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 칠레켄스가 도쿄올림픽 당시 '세인트 보이'가 말을 듣지 않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근대5종은 가장 '올림픽스러운 종목'으로 꼽힌다.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직접 고안한 종목으로 수영, 펜싱, 승마, 육상, 사격을 모두 잘해야 입상할 수 있다. 쿠베르탱 남작은 근대5종 선수를 "경기에서 승리하든 못하든 우수한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차기 대회인 2028 LA올림픽부터는 근대5종에서 '승마'가 빠질 계획이다. 대신 '장애물 경기'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지난 도쿄 대회 도중 일어난 사건이 큰 계기가 됐다. 당시 여자부 경기에 출전한 독일의 아니카 칠레켄스(당시 아니카 슐로이)는 수영과 펜싱에서 중간 합계 551점을 받고 1위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칠레켄스의 올림픽 첫 메달의 꿈은 승마 종목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경기 시작 20분 전에 만난 '세인트 보이'라는 말이 칠레켄스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
칠레켄스는 어렵게 세인트 보이를 데리고 경기장에 들어섰지만, 세인트 보이는 장애물을 넘지 않는 등 계속해서 사고를 쳤다. 칠레켄스는 경기 내내 눈물을 흘리며 경기를 지속했지만 결국 '0점'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당연히 칠레켄스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경기 후에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칠레켄스의 당시 코치였던 킴 라이스너가 말을 듣지 않던 세인트 보이를 주먹으로 때린 것.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랜덤으로 말을 배정하는 경기 방식에 대한 지적이 커졌다.
국제근대5종연맹(UIPM)은 '5종'에서 승마를 제외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UIPM은 지난 2022년 5월 2028 LA 대회부터 승마를 대체할 세부 종목으로 '장애물 경기'(Obstacle discipline)를 채택했다.
파리올림픽 근대5종 승마 경기 중인 칠레켄스. 연합뉴스이번 파리 대회는 승마가 포함된 근대5종이 치러지는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사건의 당사자 칠레켄스는 이번에는 '완주'에 성공했다. 칠레켄스는 11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대회 근대5종 여자부 결승에서 합계 1376점을 받아 15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위기는 있었다. 준결승 승마 경기에서 배정받은 말 '아레초 데 리버랜드'가 한 차례 장애물에 걸린 뒤 멈춰선 것이다. 이 탓에 시간 초과 감점을 받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결승 당일 아침 칠레켄스에 기분 좋은 통보가 전해졌다. 결승 무대를 준비하라는 소식이다.
결승에 올랐던 영국의 케이트 프렌치가 몸이 안 좋아져 출전을 포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칠레켄스가 결승행 막차를 타게 됐고,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모든 종목을 마무리해냈다.
칠레켄스는 경기 후 "가장 큰 목표는 승마에서 잘하는 것이었다"면서 "정말 좋은 말과 관중 앞에서 즐거운 승마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를 즐기려고 했다. 운동 선수는 때로는 터널에 갇혀 즐기는 걸 잊어버리기도 한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