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5월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차 전원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김민재 기자고용노동부가 '도급 노동'의 최저임금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결정할 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리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노동계는 만약 올해 최임위에서 역대 최초로 도급제 최저임금을 공식 논의할 경우, 특수고용노동자(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 전반으로까지 최저임금이 작동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노동계 손 든 노동부 "도급제 최저임금, 최임위에 논의 권한 있다" 유권해석
2025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1일 제3차 전원회의를 열어 '도급제 최저임금' 안건을 집중 논의했다.
최저임금법 제5조 1항에는 최저임금액을 시간·일·주 또는 월 단위로 정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노동시간 대신 '일거리'를 완료하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도급 노동 등의 경우 같은 법 5조 3항에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따로 정했다.
이를 놓고 노동계는 이번 최임위에서 도급 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을 따로 정해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특고·플랫폼 종사자들이 실제로 최저임금을 보장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도급 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을 따로 정해도 되는지 여부를 최임위에서 결정할 권한 자체가 없다며 반박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한 최저임금 심의 요청서. 고용노동부 제공이날 회의에도 최임위 근로자위원들은 회의 심의안건에 최저임금법 제5조 1항만 포함된 점을 문제삼으며 3항까지 포함하라고 주장하자,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 노동부 장관의 요청서에 해당 내용이 없다고 맞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심의요청서에는 최저임금액과 최저임금 수준, 사업의 종류별 구분 여부 등을 심의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애초 최저임금법의 특정 조항이 심의대상으로 따로 적시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사용자위원들이 도급제 최저임금을 최임위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최임위 이인재 위원장이 회의에 배석한 노동부 특별위원에게 의견을 묻자 "해당 결정권한은 최임위에 있다"고 유권해석 답변이 내려진 것이다.
그 근거로 노동부 측은 최임위가 최저임금에 관한 심의와 관련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기구이며, 최저임금과 최저임금 적용 사업의 종류별 구분 등에 관해 심의하도록 적시한 최저임금법 12조, 13조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도급제 최저임금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 적용' 논의 역시 최임위 설립 취지에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사용자위원을 중심으로 정부에 전문가를 통한 추가 법리 검토를 요청한 끝에 오는 13일 열릴 제4차 전원회의에 노동부의 최종 해석이 내려질 예정이다.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 반대할 명분 잃은 경영계, 다음 수는?
만약 다음 회의에도 노동부가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가 최임위 본연의 기능인 최저임금 심의에 포함된다고 해석한다면 경영계로서는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는 처지에 놓인다.
앞서 지난 4일 2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경총 류기정 전무는 도급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을 정할 필요성을 최임위가 인정할 권한이 없다며 "고용부 장관,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이 인정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런 형태는 유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예측해서 최저임금을 사전에 개별적으로 정해두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 왔다"고 덧붙였다.
즉, 도급제 최저임금을 논의하라고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법원과 정부 가운데, 법원은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마다 일일이 최저임금을 미리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정부도 도급제 최저임금을 따로 정하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임위에서 논의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 이미선 부위원장은 3차 회의를 시작하면서 특고·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던 대법원의 관련 판례들을 대거 제시하며 반박했다. 더 나아가 노동부가 최임위에 논의할 권한이 있다는 유권해석을 유지한다면 경영계의 주장이 모두 반박되는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왼쪽)과 근로자위원(오른쪽)들이 지난 5월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차 전원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김민재 기자만약 전문가들도 별다른 이견이 없어 정부가 같은 해석을 유지한다면 도급제 최저임금 안건은 정식으로 최임위 논의안건에 포함된다. 다만 당장 올해 최임위에서 곧바로 도급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느냐 여부는 다시 표결로 정해질 전망이다.
도급제 최저임금 안건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된다면, 경영계로서는 그동안 강조했던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에 한층 더 불을 붙일 수도 있다.
그동안 업종별 차등적용이 근로자위원은 물론, 공익위원에게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던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첫해인 1988년 이후 단 한 번도 시행된 전례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단 한번도 논의조차 된 적 없던 도급제 최저임금이 이번에 다뤄진다면, 경영계로서는 그 반대급부로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논의에도 속도를 낼 명분을 하나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도급제 최저임금, 특고·플랫폼 종사자 아우르는 안전판 될까
애초 노동계가 도급제 최저임금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업무시간이 아닌 '일감' 단위로 계약하는 특고·플랫폼 종사자들도 최저임금의 안전지대에 포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특고·플랫폼 종사자 전반으로까지 최저임금 안전망이 확대될 수 있느냐도 관심거리다.
애초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명시됐다. 만약 도급제 최저임금을 정하더라도 적용받는 대상은 특고·플랫폼 종사자 중에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사례로 한정된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승욱 교수는 "플랫폼 종사자의 경우 워낙 고용형태가 다양하고,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경우도 많아 실익이 많을까 싶다"며 "반대로 법원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됐다면 노동자로서 최저임금을 보장하면 될 일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과 연동되는 제도도 엄청나게 많은데, 이런 현행 제도와 연계성까지 다 검토해야 할 일"이라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근로자의 정의에 플랫폼 종사자 등을 포함하도록 개정해서 최저임금의 보호 범위를 넓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지, 현행 최저임금법의 틀 안에 끼워맞출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오히려 최저임금법 5조 3항이 도급제 노동을 다른 노동자와 따로 두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도록 하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직장갑질119대표 윤지영 변호사는 "그동안 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근거 중 하나가 임금 체계"라며 "실적에 따른 성과급제는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유력한 근거로 적용됐는데, 임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논거로 도급 노동자들의 임금 계산 방식을 갖고 반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전제로, 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므로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되, 5조 3항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리적 관점에서는 최저임금법을 근거로 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에 곧바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계는 도급제 최저임금을 정한다고 해서 모든 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에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는 없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이 적용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부라도 법원으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면 노동자로서 최저임금을 적용 받아야 하고, 이를 도급제 최저임금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다른 특고·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들도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오민규 집행책임자는 "근로자성 인정된 대법원 판결이 엄청나게 많고,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면 최저임금법 5조 3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업종이든 다양한 노동형태가 뒤섞여 있다. 100% 근로자만 있는 업종은 없지만, 대부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접근하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방식으로 돈을 받는데, 왜 최저임금의 권리는 일부에만 적용하느냐는 지적이 쏟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노총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일부 특고·플랫폼 종사자들은 소송 이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받을 것"이라며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일단 정하고 나면 결과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까지 포함해 해당 직종·업종에 대한 임금의 최저선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