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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은 왜 '헤밍웨이'로 '무성영화'를 만들었나[EN:터뷰]

문화 일반

    이명세 감독은 왜 '헤밍웨이'로 '무성영화'를 만들었나[EN:터뷰]

    핵심요약

    영화 '더 킬러스' 총괄 크레에이터이자 '무성영화' 연출자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의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을 위한 안내서 <상> '무성영화'를 말하다

    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 제공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이명세 감독 영화에 대한 감상평 중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 "난해하다."
     
    이는 관객의 잘못도, 이명세 감독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문법의 차이다. 조금 더 풀자면, 보통의 영화가 '소설'이라면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시'에 가깝다. '영화'를 이야기로 풀어 전달하는 게 보통의 영화라면, 이미지에 의미를 함축해 전달하는 게 이명세 감독의 영화다.
     
    소설과 시에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듯이, 이명세 감독의 영화 역시 접근법을 달리하면 낯섦은 새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힌트는 그저 온 감각을 스크린에 맡기고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이미지에 담긴 것들에 대한 이해는 영화관 밖을 나와 해도 늦지 않는다.
     
    이번 인터뷰는 이명세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오해 아닌 오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그가 귀띔해 준 감상법을 적용해 '더 킬러스'와 그의 이전 작품들에 한 걸음 더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해 봤다. [편집자 주]

     
    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제공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제공
    "헨리네 식당의 문이 열리고 사내 둘이 들어왔다. 그들은 카운터 앞에 앉았다. (중략) 식당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 창밖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_어니스트 헤밍웨이 단편 소설 '살인자들' 중
     
    이명세 감독에게 '살인자들'의 도입부는 가장 영화적이었고, 감독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헤밍웨이의 소설은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상당 부분 생략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드러나지 않은 표면 아래의 것들을 상상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더 킬러스'의 시작은 이명세 감독이다. 이 감독은 가장 영화적이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살인자들'이야말로 감독들이 자본의 한계, 창작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영화의 장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이명세 감독을 비롯해 김종관, 노덕, 장항준 감독은 바로 이처럼 드러나지 않고 생략된 사이에서 영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누군가는 등에 칼이 꽂힌 채 의문의 바에서 눈을 뜬 한 남자의 충격적인 변신('변신' 김종관 감독)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거쳐 3억짜리 의뢰를 단독 3백에 받게 된 살인 청부업자 삼인방('업자들' 노덕 감독)의 이야기로 나아갔다.

    누군가는 '살인자들'의 영감을 1979년 밤, 왼쪽 어깨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작은 단서만으로 살인마를 기다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장항준 감독)를 떠올렸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디아스포라시티에 있는 신원 미상의 타깃을 찾아온 두 킬러 이야기를 통해 영화적인 꿈('무성영화' 이명세 감독)을 그려냈다. 그렇게 독창적인 네 편의 단편이 하나로 묶여 '더 킬러스'로 탄생했다.
     
    '더 킬러스'가 한창 관객들과 만나고 있던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사무실에서 이명세 감독을 일대일로 만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명세 감독' 혹은 '비주얼리스트'라는 표면적인 이미지 너머에 있는 모습에서 발견한 건 '꿈'과 '열정'이었다.

    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제공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제공 

    헤밍웨이에게서 영화를 만나다

     
    1927년 잡지 '스크리브너스 매거진'에 실린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은 스웨덴 권투 선수 올레 안드레손을 죽이러 식당에 들어온 두 명의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건조한 문체로 쓰인 이 짧은 소설은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한 수많은 창작자의 창작 욕구를 자극했다.
     
    이명세 감독은 이 소설에서 자본과 창작이 윈윈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코미디도, 누아르도, 심리극 등 다양한 장르로 발현될 영화적인 가능성 그리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자본이 규정한 영화의 한계를 넘어 영화감독이라는 창작자로서 가진 본연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지점을 관통하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헨리네 식당의 문이 열리고 사내 둘이 들어왔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줄을 읽었을 때 이 감독에게는 영화적인 영감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세팅이 너무 완벽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영화의 오프닝보다도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소설"이었다. 당시 시대상이 지닌 분위기를 소설에 담아내려고 한 헤밍웨이의 흔적도 보였다.
     
