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뉴진스 하니가 15일 오후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모습. 황진환 기자"저희 다 인간이잖아요. 근데 그걸 되게 많이 놓치신 분들이 되게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하니)
걸출한 그룹을 다수 보유한 기획사이자 시가총액(시총) 선두를 달리는 K팝 업계 대표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국회에 소환됐다. 그룹 뉴진스(NewJeans) 멤버 하니(팜하니)의 폭로로 '아이돌 따돌림과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 따르면, 뉴진스 멤버들이 겪은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해 달라는 우편·메일·문자·전화 등 요청이 환노위에 쇄도했다. 서울지방노동청 서부지청에는 해당 내용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가 접수됐고, 고용부 고객상담센터에도 '뉴진스'는 물론 소속사인 '어도어'를 키워드로 수백 건의 민원이 들어왔다고도 전했다.
자연히 이날 국감은 하이브가 '어떤 일터'인지에 초점이 맞춰졌고, 하이브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증인으로 출석한 하이브 CHRO(최고인사책임자) 겸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김주영 대표는 거듭 '개선'을 약속했다.
팽팽히 갈린 '직장 내 괴롭힘' 여부
뉴진스는 지난달 11일 긴급 라이브 방송에서 기획 단계부터 함께한 제작자인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이사의 복귀, 경영과 제작을 총괄하는 기존 어도어 체제 복귀 두 가지를 촉구했다. 지난 4월부터 이어진 하이브와 민 전 대표의 '공개 대립' 중 민 전 대표가 8월 해임되자, 뉴진스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때 하니는 하이브 사옥에서 대기 중 다른 팀 멤버와 담당 매니저를 마주쳤는데, 그 매니저가 본인에게 들릴 정도로 "무시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뉴진스는 민 전 대표 해임 후 회사 내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며 고립에 관한 불안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니는 해당 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나, 빌리프랩은 "아일릿 매니저는 무시하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하니는 15일 오후 열린 국회 환노위 국감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아일릿 매니저가 아일릿에게 하니를 "못 본 척 무시"하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니는 "근데 이 문제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 여기(국감) 나오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고 또 묻힐 거라는 걸 아니까 나왔다"라며 "다른 누구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선배, 후배, 저와 같은 동기분들이든 지금 계신 연습생들도 이 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뉴진스 하니, 김주영 어도어 신임 대표이사. 황진환 기자다른 사례도 전했다. 하니는 데뷔 초반부터 "되게 높은 분"을 많이 마주쳤는데 "저희 인사를 한 번도 안 받으셨다"며 "(인사를 무시한 건) 그냥 인간으로서 예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꼬집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하이브 직원들이 뉴진스를 욕한 것, 하이브 PR 담당 실장이 뉴진스의 일본 데뷔 성적을 낮추고자 역바이럴한 것을 거론하며 "제가 느꼈던 분위기는 느낌만이 아니었고, 저희 회사가 저희를 싫어하는 거(라는 데) 솔직히 확신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무시해' 발언과 관련해 회사에도 알렸으나, CCTV에 뉴진스와 아일릿이 인사하는 장면 8초 분량만 남아있을 뿐 뒤가 없었다고 하니는 설명했다. 이에 김주영 어도어 대표는 6월 13일 이 일을 전해 듣고 △아티스트와 매니저에게 사실 확인 요청 △보관 기간 만료된 CCTV 복원 가능 여부 문의 등 "당시 어도어 사내이사로서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다 취했다"라는 입장을 폈다.
김 대표는 "현재 내부적으로 파악한 관계로서는 서로 간에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저도 하니씨의 말씀과 주장을 다 믿고 있고 어떻게든 저도 답답한 심정에서 입증할 만한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확보는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하니는 "최선을 다하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며 "저희를 계속 지켜주겠다고 얘기하셨는데 저희를 지키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한다. 근데 사과 의지도 없으시고 뭘 어떤 액션을 할 의지도 없는데 최선을 다하셨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최선 더더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 이 문제도 넘어갈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뭐 미래 얘기하기 전에 이 문제 빨리 해결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요구했다.
아티스트는 노동자일 수 있을까
하니의 폭로를 계기로 '아티스트의 노동자성(근로자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하니가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인 '직장 내 괴롭힘'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0년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연예인은 '근로자'에 속하지 않는 '예외 대상자'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날 국감에 출석한 김유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권을 침해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해선 안 된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법이 인정한 '근로자'가 아닌 경우 "현장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좀 적용하기가 힘든 현실이 있다"라고 밝혔다.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그러나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맞춰 '노동자성'을 더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기술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플랫폼 노동자, 특고(특수 형태 고용직) 노동자 등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850만 명에 육박한다. 노동법 밖 노동자 규모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라며 "오늘 증인 신문은 최근 발생한 사건을 통해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현실을 다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안 위원장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일하는 사람 누구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국회의 임무"라며 "특정 그룹의 문제나 가십성 이슈로 봐선 안 된다"라고 바라봤다. 이어 "제도에 어떤 미흡한 점이 있다면 이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 정부가 또 국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급여 수준과 근로자성 판단은 별개라는 의견도 나왔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이 이 같은 주장을 하며 "실질적으로 어떻게 일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자, 김유진 실장은 "급여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근로 형태를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동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도 노동법 밖 노동자들을 위해 관련법 신설이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종윤 고용노동부 산언안전본부장은 "예술인이라든지 연예인, 아티스트에 관한 보호 방법은 노동부뿐만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문화부 등과 협업할 부분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근로기준법, 노동법 문제를 넘어서서 다른 부처와 협업할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하이브 아티스트는 '구성원'에 속하나
안 위원장이 하니와 같은 소속 아티스트도 '직장 내 괴롭힘'의 보호 대상이라고 보는지 질문하자, 김 대표는 "현재 관련법상으로는 아티스트는 근로자성에 포함되지는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이 "아티스트는 구성원이 아니냐"라고 여러 차례 물었을 때도, 김 대표는 "광의(넓은 의미)로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라는 다소 모호한 답을 내놨다.
