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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생태계 변화'에 베테랑 자영업자들도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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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생태계 변화'에 베테랑 자영업자들도 쓰러진다

    편집자 주

    '유리지갑'은 물가에 뒤쳐진 지 오래다. 발길 끊긴 가게 문을 여는 '나홀로' 사장님들도, 헐값이 된 폐지를 구하러 나선 노인들도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불황은 늘 약자들에 더 가혹하다. CBS노컷뉴스는 통계 속에 가려진 그들의 삶을 통해 2024년 대한민국 불황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불황이 덮친 사람들②]
    "망할 때도 가게를 잘 팔아야 빚 줄인다"
    25년 장사 경력의 상인회장 "가게 내놨다" 한숨
    바뀐 소비 경향, 자영업 생태계도 비상
    "대출 연체율·폐업률보다 위기신호는 관리비 미납률이 먼저"
    급증하는 폐업률 "정부 대출 지원 상환 조건 완화해야"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불황 앞에 장사 없다"…사장님에서 직원이 된 사람들
    ②'경제 생태계 변화'에 베테랑 자영업자들도 쓰러진다
    (계속)

    "급매, 바로 영업 가능"
     
    경기 수원시의 한 생활정보지에 올라온 부동산 상가 매물 문구다. 광고를 낸 김수철(가명·50대)씨는 "망하는 데도 돈이 든다"며 폐업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게를 통째로 내놨다고 했다.
     
    매수인이 다른 업종으로 개업하기 위해 가게를 사면 기존 시설로 인해 매매가가 빠지고, 철거 비용도 김씨가 부담해야 해 장사를 접는 데 손해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망할 때도 가게를 잘 팔아야 빚 줄인다"

     생활정보지에서는 김씨 사례처럼 "손님 많아 장사 잘 되는 곳", "손볼 곳 없는 매장" 등의 홍보글을 포함한 상가 매물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5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자의 길을 선택한 김씨는 이후 가게를 통해 대학생 자녀의 학비를 마련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막바지였던 2년 전쯤부터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물가가 치솟으면서 매출은 더욱더 급격히 줄어 반토막이 났다. 월세와 가게 운영비, 생계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제2, 제3 금융권을 찾아다니며 대출 돌려막기로 버텼지만, 그 사이 빚은 1억 원으로 불어났다.
     
    폐업을 결심한 김씨는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은 장사를 하다 힘들어져도 돈을 빌리려면 개인신용 말고 의지할 데가 없다"며 "망하는 비용이라도 줄이기 위해 급매를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를 잘 팔아야 빚을 줄일 수 있다"며 자신이 내놓은 가게의 업태와 지역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업태와 장소가 드러나면 가게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매매가를 낮춰달라고 하거나, 아예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9일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에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9일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에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25년 장사 경력의 상인회장 "가게 내놨다" 한숨

    인천 연수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연호(48)씨도 이달 가게를 내놓을 예정이다. 20대 때부터 자영업의 길을 시작한 그는 주변에서 '장사의 신'으로 통한다. 그는 20여년간 의류매장, 카페, 화장품 판매 등 다양한 업종과 업태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인근 대학교에서 자영업준비생들을 위한 강의도 하고 있다.
     
    박씨는 인천 골목형상점가 상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연수구와 서구, 중구, 남동구 등 인천 시내 10개 군·구 가운데 4개 구의 골목시장 상인회가 뭉친 조직이다. 회원 수만 6천명이 넘는다. 전국 골목형 상점가 상인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박씨의 카페에 손님이 없는 건 아니다. 그의 카페 주변 10m 이내에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와 개인 카페가 있지만 박씨의 카페 매출은 100여개의 상점이 입점한 이 상가 내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 높은 편이다.
     
    그런 박씨가 8년간 운영했던 카페를 내놓기로 마음 먹었다는 건 지금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박씨는 "20년 넘게 다양한 가게를 운영했고,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잘 극복해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이번 불황은 다르다"고 털어놨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바뀐 소비 경향에 자영업 생태계도 '비상'

    이번 불황의 원인으로 인건비·원재료값·임대료 상승,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그는 '자영업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박씨에 따르면 자영업계도 농업처럼 이른바 '주기'가 있다. 자영업 계통에서는 3월 신학기 특수, 5월 가정의달 특수, 7~8월 여름휴가 특수, 12월 연말 특수 등 4~5가지의 특수기간이 있다. 이 기간은 관련 업소들의 매출은 급격히 늘지만 일반음식점 등 특수성이 없는 나머지 업체들은 오히려 수익이 줄어드는 기간이다.
     
    이 때문에 일반업종 종사자들의 매출 순환 주기를 보면 4월부터 매출이 서서히 증가하다가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다시 줄어드는 경향을 띤다. 이같은 경향은 활황이나 불황에 관계없이 국민들의 연간 소비 경향에 따라 굳어진 것인데 지난해부터 이런 경향이 깨지고 있다는 게 박씨의 분석이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4월 이후에 서서히 올라야 할 매출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불경기였던 연말연초보다 더 떨어졌고 그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자영업자들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대출 연체율·폐업률보다 위기신호는 관리비 미납률이 먼저"

    소비 경향의 변화가 자영업 생태계 변화로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이 생존방식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실제 박씨가 입주한 상가동의 공실률도 30%를 훌쩍 넘는다.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인데 이는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2년 4분기(0.64%)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직전인 2023년 4분기(0.48%)보다 0.06%p 상승했고, 저점이었던 2021년 4분기(0.16%)보다는 3배 넘게 뛰었다.
     
    지난해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9.5%로 전년 대비 0.8%p 높아졌고, 폐업자 수는 91만1천명으로 전년 대비 11만1천명 늘었다.
     
    그러나 박씨는 자영업자들의 위기신호가 정부의 통계상으로는 금융통계를 통해 체감할 수 있지만, 지자체 차원에서는 각 상가의 관리비 미납률로 먼저 찾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세나 수도세를 수개월 밀리면서 버티던 가게들이 결국 관리비조차 내지 못하게 되면, 대출 연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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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증하는 폐업률 "정부 대출 지원 상환 조건 완화해야"

    박씨는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것을 한동안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방식이 조금만 바뀐다면 이들이 '버티고 극복할 힘을 얻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씨는 정부가 운영하는 대출 지원 사업이 오히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정책자금이나 신용보증재단 등을 통해 대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1~2년 거치 후 3년 상환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즉 3년 안에 대출원금을 모두 갚아야 하는 구조다. 신용도에 따라 최대 1억원까지 지원되는 걸 감안하면 매달 갚아야 하는 금액이 원금만 최대 280만원이라는 의미다. 2·3금융권에서 10년 상환 조건을 취급하는 상품도 있지만 이자율이 15%안팎에 이른다.
     
    박씨는 "정부나 지자체의 대출 지원 사업들도 10년 상환으로 조건을 완화해준다면 매달 상환금액도 수백만원이 아닌 수십만원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원금 상환 부담이 줄면 연체율이나 폐업률을 낮출 수 있고, 폐업을 하더라도 새출발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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