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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김구를 다시 읽다[기자수첩]

기자수첩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김구를 다시 읽다[기자수첩]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여권, 뉴라이트 논란에 '몽니, 색깔론'까지 동원해 광복회장 공격
    해방 후 '꼬마' 이종찬과 환국했던 김구와 오버랩…메신저 흠집내기
    "조국 분열 연장은 민족을 죽음으로 모는 극악극흉"…동족상잔 걱정
    일류국가 됐지만 김구의 염원 '분단 극복‧역사 청산'은 미완의 과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1945년 환국 전 상하이 공항에서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 태극기를 든 소년이 이종찬 전 의원. 우당기념관 제공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1945년 환국 전 상하이 공항에서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 태극기를 든 소년이 이종찬 전 의원. 우당기념관 제공
    최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거의 매일같이 열린다. 이 회장이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날을 세웠기 때문이다.
     
    여권과 보수층은 이 회장의 예상보다 강한 반발에 한때 당혹했지만 곧 역공에 나섰다. 같은 보수인사로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가 원로가 민감한 '친일' 담론을 꺼내든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여권은 역시 노련하고 조직적이었다. 이 회장은 사사로운 감정에 몽니를 부리고 노욕(老慾)에 찬 무책임한 인물로 채색됐다. 국민의힘 시도지사협의회는 그를 "사실무근의 마타도어"를 앞세운 국론분열자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실체 없는 유령과 싸우는 딱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사리분별 못하는 노인으로 매도한 셈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국정원장 출신인 그에게 색깔론 덧칠 시도까지 나왔다.
     
    메시지를 공격하기 위해 메신저를 흠집 내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 흔한 장면이다. 1948년 우남 이승만 중심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결사반대했던 백범 김구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그는 그해 2월 '삼천만 동포에 읍고(泣告)함'에서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단독정부 수립에 대해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死坑)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라며 머잖아 닥칠 동존상잔의 참극을 걱정했다.
     
    그는 단독정부 세력을 "태연스럽게도 현실을 투철히 인식하고 장래를 명찰하는 선각자로서 자임하고 있다"며 "그러나 매국매족의 일진회식 선각자"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김구의 이런 태도는 이승만 세력에 눈엣가시였다. 김구의 호소문도 "(그들은) 나의 의견에 대하여 대경소괴(大驚小怪‧매우 놀라워 좀 의하게 여김)한 듯이 비애국적 비신사적 태도로써 원칙도 없고 조리도 없이 모욕만 가하였다"고 기술했다.
     
    그는 당시 모 유력신문이 "여자의 이름까지 빌어 가지고 나를 모욕하였다"고 했고, 일찍이 각종 유언비어를 생산하던 그 신문이 또 다시 자신과 관련한 허언(虛言‧거짓말)을 만들어냈다고 꾸짖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직 전 민족의 단결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삼천만 동포와 공동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도의 독립 영웅 마하트마 간디가 자신을 저격한 암살범마저 용서한 사실에서도 "배운 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했다.
     
    "내가 사형언도를 당해 본 일도 있고 저격을 당해 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부끄러워한다."
     
    김구는 이듬해 6월 암살됐다. 거족적 지지를 받던 몽양 여운형에 이어 김구의 암살로 남북의 통합은 더욱 멀어졌고 결국 1년 뒤 6.25전쟁이 발발했다.
     
    김구는 호소문 말미에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삼팔선을 싸고도는 원귀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붓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억색(抑塞‧억눌리고 막힘)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을 더 이루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나의 애달픈 고충을 명찰하고 명일의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 번 더 심사(深思‧깊이 생각)하라"며 끝을 맺었다.
     
    역사는 과연 되풀이되는가? 대한민국은 그간 '일류국가'로 도약했지만 분단 극복과 역사 청산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김구가 말한 '민족 단결'과 '매국매족 일진회' 화두는 여전한 것이다.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 김구 앞에 선 '꼬마' 이종찬이 지금의 광복회장이다. 이제는 구순을 앞둔 원로가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행동에 나선 것을 몽니니 노욕이니 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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