다만 김 대표는 "근로자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희는 아티스트와 밀접하게 일을 하고 있는 회사"이기에 "아티스트와 구성원 간 상호 존중하며 협업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상호 존중 행동 규범 규정'을 만들고 '내부 가이드라인 교육'도 정기적으로 시행한다며, 이를 "조직 문화로 내재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회 환노위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하니가 증인으로 출석한 김주영 어도어 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2023년 하이브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는 하이브가 구성원 인권 존중을 위해 노동법·근로기준법 등 관련법을 준수하며, 인권 침해 행위가 발생하면 이를 제보할 수 있는 채널을 운영해 사안의 신속한 처리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다. 안 위원장은 보고서 중 인권 관련 제보 가능 유형 1번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점을 언급한 후 "구성원에는 아티스트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 않나?"라고 재차 물었다.
보고서 내 '직장 내 괴롭힘' 대상은 "구성원에게 한정"돼 있다는 김 대표의 답에, 안 위원장은 "구성원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경우에도 인권이 침해돼서는 안 되는 것이고 또 직장 내 괴롭힘이라든가 일터에서의 괴롭힘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재차 물었고, 김 대표는 "그렇다"라고 수긍했다.
이후, 김 대표는 "하니씨를 비롯해서 아티스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티스트들의 인권까지 잘 보호해서 아티스트들이 가지고 계시는 그 꿈과 희망을 잘 펼칠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잘 살피겠다"라며 "믿고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더 좋은 기업 만들어서 사회에도 보답하고 K팝을 많이 아껴주시는 분들에게도 보답하는 더 좋은 회사 만들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일자리 으뜸기업'과 '과로사 은폐' 논란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6일 '2024년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 100곳을 발표했다. 고용 창출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일자리 질을 개선한 기업이 높이 평가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고, 신용평가 우대, 세무조사 유예 등 다양한 혜택이 있다. 하이브는 자회사 위버스컴퍼니와 함께 올해 명단에 포함됐다.
이정한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하이브를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뽑은 건 국민 추천을 받아서"라며 이 외에도 △수평적 조직 문화 △일·가정 양립 지원 △이직률 △노사 단체 평판 조회 △현장 실사 등 다양한 측면을 두루 살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어떠한 하자도 발견이 안 됐기 때문에 민간 전문가들까지 모인 심사위원회에서 공정하게 결정됐다"라고 덧붙였다.
하이브는 2024 대한민국 으뜸기업에 선정됐다. 왼쪽부터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어도어 대표. 하이브 제공 '일자리 으뜸기업' 선정 일주일도 되지 않아 소속 아티스트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폭로가 나온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일자리 으뜸기업은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거나 언론 보도 소송 민원 제기 등 논란이 있는 경우 철회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하이브 구성원의 사망을 둘러싸고 '과로사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2022년에 하이브 직원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쓰러져 사망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김 대표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해당 사건은 2022년 9월 일어났으며, 한 직원이 수면실에 가서 좀 쉬고 오겠다고 했는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며칠 후 "개인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개인 질환이라고 하지만, 여기 계신 환노위원들이 볼 때는 과로사다. 당시 하이브 계열사가 대폭 확대돼, 직원들은 아이돌 그룹 여럿을 동시에 케어하고 특히 해외 스케줄까지 챙기다 보니까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도 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봤을 때 "과로사를 은폐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김 대표는 "절대 하이브에서는 은폐를 하거나 하는 사실은 없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정 의원이 "부검 안 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김 대표는 "부모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라고 해명했고, 정 의원은 "원래 은폐는 그렇게 되는 거다. 유족과 합의해서 은폐가 되는 것"이라며 정확한 사건 개요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 의원은 "엔터 업계의 노동 조건이 가혹한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문제"라며 "(하이브가) 진정한, 그리고 글로벌한 K팝을 선도하려면 노동 조건에 대해서도 글로벌한 기준을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직접 등판하지 않은 것을 두고 질타도 나왔다. 박홍배 의원은 "오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인 하이브의 최고 책임자 방시혁 의장은 정작 이 국감장에 없다. 지금 미국에서 히히덕거리실 때가 아닌데 최근 계속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장본인으로서 사안의 심각성을 빨리 깨달으셔야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