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자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재학생들이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남녀공학 전환과 총장 직선제 문제를 논의하는 학생총회에서 남녀공학 전환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대학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집회에 나서면서 불거진 '동덕여자대학교(동덕여대) 사태'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해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학본부와 총학생회는 25일 얼굴을 맞댔지만 뾰족한 결과는 도출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동덕여대 대학본부의 불투명한 소통 방식이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나오지만, 한편에선 학생들의 대응 방식 역시 적절치 못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입장 차 극명' 학교 vs 학생…"비민주적 소통으로 분노 누적"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동덕여대 처장단과 총학생회는 전날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3차면담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명애 총장과 처장단은 "본관 점거를 해제한 후 공학 전환에 대해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꺾지 않았고, 총학생회는 "공학 전환을 철회해야 한다"며 평행선을 그렸다.
동덕여자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재학생들이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남녀공학 전환과 총장 직선제 문제를 논의하는 학생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류영주 기자동덕여대 사태는 학교 측이 이달 7일 대학비전혁신추진단(추진단) 회의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이에 학생들은 지난 11일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본관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자 동덕여대 대학본부는 하루 뒤인 12일 입장문을 통해 "지난 9월 추진단 회의에서 디자인대학과 공연예술대학의 발전방안 중 하나로 남녀 공학 전환이 포함됐다"며 "교무위원회 보고‧논의를 거쳐 모든 구성원과의 의견수렴 절차를 계획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같은 날 학교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제기된 의견이 교무위원회 보고를 통해 의제화되고, 이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교무위원회에 안건이 상정이 돼 의결 과정을 거치게 돼 있다"며 "공학 전환 논의는 교무위원회 보고도 이뤄지지 않은 의제설정 이전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가 교무위원회에서 공학 전환을 논의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먼저 알렸어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학생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논의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덕여대 제57대 총학생회 '나란'은 22일 입장문에서 "(그동안) 대학본부는 교무회의 이후 학생들에게 간담회를 통해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학생들이 우려를 표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왔다"며 "충분한 학생 의견 수렴 절차는 교무회의 이전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동덕여자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재학생들이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남녀공학 전환과 총장 직선제 문제를 논의하는 학생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류영주 기자이미 학생들 사이에선 그간 학교가 학사개편 등 다른 사안을 결정할 때도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한 적이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학교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동덕여대 최현아 총학생회장은 20일 학생총회 직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올해 3월 학제 개편이 이뤄졌을 때도 학생들은 공청회에서 우려나 반대를 표했지만 결국 추진됐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 관계자 A씨 역시 "지난해 캠퍼스 내 언덕길에서 재학생이 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학생들이 안전 대책 요구하기 위해 본관을 점거했지만 학교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동덕여대 사태가 학교와 학생 간 소통 부재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창원대 철학과 윤김지영 교수는 "여대라는 정체성이 바뀔 수도 있는, 학교의 중장기적인 비전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할 때 학생들을 의사 결정의 주체로 세우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학생들은 교육 환경에 대한 통제권과 자율성을 잃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집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분출된 이후) 집회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받겠다는 건 학교가 학생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이런 모습을 소통 의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짚었다.
대학본부가 주요 사항에 대해선 학생 의견을 반영하도록 소통 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단 의견도 나왔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2016년 미래대학 설립을 두고 학생들이 반발하자 학교 측에서 중대한 학사제도 개편이 있을 때 학생과 미리 논의하는 '학사제도협의회'를 마련하겠다고 합의했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세훈 씨는 통화에서 "그때 고려대 학생회 측은 교무위원회가 열리기 전 관련 공지조차 학교 측에서 제대로 하지 않는 데에 항의했다. 교무회의에서 (미래대학 설립 등 학사 개편에 대한) 안건이 통과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교무위원회에서 정식 의결하기 전 '보고' 단계에서도 학생들이 안건에 대해 알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 '과격 집회 책임론'도 제기되지만…"54억은 모두 학생 책임?"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교내에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류영주 기자
하지만 학생들이 과격한 방식으로 의견 표출을 한 것 역시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대학 측은 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며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덕여대 대학본부는 "학내 사태로 인한 피해 금액 현황을 언론의 요청에 의해 알려 드린다"며 최소 24억 원에서 최대 54억 원에 달하는 피해 현황을 공개했다. 학교가 공개한 피해 현황은 △지난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2024 취업 박람회 관련 △건물 보수 및 청소경비 △입시 추가 경비 △100주년 기념관 대관료 수입 감소 등이다.
공학 전환 논의는 물론 시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두고서도 학교와 학생들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처장단과의 2차 면담에서 "페인트칠, 락커 칠도 학교에 와서 처음 봤다. 직접적인 관계성을 저희한테 찾으시는데,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밝혔는데, 김명애 총장은 전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대학은 학내 정상화를 위해 폭력사태, 교육권 침해, 시설 훼손‧불법 점거에 대해 법률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대응을 단호히 실행해 학교를 지켜 나가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락카칠 시위에 대해선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방민우 변호사(법무법인 시우)는 "법원에서는 락카칠 같은 경우에 원상 복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물손괴라고 보고 있다"며 "학교 측 재물이 손괴되지 않는 선에서 시위가 진행되지 않은 점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건물 점거 시위 방식은 학생이 대학 건물의 주된 사용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관례적으로도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시위하는 것은 많이 있어 왔다"고 부연했다. 학생들의 책임도 인정되긴 하지만, 학교가 책임론을 제기하는 방식에 대해선 전적으로 손을 들어주긴 힘들다는 의미로 풀이된다.