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24시간 경과 후 중단을 요구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둘러싸고 여야가 거세게 맞붙은 4일 오후 본회의장 풍경은, 마치 스포츠 경기의 '벤치 클리어링'을 방불케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3시 50분쯤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던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을 향해 토론 종결을 위한 표결을 해야 한다며 토론을 마무리해 달라고 발언했다. 야당이 전날 오후 3시 45분에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를 제출했기 때문에 24시간이 지나면 표결을 통해 토론을 중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 의장은 "의사 진행은 의장이 한다. 계속하라"며 곽 의원의 발언을 허용한 우 의장은 잠시 뒤 다시금 "10분 내로 토론을 마무리해 달라"고 말했고, 곽 의원은 "표결하시면 물러나겠다"고 답한 뒤 토론을 이어갔다. 10분이 지난 후에도 곽 의원이 "표결 하시라. 표결할 때까지 저도 발언을 할 수 있다"며 발언을 이어가자, 우 의장은 한 차례 더 10분을 제공했다.
다시 10분이 지나자 우 의장은 "마이크를 꺼 달라"며 "국회의장은 국회법상 의사를 정리할 직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는 제출된 때로부터 24시간이 지난 후에 표결하도록 규정한 국회법 취지에 따라 토론을 멈추고 종결 동의를 표결할 필요가 있다"며 "종결 동의가 부결되면 토론을 계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24시간 경과 후 중단을 요구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그러자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수십 명이 순식간에 의장석 앞으로 몰려 나와 항의를 시작했다. 추 원내대표는 "곽규택 의원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며 단상 아래에서 항의를 하다가, 우 의장이 중단 표결을 진행하려 하자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는 "국회의원에게는 발언권이 보장돼 있다"며 거세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발언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이에 우 의장은 "곽 의원이 '표결하면 물러나겠다'고 했다"며 "의사를 정리하기 위해 표결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무제한 토론 종료를 "표결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맞불을 놨다. 우 의장은 "여러분들이 교섭단체간 협의를 통해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하면 그럴 수 있다"며 30분 등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토론을 종결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계속해서 발언권을 보장하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측 간 신경전은 40여분이나 지속됐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우 의장은 자신의 제안 중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무리할 시간을 이미 충분히 드렸다"며 종결 동의 건을 상정했다. 그는 "의사를 정리하는 것은 국회의장의 권한과 직무"라며 "더 이상 여러분들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를 표결하겠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24시간 경과 후 중단을 요구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와 의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여당 의원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보장하라"를 외치던 의원들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바꿨고, 표결 상정 후에는 "사퇴하라"로 다시 바꿔 외쳤다. 개인별로는 "어떻게 의장이 의원의 발언권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느냐", "국회의장이 맞느냐", "의장님 오늘 실수하시는 거다" 등의 발언도 쏟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의장은 오후 4시 45분쯤 표결 착수를 선언했고, 감표위원들을 호명했다. 이름이 불려진 여당 의원들이 감표에 참여하지 않자, 우 의장은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로 감표위원을 교체했다.
다만 표결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 참여 여부 논의를 위해 의원총회를 열겠다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탓이다. 이에 우 의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 참여를 논의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연다고 하니 잠시 기다려 보자"며 표결을 진행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복귀 대신 다음 날인 5일 열릴 예정이던 국회 개원식 불참을 선언했다. 추 원내대표는 긴급의총에서 "우 의장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국민의힘 의원들은 앞으로 어떤 존경이나 경의도 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겠다"며 "국민의힘은 개원식에 불참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힌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참석하지 않으실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해병대원 특검법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동의의 건 상정 이후 개표 전 의사진행 발언을 마친 뒤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인사하지 않은 채 퇴장하며 동료의원들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이에 우 의장은 오후 5시 35분쯤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며 개표를 선언하고, 대기 중이던 곽 의원에게 의사진행발언을 허용했다. 곽 의원은 특검법 관련 발언을 3분 정도 이어간 뒤 발언을 종료했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종결 동의는 오후 5시 52분쯤 재석 188명 가운데 찬성 186, 반대 2표로 가결됐다. 이어 5시 55분쯤 채 상병 특검법도 재석 190명 가운데 찬성 189표, 반대 1표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종료와 특검법 가결이 선언 될 때마다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