    이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는 상업적으로 시의적절해야 하니, 계속 감독들에게 이 분위기를 영화 속에서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다"라며 "각자가 찾아낸다면 찾아낼 수 있는 게 많은 분위기가 있었다. 나 역시도 들어오는 그대로의 어떤 느낌을 살리되 헤밍웨이가 그 시절 하려고 했던 게 어떤 것인가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명세 감독에게는 팬데믹을 거친 우리 사회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뭔가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 없는,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은 분위기를 영화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떠오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심리학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명의 남자다 들어온다, 그리고 '사의 찬미'. 이 세 가지를 '살인자들'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집중한 결과물이 바로 '무성영화'다.

    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 제공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 제공 

    이명세 감독, '무성영화'를 말하다

     
    '무성영화'는 범법자, 도시 난민, 추방자들이 모여 사는 지하 세계 디아스포라 시티에 매일 같은 시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메뉴를 시키는 신원 미상의 타깃을 찾아온 두 킬러가 등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1979년 10월 25일을 배경으로 한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와 시기적으로 이어진다. 총괄 크레에이터로서 각기 다른 네 편의 영화지만, 한 편의 영화처럼 보이길 바란 책임감 아닌 책임감이 시기적인 연결고리를 만들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만은 아니다.
     
    이명세 감독은 "지금의 답답함이 1970년대 당시의 느낌, 서울의 봄(*참고: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 사이에 전개된 민주화 운동 시기)을 기다릴 때 느낌과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소도 지하로 설정해 디스토피아의 분위기를 더했다.
     
    '무성영화'는 이모저모 뜯어보면 이명세 감독이 숨겨놓은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영화 속 사운드다. 잘 들어보면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져온 것으로, 해당 영화를 아는 관객이라면 반가울 만한 장치다. 마치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화'와도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연출이었다.
     
    또 '무성영화'의 제목을 각각 한글, 한자, 영어로 표기했는데 각각 파란색, 흰색, 빨간색으로 달리했다. 이 감독은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이명세 감독의 연출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고, 어떤 해석을 가져갈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대사 대신 내레이션이 흐르 '무성영화'에서 주요하게 활용된 건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 늘 그랬듯이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배우의 움직임이다. 이번에는 배우 심은경이 이 감독의 현장에 자리했다. 일찌감치 심은경과 작업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흘러 '무성영화'를 통해 그 아쉬움을 해소하게 됐다.
     
    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제공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제공
    이 감독에게 현장에서 함께한 심은경이란 배우는 어떤 배우였냐고 묻자, 즉답이 나왔다. 이 감독은 "천재 배우"라는 한 마디로 심은경을 정의했다. 더 이상의 문장은 필요 없을 정도로 심은경의 연기는 그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이 감독은 "그의 연기가 가진 탁월함이 있다"라며 "심은경 배우가 지금에 머무르고자 했다면 갈등이 생겼을 텐데,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기에 편하게 만났다"라고 했다. 그리고 심은경은 자신의 몫 그 이상으로 4인 4색의 영화를 '더 킬러스'로 연결했다.
     
    이명세 감독 특유의 스타일로 완성된 '무성영화'는 제목처럼 초창기 영화에 대한 감독의 꿈과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그런 만큼 스크린 속 인물과 그들의 움직임 그리고 여러 가지 보이는 요소들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이자 초창기 영화처럼 순수하게 스크린에 몰입하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앞선 세 편의 작품과는 다른 결의 스타일을 지닌 만큼 관객들에게는 진입장벽이 존재할 수 있다. 여전히 '무성영화'가 낯선 관객들, 주류 영화와 다른 문법에 낯선 관객들을 위해 이명세 감독에게 '무성영화'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알려달라고 했다.
     
    "많이 알면 더 보이는 이야기도 아니고, 영화를 이해해서 어떤 것들이 뭐고, 무성영화의 색깔이 뭐고…. 그걸 해석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 그냥 봐야 해요. 그냥 한번 첨벙 들어오면 그게 찬물이든, 더운물이든, '새로운데?' '다른데?' 이렇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가 어떻다가 아니라 '이거 다른데?' 이런 것들을 느끼고 가져가면 돼요. 제가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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