 세월 앞에 나달도 더 이상 흙신이 아니었다. 지난해 호주 오픈에서 고관절을 다친 나달은 허벅지 부상까지 겹치면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 거의 1년 동안 불참하면서 세계 랭킹이 275위까지 떨어졌다.
때문에 나달은 올 시즌 뒤 은퇴를 시사한 바 있다. 이 대회 전 기자회견에서 나달은 "올해가 마지막 프랑스오픈이 될 것 같지만 '100% 그렇다'고는 얘기하기 어렵다"며 여지를 남겼지만 올해 1회전에서 탈락한 마당에 내년에도 출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달은 2022년 이 대회 4강전에서 즈베레프를 꺾은 바 있다. 당시 즈베레프는 경기 중 발목이 꺾이는 심각한 부상으로 기권해야 했다. 즈베레프는 이후 다시 나달과 프랑스 오픈에서 경기하고 싶다며 설욕을 다짐했는데 거짓말처럼 나달의 사실상 마지막 롤랑 가로스에서 재대결이 성사됐다.
2년이 지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날 나달은 1세트 첫 서브 게임부터 더블 폴트를 범하는 등 한 포인트도 따내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당했다. 나달보다 11살이 어려 전성기에 접어든 즈베레프는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 정교한 제구까지 상대적으로 느려진 나달을 압박하며 1세트를 6 대 3으로 따냈다.
나달이 즈베레프의 강력한 스트로크를 간신히 받아넘기는 모습. 연합뉴스
나달도 2세트 힘을 냈다. 적극적인 네트 대시에 이은 절묘한 쇼트로 즈베레프를 괴롭히며 게임 스코어 4 대 2, 5 대 3까지 앞섰다.
그러나 나달은 5 대 4에서 집중력을 발휘한 즈베레프에 브레이크를 허용했다. 결국 타이 브레이크 끝에 2세트마저 내준 나달은 3세트도 서브 최고 시속 223km를 찍은 즈베레프의 힘에 밀렸다. 이날 나달은 서브 에이스에서 2 대 8로 열세였다.
나달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다시 프랑스 오픈에 뛰기 위해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든 재활 과정을 거쳤다"면서 "나의 몸 상태는 어떤 날은 뱀에게 물린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호랑이에게 공격을 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글이나 다름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이런 (5세트) 경기에 맞는 집중력과 에너지를 가지려면 실전 경험이 더 있어야 한다"면서 "오늘 졌지만 경기에서 승패는 늘 갈리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은퇴 여부에 대해 나달은 "오늘이 은퇴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면서도 "많은 응원을 보내준 팬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여러분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산 22번 그랜드 슬램 정상에 오른 나달이 오는 7월 1일 올해 세 번째 메이저 대회 윔블던 출전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