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 핵심 피의자인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1차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지 한 달만에 검찰은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류영주 기자티몬·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의 정점으로 꼽히는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에 대해 재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5개월간 이어진 검찰 수사가 분기점을 맞았다. 특히 한달여 보강수사 끝에 다시 신병 확보를 시도했지만 법원이 이전과 같은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을 두고 검찰이 무리하게 신병 확보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 배임 혐의를 받는 구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19일 오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남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했거나 도주하려한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며 구속 수사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아가 "범죄성립 여부나 경위에 대해 다툼의 소지가 있고 구속영장 기각 후 수집·제출된 증거를 포함해 현재까지 수집한 증거, 피의자의 주장, 수사 진행 경과, 피의자 경력과 사회적 유대 관계 등을 종합하면 종전 기각 결정과 달리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0일에도 △범죄 혐의를 다툴 여지가 있는 점 △도망이나 증거 인멸 염려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첫 번째 영장 기각 후 진행한 검찰의 보완 수사에도 법원은 여전히 혐의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검찰이 혐의 뿐 아니라 도망이나 증거인멸 우려 등 구속 필요성도 주장했지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구 회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티몬 류광진·위메프 류화현 대표 역시 1차 영장과 같은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구 회장 등은 1조5950억원 상당의 정산대금을 중간 판매자 등에게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큐텐그룹 물류 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 방식으로 티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에 720억원의 손해를 입히고,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위시 인수 대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티메프 회삿돈 799억원을 빼돌린 혐의도 있다. 검찰은 지난달 4일 기각된 첫번째 구속영장보다 배임 및 횡령액을 각각 28억원, 128억원씩 늘렸다.
류영주 기자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연달에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전담수사팀까지 꾸린 티메프 사태 수사는 분수령을 맞았다. 검찰은 우선 3차 영장을 청구하기보다 불구속 기소에 무게를 두고 구 회장의 사기 및 횡령·배임 혐의를 다지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정산지연 사태를 미리 알지 못 했고 미정산 사태가 경영 실패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해 왔다. "지급 불능 상황을 알고도 무리하게 상품권이나 일감 몰아주기를 강행해 자금을 빼돌렸다"는 검찰 측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에 검찰은 첫 번째 영장 기각 후 구 회장의 고의성 입증에 방점을 두고 보강 수사를 진행했다. 미정산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구 회장이 큐텐그룹 재무본부장인 이시준 전무에게 '티몬이 가진 인터파크커머스 정산 예정금 250억원 정도를 미리 인출해 옮기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요구했다고 검찰은 2차 영장 청구서에 적기도 했다.
검찰은 또 구 회장이 올해 7월 29일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를 수습하고 개인 재산도 제공하겠다"는 입장문을 밝히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구 회장 등이 입장문을 밝힌 당일 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것이 피해 회복을 위한 게 아니라 형사책임을 면책받으려는 수단이었다고 검찰은 의심한다. 이런 의심을 뒷받침할 직·간접 증거 관계 보강에 향후 수사력이 모일 전망이다.
또 구속영장이 기각된 류광진·류화현 두 대표에 대한 보강 수사도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티몬과 위메프에는 큐텐그룹 내 자금이나 경영상 판단 결재 라인에서 배제돼 있었다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구 회장과의 공모관계가 충분히 입증된다는 검찰의 주장이 두 번이나 법원에서 기각된 점을 고려하면 보완 수사 후 추가 영장 없이 두 사람을 재판에 넘길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아울러 이번 미정산 사태로 30만명이 넘는 피해자가 생긴 만큼 주요 경영진 기소 등으로 현재 진행 중인 수사가 일단락되면 피해 회복에 초점을 둔 수사가 뒤따를 전망이다. 특히 구 회장 본인이 상당 규모 사재를 털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에 걸쳐 내부 관계자들에게 했다는 증언도 검찰은 확보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검찰은 조만간 구 회장의 국내·외 사재 현황과 규모 파악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두 번 연속으로 구속에 실패하면서 수사 동력에 타격을 입은 검찰이 수사를 지나치게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법조계 일각에선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