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왼쪽),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제22대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의 법정 시한이 오는 7일 혹은 8일로 다가왔지만, 여야 간 협상은 전혀 진척이 없다. 국민의힘은 그간의 관례와 '견제·균형'을 명분으로 최소한 운영·법사위원장직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를 내세우며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국회법상의 구성 시한을 코 앞에 뒀지만, 여야 모두 강경한 입장이라 그 안에 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은 법적 시한을 핑계로 '단독 원 구성'도 강행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이는 '반쪽짜리'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에 22대 시작부터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관례' 읍소하는 與…"운영위·법사위 우리가 맡는게 원칙"
3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그동안의 관례를 무시하고 국회의장,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일방통행하면서 여당이 말을 듣지 않으면 다수라는 힘의 논리로 원 구성 단독 처리를 예고하고 18개 상임위를 독식하겠다고까지 한다"며 "역사상 이런 1당은 없었다. 국회법의 정신과 국회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의회독재를 꿈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당이든 1당이든 어느 당이든 다수당이 됐다고 상임위원장을 입맛대로 고르거나 독식하는 것은 국회법의 취지도, 민의도 아니기 때문에 타협을 통해 원구성을 하고 협상의 산물인 관례가 생긴 것"이라며 "관례는 견제와 균형, 협치를 통한 의회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우리 국회가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것이다. 민주당이 힘으로 밟고 뭉개도 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그러면서 "국회의장은 1당인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은 2당인 국민의힘이 맡아야 한다. 만약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겠다고 한다면 국회의장을 국민의힘이 맡아야 한다. 그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며 "운영위원장은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이 맡아야 한다. 이는 지난 87년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 때부터 변함없이 지켜왔던 국회 원구성 관례다. 민주당이 소수 여당일 때도 변함없이 주장하고 존중했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운영위와 법사위만큼은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아직 윤석열 정부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았는데, 야당에선 줄곧 '탄핵' 가능성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을 피감 기관으로 두는 운영위의 위원장직을 야당에서 맡는다면 각종 자료와 증인 신청 등을 야당 입맛대로 요구할 수 있다. 게다가 관례상 운영위는 여야를 불문하고 여당의 원내대표가 위원장직을 맡아왔다.
아울러 21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폐기된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이 재추진되면, 여당이 법사위원장직을 맡고 있어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다. 야권 의석수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요건인 180석을 넘기 때문에 법사위를 건너 뛰고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 최장 330일까지 소요된다. 반면 야당이 법사위원장직을 차지한다면 그 기간은 최대 90일까지 단축할 수 있다.
'법대로' 찍어누르는 野…"합의 안되면 다수결로"
반면 민주당이 내세우는 논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법은 명분일 뿐, '의석수'를 내세워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기존 국회의) 관례도 존중하지만, 관례보다는 법이 우선"이라며 "국민의힘은 시간만 끌고 있는데, 민주당은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압박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힘이 계속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면 민주당은 국회법이 규정한 대로 원 구성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여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되, 시한 내에 합의가 되지 않으면 국회법과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론을 내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할 것"이라며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야당 단독 표결로 상임위를 배분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현재 민주당은 국회 의석수 비율에 따라 여야가 각각 상임위를 7개, 11개씩 나눠 갖자는 입장이다. 다만 이때 운영위와 법사위도 모두 다수당인 민주당이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주장대로 지금까지의 관행과 맞지 않지만, 민주당은 이미 한 차례 직전 21대 국회에서 모든 상임위를 독식한 바 있다. 당시에도 32년 만에 첫 사례로 기록됐다.
민주당은 '국회법대로 하자'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국회법상 개원 직후 열리는 첫 임시국회는 '임기 개시 후 7일'에 집회한다. 제22대 국회 임기가 지난달 30일부터 시작했으니 오는 5일부터 회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민주당은 5일 첫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법상 첫 본회의에서 의장단을 선출하도록 돼 있다. 또 첫 집회일로부터 2일 이내에 상임위원 선임, 3일 이내에는 상임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침 오는 6일이 공휴일이라 이를 날짜에 포함할지 여부 등 일부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늦어도 8일까지는 원 구성을 마무리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은 7일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신임 국회의장 후보인 우원식 의원도 끝까지 협상이 안 될 경우 법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은 명분에 불과할 뿐, 실상은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국회법에는 원 구성과 관련해 선출 시기, 방법 등만 규정할 뿐 여야 합의 등에 대해선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법대로 강행한다면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본인들 입맛대로 원 구성을 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일정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몫 부의장 경선도 아직 치르지 않고 있다. 다만 108석의 소수 여당이라 야당에 읍소하고 여론전을 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부적으론 본회의 단체 보이콧 등도 논의되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5일 어떻게 할지는 의원님들 뜻을 모아서 방침을 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대강 대치에 22대 시작부터 '험로'…민생은 뒷전
여야가 원 구성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직전 21대 국회 초기와 같이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18개를 전부 독식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시 민주당은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고 원 구성을 강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정상적으로 국회가 개원했다고 보기 어렵다. '반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추후에는 의석수 비율에 따라 11대7로 상임위원장직이 배분됐다.
더군다나 21대 초기엔 민주당이 여당이었기 때문에 단독으로 처리한 법안을 정부가 공표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여지가 크다. 이 과정에서 시급한 민생 법안들까지 폐기될 수 있다. 앞서 21대에서도 임기 막판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로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여야가 합의를 이룬 민생 법안들마저 줄줄이 폐기된 바 있다. 여야가 일부 합의를 이룬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도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단독 통과 → 대통령 거부권 행사 → 국회 재표결 부결'의 과정이 반복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