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득점을 성공하고 기뻐하는 여자 핸드볼 강경민. 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원성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정치권은 연일 뜨겁고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 지연과 관련한 뉴스는 끊임없이 쏟아진다.
정작 올림픽이 개막하면 그래도 관심이 높아지지만 개막 직전인 지금까지도 올림픽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오랜 노력의 결실을 맺기 위해 묵묵히 첫 발을 내디딘 태극전사들이 있다.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의 유일한 단체 구기 종목,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이번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가 유독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팬이 많은 단체 구기 종목들이 올림픽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야구는 정식 종목이 아니고 황선홍 호는 아시아 예선에서 탈락했다. 농구와 배구도 파리행 티켓을 따지 못했다.
핸드볼은 엄연히 단체 구기 종목에 해당하지만 국내에서 인기가 아주 많다고 보기는 어려운 종목이다. 여자 핸드은 과거 올림픽에서 감동의 승부를 연출한 적이 많았다. 올림픽에서 총 6개의 메달(금2, 은3, 동1)을 수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 현지시간으로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4시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한국과 독일의 파리 올림픽 여자 핸드볼 조별리그 A조 1차전이 열렸다. 한국시간으로는 오후 11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대표팀 선수들은 개막 하루 전에 열리는 여자 핸드볼의 첫 경기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 치열하게 싸웠다. 강호들이 몰려있는 A조에서 8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첫 상대 독일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또 올림픽의 열기를, 여자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국은 후반 중반 독일에 4골 차로 밀렸지만 베테랑 류은희를 필두로 골키퍼 박새영까지 모두가 분전한 결과 23-22로 승리했다. 독일전에 많은 것을 걸었던 대표팀 선수들은 종료 버저가 울리자 마치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
다소 늦은 시간에 열렸음에도 TV로 경기를 시청한 스포츠 팬들도 승자였다. 국내 팬들은 여자 핸드볼 대단하다, 엄청난 명승부였다 등 찬사를 보냈다. 올림픽의 열기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여자 핸드볼이 시동을 걸었다.
후반 막판 두 차례 결정적인 선방을 펼친 박새영은 "오늘 결승전 같은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는데 밤 11시에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이렇게 좋은 경기를 보여드려서 너무 뿌듯하다"고 소감을 남겼다.
경기 막판 패시브 상황에서 점수차를 2골 차로 벌리는 쐐기 득점을 만든 강경민은 "오늘 여자 핸드볼 경기가 있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많고 구기 종목이 여자 핸드볼만 있어서 부담이 됐고, 보여지는 게 많아서 걱정도 됐는데 이 순간이 정말 금메달을 딴 순간보다도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을 잡은 여자 핸드볼 대표팀. 연합뉴스 필사적으로 수비하는 여자 핸드볼 골키퍼 박새영. 연합뉴스 독일의 수비 벽을 뚫고 공격을 시도하는 여자 핸드볼 류은희. 연합뉴스 한국과 독일의 피지컬 차이는 매우 컸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불리한 신체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전략, 전술도 좋았다. 헨리크 시그넬(스웨덴) 대표님 감독은 중요한 공격권에서 골키퍼를 빼고 필드 플레이어를 투입해 '7대6' 구도를 만드는 과감한 작전으로 효과를 봤다.
류은희는 '7대6' 작전에 대해 "혹시나 경기가 안 풀릴 때를 대비해 준비했는데 오늘 잘 됐다"고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강경민은 "감독 선생님께서 공격을 7명으로 하는 작전으로 변경한 게 좋았다"고 말했다.
여자 핸드볼이 연출한 명승부를 계기로 한국 유일의 구기 종목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올림픽을 향한 응원 열기 역시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자 핸드볼은 28일 슬로베니아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이후 만나는 상대들이 세계적인 강호들이기 때문에 슬로베니아를 반드시 잡아야 8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다. 그때는 분명 첫 경기보다 더 많은 응원을 받을 것이다. 태극전사들이 놀랄 정도로 열광적이었던 현장의 응원은 물론이고 국내에서의 응원 역시 뜨거워질 것이다.
베테랑 류은희는 차분했다. "슬로베니아 경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 승리에) 연연하거나 젖어있지 않고, 빨리 털어버리고 다시 분석에 들어가서 이기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