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오수정 기자2번째 육아휴직 중인 지금, 출산 전 취재했던 총선 전망이나 향후 권력구도 같은 건 모두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해 보였던 이슈들은 지금 내 육아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신 핸드폰 검색어는 온통 수면 교육, 아기가 잘 먹는 분유, 육아용품 핫딜 등으로 완벽하게 대체됐다. 취재 현장을 떠난 지 고작 4개월 정도 됐지만 기자로 일했던 시절이 까마득한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세상에 이례적으로 둘째를 출산했을 때 주변 많은 곳으로부터 축하와 격려와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축복의 이면에서 나는 '전과 같은 사회생활은 불가능합니다' 하는 선고를 받은 듯했다.
첫 번째 육아휴직을 마치고 얼마간 육아와 회사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채감은 늘 따라다녔다.
취재원과의 저녁 자리는 육아와 임신을 핑계로 되도록 피했고 아이가 하원한 후에는 현장을 지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뉴스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저녁에 취재차 전화기를 들 때마다 들러붙는 아이를 떼어내기 급급했고 아이를 재우고 기사를 쓰느라 마감시간이 한없이 늦어지기도 했다.
하물며 아이가 둘인 지금은 그마저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두 번의 육아휴직을 거치며 커리어에 구멍이 났다는 피해의식 또한 지워지지 않는다.
모순되게도 이 모든 위태로운 순간들을 잊게 만드는 것 또한 아이들이다. 작년까진 대부분 저녁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던 첫째는 하원을 해서도 집에 있는 엄마가 너무 좋다고 종종 고백한다. 갓 백일이 된 둘째는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어린이집에 보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눈만 마주치면 웃는다.
나를 바라보는 말간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까짓 일이 다 무엇인가 싶다. 무엇보다 두 아이를 내 성장의 걸림돌로 여기고 싶지 않다.
워킹맘이 가정과 일터에서 육아와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슈퍼우먼의 영역이다. 나처럼 슈퍼우먼이 못 되는 평범한 워킹맘은 대부분의 순간에 둘 중 하나를 강요받는다. 자식도 제 손으로 돌보지 못하는 이기적인 엄마 혹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팀원이 될 수밖에 없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회사 덕분에 나는 동료들의 배려를 받아 유연하게 근무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도 훨씬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3년 전의 첫 번째 육아휴직과 비교해도 지원이 늘어났고 제도가 촘촘해졌음을 느낀다. 급기야 대통령은 최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출산 가정에 '범국가적' 지원을 공언했다.
다만 정부의 파격적인 정책으로 육아휴직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도, 나는 필드에서 그리 오랫동안 격리되고 싶진 않다. 회사의 너그러운 배려에도 나의 육아가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한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명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워킹맘은 늘 아이들에게, 회사에, 대신 육아를 전담하는 조부모에 부채감을 안고 산다. 워킹맘이 미안함을 달고 다녀야 하는 사회에서 '국가비상'은 쉬이 해결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