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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앞에 장사 없다"…사장님에서 직원이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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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황 앞에 장사 없다"…사장님에서 직원이 된 사람들

    편집자 주

    '유리지갑'은 물가에 뒤쳐진지 오래다. 발길 끊긴 가게 문을 여는 '나홀로' 사장님들도, 헐값이 된 폐지를 구하러 나선 노인들도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불황은 늘 약자들에 더 가혹하다. CBS노컷뉴스는 통계 속에 가려진 그들의 삶을 통해 2024년 대한민국 불황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불황이 덮친 사람들①]
    "5년 준비해 사장됐지만 임대료 상승·과다경쟁에 속수무책"
    불황에 일감 '뚝'…2대째 이은 페인트상점도 결국 '폐업'
    "일감은 인건비 싼 중국으로…혼자 버틴다" 1인 기업도 위기
    연체율 11년 만에 최고·폐업률은 9.5% 급증…자영업자는 '죽을 맛'

    연합뉴스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불황 앞에 장사 없다"…사장님에서 직원이 된 사람들
    (계속)

    "5년 준비해 사장됐지만 임대료 상승·과다경쟁에 속수무책"


    이병훈씨(가명·34)는 최근 2년 동안 운영해온 안경원을 폐업했다. 2021년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5년 동안 안경원에서 쌓은 경력에 자신도 있었다.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 가게를 열기로 하고 상권과 유동인구까지 꼼꼼히 분석했다. 특히 코로나 여파로 임대료도 저렴했다.

    "처음에는 (가게 운영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때 재난지원금을 안경원에도 사용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안경을 많이 바꿨습니다."

    얼마 안 돼 코로나가 끝났다. 하지만 자영업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던 이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상황은 오히려 나빠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를 당황케 한 건 임대료였다. 코로나로 일시적으로 내렸던 임대료가 다시 올랐다.

    이씨는 "매출은 예상 수준으로 나왔는데, 임대료를 간과했던 것 같다"라며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400만원이 넘다 보니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시간도 그의 편은 아니었다. 고금리, 고물가로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좀처럼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그는 "안경은 몇 달에 한 번씩 바꿔줘야 하는 물건도 아니고, 필수품도 아니다 보니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잘 안 사는 것 같다"며 "경기가 안 좋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 줄 몰랐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불황에 일감 '뚝'…2대째 이은 페인트상점도 결국 '폐업'


    한 때 직원들까지 두고 페인트 점포를 운영해온 김덕기(37)씨도 불황을 이겨내지 못했다.

    "코로나 때 집꾸미기 붐이 일면서 페인트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었었습니다. 그 때는 일이 몰리면서 직원들을 채용해서 대규모 공사까지 따내기도 했을 정도로 잘 됐죠."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서 김씨의 사업 역시 일감이 뚝 끊겼다. 더욱이 건설 경기 악화로 매출은 3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올해초부터는 김씨가 벌어온 일당으로 가게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결국 그는 지난 달 가게를 접었다. 김씨는 "근데 페인트가 너무 안 팔려서 직원 인건비까지 주기 힘들어졌다. 결국 내 월급을 가게 직원과 나눠가지는 꼴이 됐다"며 "불경기에 돈을 버는 자영업자는 극소수다. 굳이 내가 리스크를 안고 가게를 운영하기 보다는 남 밑에서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일감은 인건비 싼 중국으로…혼자 버틴다" 1인 기업도 위기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서 원만식(59)씨가 주문을 기다리는 금형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정성욱 기자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서 원만식(59)씨가 주문을 기다리는 금형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정성욱 기자
    영세 기업들이 몰려 있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역시 불황의 여파가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원만식(59)씨의 공장도 절반은 불이 꺼졌고, 기계는 멈춘 상태다. 원씨의 공장은 대기업의 3~4차 하청을 받아 기계에 들어갈 부품을 제조해 왔다. 하지만 불황으로 원청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자 그 여파는 생존의 위기로 다가왔다.

    원씨는 "요즘은 일감 자체가 많지 않다"며 "또 물량이 있어도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넘기다 보니 우리한테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원씨는 이곳의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이다. 코로나 등으로 경영난이 계속되면서 수년 전부터 직원 없이 1인 공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낱개 주문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기계를 돌리려면 기름칠을 해주고, 기름도 넣어야 하는데, 기름값이 이전보다 30~40%는 올랐고, 알루미늄 같은 원자재값도 올랐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업계내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격경쟁까지 붙어 시장 정체가 침체되고 있다"고 원씨는 울상을 지었다.

    같은 건물내 전민수(가명·56)씨 역시 '나홀로' 사장인 공장이다. 전씨는 반도체나 건설업계 관련 부품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씨 역시 업계 불황에 따른 매출 감소와 전기료 인상 등 유지 비용 상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씨는 "공단에는 산업전기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료가 보급되는데, 지금은 그런 혜택이 사라져서 가정전기랑 가격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전씨는 최근 10년 사이 '생떼 같은' 기계를 30대에서 3대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연체율 11년 만에 최고·폐업률은 9.5% 급증…자영업자는 '죽을 맛'


    연합뉴스연합뉴스
    고금리와 고물가 장기화로 영세한 자영업자들 한 숨이 깊어가고 있다. 그들의 어려움이 한계로 치달으며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장님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2년 4분기(0.64%)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직전인 2023년 4분기(0.48%)보다 0.06%p 상승했고, 저점이었던 2021년 4분기(0.16%)보다는 3배 넘게 뛰었다.

    자영업자들의 연체율이 늘자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기관들은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자영업자들은 매출 하락을 빚으로도 막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대출 총액은 올해 3월 말 기준 1조3560억원으로 1년 전(9870억원)보다 37.4%(3690억원) 급증했다. 같은 기간 평균 연체율 역시 0.31%에서 0.42%로 0.11%p 상승했다.

    지난해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높아졌고, 폐업자 수는 91만1천명으로 전년 대비 11만1천명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금리·고물가에 개인사업자들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다들 피부로 느끼는 건데, 이에 더해 빚을 못 갚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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