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한동훈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씹음)' 논란으로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 한 후보가 비대위원장 신분으로 지난 총선을 이끌 당시, 김 여사가 '명품백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고 싶다'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지만, 한 후보가 이를 무시했다는 내용이 논란의 핵심이다. 한 후보가 본인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총선을 고의로 망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레이스 시작 전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단단한 입지가 형성된 듯 보였지만, 지난 주말 불거졌던 '배신의 정치' 공세에 이어 '해당행위(소속 정당에 해를 입히는 행위)'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대세론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특히 한 후보가 '문자 읽씹' 논란에 "공적 채널로 소통했다"고 해명했지만, 곧바로 "공적으로도 소통한 적 없다. 거짓"이라는 반박이 나오면서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당 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윤리위에서 사안을 조사한 뒤 해당행위로 판단, 당원권을 정지시킬 경우 대표 출마 자격을 잃는다.
한동훈, '김건희 문자 읽씹' 논란…'진실공방' 점입가경
국민의힘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약속, 공정 경선 서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5일 한 후보는 전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통해 불거진 이른바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에 대해 "저는 집권당의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이고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총선 기간 동안 대통령실과 공적 통로를 통해 소통했다"고 해명했다.
또 "동시에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전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후보 캠프는 공적 채널에 대해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박이 제기됐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이관섭 전 실장은 한 후보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시 한 위원장은 이관섭 비서실장과 국민의힘 의원 등의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았다. 공적, 사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거짓"이라고 밝혔다.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김 여사의 문자 메시지 내용을 두고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한 후보는 공개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 후보 캠프 신지호 총괄상황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 문자와 관련된 메시지가 온 시점은 1월 19일"이라며 문자가 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면 재구성됐다고 하는 메시지와 같이 '이렇게까지 사과할 용의가 있고, 이걸 전달을 했는데 그냥 딱 뿌리쳤다' 이건 편집된 것이다. 공개된 그 재구성된 메시지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선 함구하는 모양새다. 한 후보는 이날 오후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 "문자 내용이 재구성된 것이다. 실제로는 사과하기 어려운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만 밝혔다. 신 총괄상황실장도 "한 후보는 (메시지를) 본인이 받은 거지만,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지 않느냐"며 정확한 내용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다.
반면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 여사는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결정만 내려주면 바로 사과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며 "한 위원장의 답변이 없었다"고 한 위원장 측의 책임을 강조했다.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통해 공개된 문자 내용에 의하면 김 여사는 "최근 저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부담을 드려 송구하다. 몇번이나 국민들께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 후보 시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 기억이 있어 망설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사과를 하라면 하고 더 한 것도 요청하시면 따르겠다"며 "한 위원장님의 뜻대로 따르겠으니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배신의 정치→고의 총선 패배→다음 단계는 윤리위?
국민의힘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한동훈 당대표 후보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약속, 공정 경선 서약식'에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한 후보는 지난 주말부터 불거졌던 '배신의 정치'에 이어 이번에는 '고의 총선 패배' 공세로 인한 위기에 봉착했다. 경쟁 주자들은 이날 한 후보를 향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원희룡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총선 기간 중 가장 민감했던 이슈 중 하나에 대해 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요구하는 걸 다하겠다는 영부인의 문자에 어떻게 답도 안 할 수가 있느냐"라며 "공적·사적 따지기 전에 인간적으로 예의가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고, 나경원 후보도 "한 후보는 지금이라도 당원과 국민, 그리고 우리 당 총선 후보자 전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후보는 한 후보가 해명하는 과정에서 '공(公)과 사(私)'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점을 꼬집었다. 그는 "(한 후보가) 영부인과 사적 방식으로 공적 논의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서 그랬다는데, 검사장 시절에는 검찰총장의 부인이던 김건희 여사와 332차례 카카오톡을 주고받은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을 생각하면 다소 난데없는 태세전환"이라고 지적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한 후보가 '고의로 총선을 패배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컷오프'(경선배제) 된 김소연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 위원장은 책임을 져야겠다. 영부인을 마리 앙투아네트로 저주하던 김경율 패거리도 반성하셔야 한다"며 "혹시 한 전 위원장께서는 국민의힘 총선 승리할까 봐 걱정하신 것 아닌가. 총선 승리하고 우리 윤석열 정부가 힘을 받으면, 본인 존재 가치가 없어질까 두려워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주장했다. 원 후보 또한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영부인의 가방 사건은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던 우리에게 불리한 이슈였다. 그러면 이것을 풀기 위해 영부인이 사과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하겠다'는 뜻을 본인이 직접 전달했는데 그걸 비대위원장이 묵살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해당행위"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공식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행위'라는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확대될 경우, 사안을 윤리위원회에 넘겨 심의할 가능성이 있다. 진실공방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라 윤리위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당대회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윤리위에 사안이 넘어가는 경우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한 후보가 제소되면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 차례 검토한 후 윤리위에 판단을 맡기거나, 비대위 의결을 통해 윤리위에 사안을 넘기는 경우다.
당 선관위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오늘 회의에서 구체적인 어떤 사안을 갖고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영부인까지 이렇게 끌어들여서 선거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공유한 상황"이라며 "해당 사안에 대해 현재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선관위로 문제 제기가 들어오거나 한 것은 없다"면서도 "들어오면 논의를 할 예정이다. 우선 이 사안을 우리 선관위에서 문제로 삼아야 될지, 안 해야 될지부터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 윤리위 핵심 관계자 또한 "아직 보고받은 바는 없다"면서도 "뭔가 이슈가 생기면 3일 내에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대기하고 있다. 언제든 윤리위를 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윤리위에서 '해당행위'로 판단하고 한 후보의 당원권을 정지할 경우 후보직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