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홍 유한양행 R&D 총괄 사장. 연합뉴스"항암제 신약 개발에 있어서 나중에 시장 독점력을 가질 수 있을 지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효과'입니다. 암 환자 분들은 정말 절박하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죠. 우리의 신약 개발 목표는 그 해당 환자군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김열홍 유한양행 R&D 총괄사장)
유한양행이 신약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긴 '효과'가 빛을 발하면서 국내 제약 역사를 새로 썼다. 세계 1위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폐암 진단 후 바로 처방받는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으면서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항암제가 미국 규제 기관의 승인을 얻은 것은 렉라자가 처음이다. 국산 신약 최초로 글로벌 연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픈 이노베이션', 국산 항암제 최초 FDA 허가 결실로
이번 FDA의 승인 허가를 받은 주체는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이다. J&J는 자체 개발한 항암제 '리브리반트'와 '렉라자'의 '병용 요법'으로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주체는 J&J지만 유한양행과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은 2015년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신약 개발 후보 물질을 찾다가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코스가 개발한 폐암 치료제 렉라자를 사들였고, 이듬해 임상에 진입한 뒤 2018년 J&J의 자회사 얀센에 약 1조 6천억 규모의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이후 두 기업은 개발을 함께 진행했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이번 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FDA 허가는 제노스코, 얀센 등 협력사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밝혔다.
김열홍 R&D 사장도 "기술을 수출 할 때 목표는 그걸 가지고 가서 제대로 키울 글로벌 회사를 찾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우리가 지금 렉라자의 성공 스토리를 다룰 수 있었던 것도 J&J가 렉라자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후보 물질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고, J&J가 렉라자를 도입하면서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는 도전적인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유한양행은 이번 허가로 800억원 규모의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를 받는다. 제품 판매가 본격화하면 10% 이상의 로열티도 기대할 수 있다. J&J는 이 치료제가 매년 50억달러(약 6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유한양행은 아직 자세한 언급은 자제했다. 조욱제 사장은 "여러 국가에서 판매와 마케팅 하는 부분은 존슨앤존스이 결정하는 것이라 우리가 말하기가 어렵다"며 "향후 병용요법이 상용화되면서 알게 되는 대로 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한양행 기자간담회. 유한양행 제공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 현재 표준 치료제와 경쟁 시작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병용은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EGFR)가 있는 환자에게 1차 치료제로 처방한다. 폐암은 암세포 크기가 작으면 '소세포폐암', 작지 않을 경우 '비소세포폐암'으로 분류한다. 폐암 환자의 80% 비율이 비소세포폐암이다.
현재 표준 치료제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 약 7조 7천억원을 기록했다. 유한양행과 J&J는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병용요법이 타그리소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병용이 임상에서 타그리소의 효능을 앞섰기 때문이다. J&J는 2023년 9월과 10월 진행한 임상 3상 연구에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병용요법이 타그리소보다 환자의 사망 위험과 암 진행 비율을 30% 낮췄고, 암의 진행 없이 생존하는 기간인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렉라자가 타그리소보다 9개월 길었다고 발표했다.
아직 렉라자의 미국 출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 허가를 받은 치료제가 일반적으로 2~3개월 내 출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렉라자 역시 이와 유사한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치료제는 미국에 이어 유럽과 중국, 일본에도 진출할 전망이다. J&J는 지난해 말 FDA와 함께 유럽의약품청(EMA)에도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승인 신청했으며, 올해 초 중국·일본에도 신청한 상태다.
유한양행은 제2, 제3의 렉라자를 위해 파이프라인(개발 중인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김열홍 사장은 "우리 목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서 "하나가 아니고 간격을 두고 계속 블록버스터를 창출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금을 안정적으로 R&D에 투자해서 회사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프레젠테이션(발표)에서 가장 처음 하는 말이 현재 블록버스터 몇 개를 보유하고 있고 올해와 내년에 몇 개를 새롭게 달성할 것"이라면서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려면 그만큼 신약을 개발했을 때 커다란 영향이 갈 수 있는 분야, 환자 수가 많고 환자에 획기적인 치료 개발이 돼야 한다. 그만큼 영향력 끼칠 수 있는 신약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렉라자 타임라인. 유한양행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