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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자기만의 성을 쌓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라이트 주장을 분해하면 허무하기만하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건국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제 36년을 지우기 위해서이다. 나라,주권,영토가 없으니 한반도에서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가 없었으므로 친일도 반일도 존재하지 않고,독립운동까진 부정할 수 없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핵심 주장이다. 심지어는 일부 뉴라이트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이 일제에 재산을 빼앗길 것을 염려해 재산을 독립운동의 산실이 된 만주 신흥학교로 빼돌렸다는 주장까지 서슴치 않는다.
     
    다시 그들의 주장을 미화하면 이렇다. 근대화 물결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왔다. 이미 근대화된 일제는 자신의 제도와 방식에 따라 조선을 통치했다. 그중에 새로 도입한 도시화로 조선인들은 좋든 싫든 근대화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근대화를 절감한 많은 지식인과 선각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거나 생활하며 익힌 것이 해방후 조국 산업화를 촉진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클라이막스에 이르는데, 그들이 일본에서 익힌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방 후 근대화된 서구 문물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 시대 유학은 1960년대 본격적인 근대화를 추진할 때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서면 좋으련만 일본에 대한 보은감정은 끝이 없다. 해방후 코끼리 밥솥이나 시세이도 화장품 모방을 통해 혁신을 했고, 한국 제조 산업의 성공에 이르렀다는 주장에 이르면 어질어질해진다. 심지어는 K팝도 그 원조를 찾아보면 일본의 영향이라고 간주해 버린다. 일본을 보고 배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한국 경제가 모방을 통해 혁신을 한 것도 팩트이다. 그러나 모방에서 창조에 이른 과정을 모조리 일본의 은덕으로 돌리는 단세포적적 숭일의식은 지극하기만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뉴라이트를 따르는 사람들은 넓고 깊은 역사를 무리하게 단선화시키려 하는 것이 주요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제 36년의 역사엔 나라를 잃고 국적을 상실했다는 요체 외에도 수많은 사실들이 있다. 36년 동안 일본을 통해 근대화를 받아들이고 그 근대화를 배우려고 자제들을 유학시킨 것(?) 말고도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처참한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권을 빼앗긴 시절, 일반인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선 그들은 별 관심이 없다. 식민지 백성들은 강제로 창씨개명을 당해야했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불이익과 박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조선 청년에 대한 지원병제가 징병제도로 바뀌고, 징용이라는 강제 노무 동원제도로 청장년은 언제 징용될지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이야기들은 근대화를 위한 유학론(?) 앞에 설 자리가 없다. 민족의식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할 것도 없다.
     
    고 박완서 선생의 가족사를 담은 소설에 나오는 일단락이다. "집에서도 일본말로 생활한다고 자랑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애들의 엄마는 대개 젊고 멋쟁이었다 우리 처지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얘기였다. 엄마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쓸개 빠진 것들이라고 격분했다. 학부형회가 있으면 엄마는 꼭 참석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일인이고 학부형이 본말을 모르는 경우에는 반장을 불러 통역을 시켰다. 조선인 선생님조차 통역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인 선생님 앞에 풀을 세게 먹인 뻣뻣한 무명옷을 뻗쳐입고, 쪽에 흑각 비녀를 꽃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꼬마 통역에 대한 배려라곤 조금도 없이 당신 하고 싶은 말을 엄숙하게 하고 있는 엄마를 바라본다는 것은 고문처럼 괴로운 일이었다."
     
    주권을 상실했다고 아픈 역사가 지워지거나 말살되지 않는다. 조국 근대화가 최고지선이라해도 그렇다.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김문수처럼 "1919년에 무슨 나라가 있냐"고 정색할 간단한 역사가 아니다.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치욕적이고 아픈 역사지만 미래를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다. '조국 근대화'란 용어로 한꺼번에 물 말아먹듯 치울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종찬 광복회장과 갈등으로 중도 보수층을 영영 떠나보냈다. 남은 임기 중도층이 대통령 지지로 돌아서는 일은 다시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럴수록 대통령은 자기만의 성을 쌓는다. 성에서 나와 국민과 함께 해야 할 대통령이 궁벽한 곳에 모래성을 자꾸 쌓는다. "우리 사회 내부에 반국가 세력이 암약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그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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