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정점식 정책위의장. 연합뉴스국민의힘 한동훈 지도부 내에서 정점식 정책위원회 의장을 겨냥한 '교체론'이 제기됐다.
정 정책위의장의 거취에 따라 한 대표 측의 '최고위원회 과반' 여부가 결정되는데, 안정적인 당 운영을 위해선 친한계의 의결권이 필요하다는 것이 명분이다. 이를 두고 친윤계를 중심으로는 당헌·당규 상 임기 1년을 보장해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동시에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며 경고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최근 한 대표 지지자들이 정 정책위의장의 페이스북에 "자진 사퇴하라"고 메시지를 남기며 집단 행동을 나서자, 정 정책위의장이 자신의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등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자칫 한 대표 체제 출범과 동시에 계파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친윤' 정점식 교체 원하는 韓측…"1년 임기 보장해야" 반박
한 대표는 29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신임 사무총장 등 일부 당직자에 대한 인사 발표와 함께 향후 인선의 방향을 보여주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전해졌다. 사무총장으로는 3선 송석준, 재선 배현진 의원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송 의원 임명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한 대표 측은 정책위의장 인선에 대해선 시간을 두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어 '탕평책'의 일환으로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의 유임을 검토했던 기존 기류와는 달리 기존 지도부의 일괄 사퇴를 언급했다. 새 대표가 선출되면 이전 지도부의 당직자는 모두 일괄 사표가 제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 관례라며, 정 정책위의장을 교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와 관련, 한 대표 측 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관례상 지도부가 바뀌면 당직자들은 모두 그만둬왔는데 (정 정책위의장이) 그런 정도의 태도는 보여줘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 그림이 아니라면 정 정책위의장이 몽니를 부리는 식으로 비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 측이 일단 거취를 일임하라는 식의 입장을 내세우는 데엔 정 정책위의장 교체를 통해 한 대표가 최고위 의결권을 사수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까지 확정된 지도부 중 '친한'은 한 대표와 장동혁 최고위원, 진종오 청년 최고위원까지 3명이다. 나머지 5인은 당연직 중 친윤계인 추경호 원내대표와 정 정책위의장, 그리고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김재원·인요한·김민전 최고위원 등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을 친한계로 지명한다고 가정하면 최고위 내 '친한'과 '친윤'이 4대 5로 친윤계가 의결권을 갖게 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박종민 기자한 대표 입장에선 정 정책위의장을 친한계 인사로 교체해야 '친한' 5명 대 '친윤' 4명으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를 두고 친윤계 내부에선 "정책위의장은 당 대표가 원내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아 임명하며 임기는 1년"이라는 당헌 68조 4항과 5항을 들어 한 대표가 정 정책위의장 교체를 주도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임기 두 달 차를 맞은 정 정책위의장 또한 임기가 1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실상 물러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친한계 일각에선 당헌 25조 4항 "당 대표는 당직자 인사에 관하여 임면권 및 추천권을 가진다"는 점을 들어 당 대표가 정책위의장 직을 교체할 수 있다는 재반박 성격의 입장을 피력했다. 한 친한계 의원은 통화에서 "당 대표가 당직자 임면권을 가진다는 규정(당헌 25조)이 친윤계가 주장하는 1년 임기 조항(68조 4항)보다도 우선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위의장직 임명·면직 당헌 해석을 둘러싸고 양 측이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 갈등의 불씨는 지지자들에도 옮겨 붙었다. 일부 한 대표 지지자들은 최근 정 정책위의장의 페이스북에 몰려가 "왜 당심(黨心)을 무시하나", "윤심(尹心)을 업고 버티는 것이냐" 등의 댓글을 올리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 상황에 대해 당 관계자는 "한 대표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지지층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당직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 정 정책위의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韓측 "제2 이준석 사태 막아야" vs 친윤계 "사실상 무력 시위"
한 대표 측이 임기 초반부터 정 정책위의장의 교체를 고심하는 등 '친윤'과 힘겨루기를 피하지 않는 데엔 당 장악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한 대표는 약 6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줄곧 주장해온 채 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안(案)에 대해 "원내 사안은 원내대표가 결정할 일"이라는 친윤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도부 내 우군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다가왔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당의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원내에는 사실 한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반면 원희룡 당시 후보에 힘을 줬던 의원들이 여전히 많고 과거 이준석 대표 체제 당시 이들이 협조하지 않았던 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 대표 입장에서는 반드시 돌파해야 되는 난관이다. 만약에 이번에 돌파하지 못하면 제2의 이준석처럼 끌려가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친윤계에선 한 대표가 최고위 의결권을 넘어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의 무력화'를 노리려는 목적 아니냐는 의심의 시각마저 존재한다. 윤 대통령이 특정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국회에서 이를 무력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여권 내에서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가 자기 계파를 통해 이를 확보해 향후 대통령과의 긴장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의심이다. 국민의힘의 한 원내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가 당장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되진 않겠지만, 마치 북한이 핵을 보유하듯이 '비대칭 전력'을 확보해두려는 것이 한 대표 측의 생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